[비즈한국] ‘보따리’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작가 박용일이 오는 16일 수요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H에서 개인전 ‘He-story: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의 막을 올린다. 그의 핵심 조형 언어인 ‘보따리’를 주제로 회화와 철사 드로잉, 입체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박용일 작가에게 ‘보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소중한 기억을 담는 메타포다. 그 배경에는 실제 경험이 자리한다. 작가는 경기도 고양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1990년대 초 고양시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농촌이 붕괴되는 격변기를 고스란히 겪으며 이를 그림에 담았다. 초기에는 ‘종이배’로 떠도는 삶을 표현했고, 2014년부터 ‘보따리’를 주요 조형 언어로 발전시켰다.
박용일의 보따리는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삶의 응축’이자 ‘정보적 레이어의 중첩’이다. 신문 기사의 파편, 음악가의 얼굴, 명곡의 악보 등 기억의 파편을 화면에 겹겹이 쌓아 올린 뒤 이를 다시 붓질과 드로잉, 실이나 철사로 묶어낸다.
이번 전시는 공간적인 연출도 흥미롭다. 갤러리 4개 층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는데, 지하에는 흑백 보따리 그림 300호 대작과 쇠수세미 보따리 입체 조형물 단 두 점만 배치해 극도의 정적과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층으로 올라서면 흑백 작품과 대작들이 마주보며 시각적 긴장감을 끌어낸다. 특히 검은 벽면을 배경으로 자리한 철사 드로잉이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어 2층과 3층에 다다르면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의 보따리 회화들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아픈 사연을 감싸안은 보따리가 마침내 승화하는 느낌을 준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가운데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호크니를 추모하는 작품도 있다. 작품 안에 “REMEMBER YOU CAN 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이라는 문장을 담았는데, 이 문장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이다. 호크니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의 작품 이미지를 차용하고, 그 안의 문장을 바느질로 다시 새겼다. 한 작가에 대한 기억과 애도를 박용일의 ‘보따리’ 안에 다시 묶어낸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윤섭은 “박용일의 보따리는 ‘타자의 삶을 향한 끊임없는 연민이자 공감의 그릇’이다”며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희로애락을 보자기 속에 고이 싸매어 내놓으며, 대외적으로 ‘우리의 평범한 오늘이 결코 가볍지 않다’라는 연대의 메시지를 던진다”고 설명한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전시 제목에도 아무 일 없는 평범한 하루가 수많은 사연과 삶의 무게를 견뎌낸 뒤 얻은 소중한 평화라는 역설적 메시지가 담겼다.
박용일 작가는 “세상에 험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니 하루라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개인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굴러간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았는데, 네팔에서 또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다”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전시는 오는 10월 11일 일요일까지 열리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과 9월 24일~27일 추석 연휴 기간은 휴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