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트업 투자를 둘러싼 분쟁이 법정에 가면 관계가 빠르게 단순해진다. 누가 계약 당사자인지, 누가 소송을 제기했는지, 누가 법률상 책임을 지는지만 남는다. 이때 펀드를 직접 운용하는 업무집행조합원, 즉 GP(General Partner)가 소송을 냈다면 출자자인 LP(Limited Partner)는 한발 물러나 있어도 될 것 같다. 계약서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공적 기금을 운용하는 대형 금융회사가 LP로 참여했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최근 스타트업 업계를 뜨겁게 달군 OGQ와 투자자 간 분쟁이 그렇다.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OGQ 법인이 아니라 창업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 판결에 따라 창업자가 보유한 회사 지분의 강제매각 절차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금융위원회에 제출된 자료를 통해 투자자 측이 왜 회사가 아니라 창업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했는지 그 배경이 드러났다.

투자자 측 설명은 명확했다. 회사를 상대로 소송할 경우 패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되면 GP에게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해관계인으로 묶은 대표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취지다. 이 소송 사실은 LP인 KB증권과 하나증권에도 보고됐다고 한다. 양 사의 사전 협의 혹은 최소한 암묵적 동의 하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현재 OGQ에는 투자금이 그대로 남아 있고, 감자로 돌려받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신철호 OGQ 대표는 판결액과의 차액을 자신의 지분으로 담보하겠다고까지 밝혔다. 즉 투자자가 동의하면 회사에서 회수할 길이 열려 있다. 그런데도 창업자 개인에 대한 강제집행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단순히 돈을 돌려받는 문제를 넘어서 KB증권이나 하나증권 같은 대형 금융사가 과연 창업자를 보호할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로 발전했다. 다른 스타트업 업계 동료 창업자들이 두 금융회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최근 정부의 시각도 분명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이어 금융위원회도 투자계약에서 고의·중과실이 없는 창업자 등 제3자에게 사실상 연대책임을 지우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신기술금융사의 창업기업 투자에서도 제3자 연대책임을 제한하는 모범규준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법제화하기 위해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 논의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신한캐피탈의 결정이 눈길을 끈다.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에게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개인 추심을 하지 않기로 한 것. 신한캐피탈이 왜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그 배경은 차치하더라도 창업자를 보호하겠다는 대의명분이 읽힌다.
OGQ 투자 분쟁 사건에서 KB증권과 하나증권은 LP이기 때문에 아무런 결정 권한이나 책임이 없을까. 펀드는 GP가 굴리고, LP가 개별 소송까지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LP에게는 다른 종류의 책임이 남는다. 자기 이름과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아야 할 책임이다.
큰 금융사가 벤처펀드에 출자한다는 건 단순히 돈만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회사 이름과 신뢰까지 함께 전달된다. 스타트업은 KB나 하나라는 이름을 보고 그 펀드를 판단한다. 계약서가 다소 찜찜해도 ‘설마’ 하는 생각에 그냥 사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운용은 GP가 했다”는 말로 발을 빼도 되는 걸까.
이 금융사들이 이번 건 하나로 투자 시장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창업자를 만나고, 오늘 돈을 회수당한 창업자가 몇 년 뒤 또 다른 성공을 들고 고객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자기 이름이 어떻게 쓰였는지 기억하는 창업자들과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사람들이, 그 이름의 무게를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벤처투자는 애초에 실패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은행 대출과 다르고, 그래서 높은 수익을 기대한다. 잘될 때는 지분가치 상승의 과실을 나눠 가지면서, 실패하면 원금 상환 책임을 창업자 개인에게 떠넘긴다면 벤처투자의 위험은 결국 창업자 혼자 지는 꼴이 된다. 이런 구조가 반복되면 투자자는 안전해질지 몰라도 시장은 위험해진다. 창업 실패 한 번에 집과 지분과 수십억 채무까지 떠안는 시장에서 누가 창업을 꿈꿀 수 있을까.
창업자를 단순히 감싸주자는 게 아니라 투자와 대출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위험을 함께 지겠다고 들어온 투자자가 계약 조항 하나로 그 위험을 다시 창업자에게 떠넘긴다면, 투자는 고수익을 노리는 대출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OGQ 사례처럼 투자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돌려받을 길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법이 바뀐다고 다 끝나지 않는다. 이미 맺은 계약, 다른 이름으로 우회하는 조항, 실제 운용을 누가 점검할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법보다 먼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LP다. 자신이 출자한 펀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피고, 법적으로 문제없어도 시장의 원칙과 어긋나면 지적할 수 있는 것. ESG를 이야기하고, 상생금융을 이야기하고, 혁신기업 지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대형 금융회사가 져야 할 책임이다.
돈이 들어간 곳에는 이름도 들어간다. 이름이 들어간 곳에는 책임도 따라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