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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선택”
2026 노벨경제학상의 의미

홀·우드퍼드, 거시경제 안정화의 미시경제적 토대 구축 공로…금리 결정부터 물가·고용·기대 관리까지 현대 경제정책 기본 틀 제시

[비즈한국] 물가가 너무 빨리 오르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린다. 경기가 나빠지면 반대로 금리를 내린다. 지금은 익숙한 경제정책이지만 한 가지 의문은 그대로다. 금리를 올린다고 사람들이 반드시 소비를 줄일까. 금리를 내리면 기업들은 곧바로 투자를 늘릴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지금 금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금리가 어떻게 될지도 생각한다. 기업 역시 올해 매출만 보고 공장을 짓지 않는다. 내년 경기가 좋아질지, 물가가 더 오를지, 금리가 다시 올라갈지를 함께 따진다.

2026년 노벨경제학상은 바로 이 문제를 파고든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12일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와 마이클 우드퍼드 컬럼비아대 교수를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상 이유는 ‘거시경제 안정화를 위한 미시경제적 토대(microeconomic foundations of macroeconomic stabilisation)’를 구축한 공로다.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의 연구를 통해 경기 안정화 정책을 분석하는 새로운 거시경제 모형이 발전했고, 현재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사용하는 정책 모델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로버트 홀(왼쪽)과 마이클 우드퍼드(오른쪽)는 금리와 경기정책이 가계와 기업의 선택, 기대,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며 현대 거시경제정책의 토대를 마련했다. 사진=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쉽게 말하면 두 경제학자는 거대한 경제를 움직이는 ‘평균적인 숫자’ 뒤에 사람과 기업의 선택을 넣었다. 과거의 거시경제 모델에서는 소비가 소득에 따라 얼마나 늘어나는지, 금리가 오르면 투자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등을 통계적으로 추정한 뒤 이를 하나의 방정식으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정책이 바뀌면 사람들의 행동도 바뀐다는 데 있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하면 가계와 기업은 그 정책을 미리 반영해 행동한다. 과거에 관찰된 관계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경기침체가 끝나도 왜 실업률은 그대로일까

로버트 홀의 연구는 특히 노동시장과 경기침체를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은 사람을 덜 뽑는다. 일부 기업은 직원을 줄이기도 한다. 이렇게 실업자가 늘어나지만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서 이들이 곧바로 새 직장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고, 기업도 적합한 직원을 찾는 데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홀은 이처럼 사람과 일자리가 서로를 찾는 과정 자체가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예를 들어 경기침체로 회사들이 대규모 채용을 중단하면 당장 실업률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취업 경험을 쌓지 못한 사람도 늘어나고, 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경제가 다시 살아나도 이런 문제가 한동안 남을 수 있다. 그래서 경기침체를 막는 정책은 단순히 올해 성장률 숫자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와 사람 사이의 연결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마이클 우드퍼드의 연구는 오늘날 중앙은행 정책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우드퍼드가 강조한 것은 ‘사람들의 예상’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4%로 유지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사람들이 “몇 달 뒤에는 금리를 크게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면 은행의 대출금리나 시장금리가 먼저 떨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집이나 차를 사는 결정을 앞당길 수 있고 기업도 투자를 늘릴 수 있다.

반대도 가능하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금 내렸더라도 시장이 “물가가 다시 오르면 곧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소비와 투자는 크게 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금융시장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렸는지 내렸는지만 보지 않는다. 중앙은행 총재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앞으로 금리를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는지까지 살핀다. 중앙은행의 기자회견 한마디에 주식과 채권 가격이 움직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가는 움직여도 가격표는 요지부동인 이유

두 사람의 연구는 이후 현대 경제학의 대표적인 분석 틀인 ‘새 케인스주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이론의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현실에서는 가격과 임금이 바로바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가루 값이 올랐다고 빵집이 다음 날 바로 빵값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경쟁 업체 가격도 봐야 하고 손님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나빠졌다고 회사가 직원 월급을 다음 달부터 곧바로 20% 줄이기는 어렵다.

이처럼 가격과 임금이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금리를 바꾸면 물가뿐 아니라 소비, 투자,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금리를 올렸을 때 몇 달 뒤 소비가 얼마나 줄어들지, 기업 투자가 얼마나 위축될지, 물가가 언제부터 떨어질지를 계산한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정할 때 사용하는 경제 전망 모델에도 이런 생각이 들어 있다.

이번 노벨경제학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두 학자의 연구가 지금 세계 경제 상황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중앙은행들은 매우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코로나19 이후 물가가 크게 올랐지만 그 원인이 하나가 아니었다. 소비가 갑자기 늘어난 영향도 있었고, 공장 가동 중단과 물류 차질로 물건 공급이 부족해진 영향도 있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상승까지 겹쳤다.

모두 물가상승으로 나타났지만 원인은 달랐다. 사람들이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물가가 오른 것이라면 금리를 올려 소비를 줄이는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석유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망이 막혀 물가가 오른 것이라면 금리를 올린다고 석유가 더 많이 생산되거나 물류가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금리를 너무 많이 올리면 물가는 잘 잡히지 않으면서 기업 투자와 고용만 위축될 수도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이제 물가상승률 숫자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왜 물가가 올랐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이번 수상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반복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했고 연준 인사들을 둘러싼 정치적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노벨위원회가 특정 정치인을 겨냥해 수상자를 선정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홀과 우드퍼드의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현재 미국의 상황과 묘하게 겹친다.

특히 우드퍼드가 강조한 것은 중앙은행이 단순히 금리를 움직이는 기관이 아니라 시장의 기대와 신뢰를 관리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정치적 요구에 따라 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중앙은행이 물가보다 정치권의 요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믿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고 장기금리가 오르는 등 정반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단순한 제도적 원칙이 아니라 통화정책의 효과를 결정하는 조건이 되는 셈이다.

물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금리가 아닌 ‘사람들의 믿음’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기대다. 물가가 한동안 높게 오르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직장인은 임금을 더 많이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기업은 앞으로 원가와 인건비가 오를 것으로 생각해 제품 가격을 미리 올릴 수 있다. 그러면 일시적인 물가상승이 실제로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금리를 움직이는 것만큼 사람들이 앞으로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드퍼드의 연구가 지금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두 학자의 이론이 모든 경제 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은행과 금융시장의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코로나19 이후에는 공급망 붕괴나 자산 격차처럼 기존 경제모델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도 나타났다.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이 틀을 버린 것이 아니라 계속 보완해왔다. 금융시장과 가계부채, 소득 격차, 공급망 문제 등을 기존 모델에 추가하면서 현실에 더 가까운 경제모델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번 노벨경제학상이 던지는 메시지도 단순하다. 경제에는 ‘금리를 올리면 물가가 내려간다’는 식의 절대 공식이 없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움직이면 사람들은 그 이유를 생각한다. 기업도 앞으로 경기를 예상해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금융시장은 다음 정책을 먼저 예상한다. 그 결과가 다시 소비와 투자, 고용과 물가를 움직인다.

홀과 우드퍼드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정책의 질문을 “금리를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에서 “금리를 올렸을 때 사람과 기업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로 바꿨다. 물가를 잡으면서도 경기침체를 피해야 하는 지금 세계 경제에서 이 질문은 여전히 중앙은행들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다.

봉성창 기자

기업이 말하는 성장의 언어와 그 뒤에 놓인 현실의 간극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날카롭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산업의 현재와 다음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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