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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미스트랄과 삼성전자, 그리고 ‘소버린 AI’

삼성 주도 ‘30억 유로’ 단일 라운드 최대 투자 유치…유럽 주권 강조 속 블랙록, 엔비디아 등 미국 투자자 ‘눈길’

[비즈한국]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국빈 방한 환영식 장면을 소개한 적이 있다(관련 기사 이재용 옆 33세 스타트업 창업자…프랑스가 그리는 ‘미래’).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옆자리에 프랑스에서 온 33세 스타트업 창업자가 앉아 있었다. 창업한 지 3년 된 프랑스 스타트업 미스트랄 AI의 CEO 아르튀르 멘슈였다. 당시 양 사의 기업 가치는 수십 배나 차이가 났다. 통상 외교석상에서 비슷한 체급의 기업인들끼리 자리가 배정되는 관례를 깬 것은 ‘의도적’이라고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게 확인됐다.

지난 4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국빈 방한 환영식에 참석한 미스트랄 AI의 공동창업자 겸 CEO 아르튀르 멘슈(왼쪽)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각) 미스트랄은 시리즈D 라운드를 마감하며 유럽 테크 기업 역사상 단일 라운드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30억 유로(4조 7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불과 1년 전 스스로 세운 기록을 1.5배 규모로 높여 다시 깼다. 기업가치는 210억 유로(약 32조 원)를 넘어섰다. 이 역대급 라운드의 리드 투자자가 다름 아닌 삼성전자였다. 삼성은 2024년에도 엔비디아 등과 함께 미스트랄에 투자한 바 있는데, 이번엔 판을 직접 주도했다.

이번 펀딩 발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파리를 국빈 방문한 기간(9월 6~9일)에 나왔다. 두 번의 정상 외교 사이에서 삼성과 미스트랄의 딜이 완성된 것이다. 이미 지난 7월 삼성이 미스트랄에 최대 10억 유로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소버린 AI라는 기치

미스트랄은 2023년 파리에서 설립된 AI 스타트업이다. 구글 딥마인드와 메타 출신 엔지니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로, 오픈소스 AI 모델을 잇달아 내놓으며 유럽에서 대표적인 오픈AI 대항마로 자리 잡았다. 설립 초기부터 “유럽이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명제를 사업 모델로 삼았다. 이른바 ‘소버린 AI(Sovereign AI)’다. 국가와 기업이 AI 모델뿐 아니라 데이터가 처리되는 위치, 모델이 실행되는 인프라, 컴퓨팅 자원과 운영 권한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개념이다. 멘슈 CEO는 지난 2월 인도 AI 서밋에서 “AI 워크로드를 운영하는 모든 이는 켜고 끄는 버튼을 직접 쥐고 있어야 한다. 그 버튼을 끌 수 있는 외부 공급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이 유럽 테크기업 단일 라운드 사상 최대 규모인 30억 유로(4조 7000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mistral.ai

실제로 미스트랄의 고객은 이 개념에 반응하고 있다.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프랑스 정부기관을 비롯해 SAP, 헬싱 등 독일 기업들이 미스트랄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GDPR(유럽 일반개인정보보호법) 등 유럽의 데이터 규제 환경과 데이터가 역외로 이전되는 데 대한 우려, 그리고 AI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요구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미스트랄은 이번 자금으로 2030년까지 유럽 내 1GW(기가와트) 규모의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 유치의 표면을 보면 서사는 명확하다. 미국 빅테크 AI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유럽의 의지가 증명된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투자자 명단을 뜯어보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자본의 주권과 기술의 주권

이번 라운드는 삼성전자가 리드했고, EQT가 운용하는 EU 지원 스케일업 유럽 펀드(Scaleup Europe Fund)가 공동 리드로 참여했다. 여기까지는 ‘유럽 AI에 아시아 자본이 힘을 보탰다’는 서사로 읽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a16z(앤드리슨 호로위츠), 엔비디아, 세일즈포스 벤처스(Salesforce Ventures), 블랙록 등이 투자자 명단에 포함됐다. a16z는 오픈AI 투자자로도 이름을 올린 미국 대표 벤처캐피털(VC)이다. 블랙록은 운용자산이 1경 원을 넘는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다. 엔비디아는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쓰이는 데이터센터 GPU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기업이다.

유럽은 미국 AI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유럽의 AI’에 30억 유로를 베팅했다. 그런데 그 미스트랄의 투자자 명단에는 미국 자본이 있고, AI 모델을 훈련하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 GPU는 미국 기업이 공급한다. 그렇다면 소버린 AI에서 말하는 ‘주권’은 정확히 무엇인가.

미스트랄은 자본의 국적과 AI의 주권은 별개라고 설명한다. 누구의 돈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데이터가 어디서 처리되는지, 운영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어느 나라 법의 적용을 받는지가 주권의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미스트랄은 프랑스 법인이고 유럽의 규제 체계 아래서 운영된다. 미국 투자자가 주주라는 사실이 미스트랄을 미국 기업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소버린 AI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국적이 아니라 데이터가 처리되고 법이 적용되는 국가가 어디냐다.

하지만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자본과 기술의 관계다. 예컨대 엔비디아는 미스트랄의 투자자이면서 동시에 미스트랄이 대규모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사용하는 핵심 GPU 공급망의 중심에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할 경우 미스트랄의 개발 속도가 직접적으로 영향받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2023년 이후 고성능 AI 반도체의 수출 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주권’이 이 지점에서 얼마나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지는 열린 질문이다.

불완전한 주권, 그래도 유효한 이유

다소 우려의 시각으로 볼 여지가 있음에도 이번 투자는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미스트랄은 소버린 AI 수요라는 시장 자체를 정의하고, 그 시장의 기준을 자신이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유럽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 AI에 데이터를 맡기는 것을 꺼리는 한 이 시장의 수요는 실재한다. 30억 유로를 끌어모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증거다. 미국 VC들이 이 딜에 참여했다는 것 역시 역설적으로 이 시장을 그들도 진지하게 본다는 신호다.

삼성이 유럽 소버린 AI의 핵심 기업에 리드 투자자로 참여한 것은 한국 기업이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바깥에서 AI 기술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의 기술 주권 구축 과정에 직접 자본과 기술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한국 내부에서 소버린 AI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까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GPU를 몇 장 확보했는지, AI 모델의 성능이 미국·중국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하지만 소버린 AI의 진짜 질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가 강화될 경우에도 필요한 컴퓨팅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지, 한국에 저장된 정부·공공 데이터가 해외 기업의 클라우드와 AI 서비스를 거칠 때 어느 나라의 법과 정부 접근권이 적용되는지 같은 문제는 아직 충분히 공론화되지 않았다.

미스트랄이 제시한 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던진 질문만큼은 정확하다. AI 주권이란 무엇인가. 자본의 출처인가, 기술의 통제권인가, 아니면 데이터가 어디서 처리되느냐인가. 한국은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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