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01년 학습만화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3년 뒤 작가는 인세가 3분의 1만 지급된 것을 알았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자신의 책이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작가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벌었음에도 수익을 제대로 배분하지 않은 것이다.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출판사는 인세를 지급했기에 사기는 아니라고 했다. 계약 종료 이후 나머지 부분을 지급할 예정이었으므로 편취 의사는 없었으며, 계약서에 인세를 3분의 1만 우선 보내기로 했기에 기망행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준 것도 아니라고 했다. 특히 작가가 인세가 더 있는지 몰라서 요구하지 않았기에 지급하지 않은 것이므로 사기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판매량을 속였다고 보고 출판사의 주장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2004년 1월까지 책이 1000만 부 판매됐지만 출판사가 360만 부만 판매된 것으로 출고 현황표를 만들었고, 이에 작가가 나머지 인세에 대한 청구권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대법원만이 아니라 1심부터 일관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결국 출판사는 사기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나마 작가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집행유예가 내려진 것이었다.

이후 2005년 팬들이 기다려온 시리즈의 19권이 발매됐다. 그런데 만화의 그림체가 기존과 완전히 달랐다. 작가가 바뀐 것이다. 작가가 이미 그려둔 19권은 출판되지 못했다. 출판사가 저작권을 확실히 보장하지 않았기에 작가가 출간을 거부한 것이다.
출판사는 작가에게 사과하거나 협상하지 않고 바로 작가를 교체했다. 다른 작가와 급하게 계약을 맺고 부실하게 출간했다. 출판사는 높은 판매고가 작가 때문이 아니라 출판사의 기획력에 따른 것이었다고 합리화했다. 이 학습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는데, 출판사는 극장판 제작을 방해했다며 오히려 작가를 고소했다. 하지만 이 소송에서도 출판사는 패소했다. 작가에게 2억 원을 배상해야 했고, 작가가 그린 기존 18권까지는 출판할 수 없게 됐다. 출판사는 결국 바뀐 작가가 다시 그린 책을 내고 더 많은 돈을 들여 공격적으로 마케팅했다. 하지만 판매 결과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원래의 작가는 출판사를 옮겨 다시 책을 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의 저작권 갈등이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영화 ‘오디세이’의 흥행 때문이었다. 젊은 세대가 영화 ‘오디세이’를 보기 위해 극장에 운집한 것이 바로 이 학습만화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극장을 방문한 젊은 관객들은 이 시리즈 덕분에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 귀환 이후를 그린 19권에서 작가가 바뀌면서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영화에서 확인하려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습 만화가 영화 흥행에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시리즈가 완결된 전집으로 마무리됐다면 더 많은 독자들이 접했을 것이다. 갈등과 파탄은 출판사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저작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작가를 속였다. 과도하게 욕심을 부린 나머지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린 셈이다. 콘텐츠 생태계가 상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여지를 주는 사례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온전히 귀속되어야 한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작권 갈등은 2001년 12월 맺은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에서 시작됐다. 이 계약에는 작품의 2차적 저작물과 이를 이용한 상품화 권리 등 출판권 외의 모든 권리를 10년 동안 출판사 대표에게 넘기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부당한 계약은 만화 ‘고무신’ 사례에서도 봤다. 작가는 불행해지고 독자들의 권리는 침해된다. 출판사의 이미지도 훼손된다. 결국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다.
어린이들이 찾는 콘텐츠라고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래의 주역들이 그 콘텐츠를 접하고 문화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경제적 산업적 나아가 정치적인 힘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즐긴 만화가 작가의 권리를 빼앗은 결과물인 걸 훗날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제작 과정이 공정해야 콘텐츠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