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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미생물의 다정한 생존 전략 ‘세균도 사랑을 아는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도 공생, 협력하는데 인간은…?

[비즈한국] “낭은 돌 의지, 돌은 낭 의지.” 

‘나무는 돌을 의지하고 돌은 나무를 의지한다’는 제주도 말이다. 용암 위에 생겨난 가시덤불 숲, 제주의 독특한 식생 ‘곶자왈’을 표현했다. 그런데 곶자왈에서 서로 의지하는 건 나무와 돌뿐만이 아니다. 세균도 있다.

‘베리박터 곶자왈엔시스’라고 명명된 이 세균은 곶자왈 돌 사이로 뻗은 식물의 뿌리에 기생한다. 식물 뿌리가 분비하는 다양한 물질을 먹고사는 대신 식물에게 영양소와 성장 촉진제를 제공하고 병원균도 막아준다. 변변한 흙도 없이 돌덩이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식물과 도움을 주고받는 것.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세균이 이토록 지혜롭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미생물학자 김응빈 교수의 책 ‘세균도 사랑을 아는데’는 0.1mm도 안 되는 ‘미물’ 세균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생명의 공생과 협력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균은 혼자가 아닌 상생과 소통, 즉 공존의 방식을 통해 수십억 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남았다.

세균도 사랑을 아는데: 세상을 연결하는 가장 작은 생명들
김응빈 지음, 사회평론

팍팍한 우리네 삶보다 때론 세균의 세상이 더 너그러워 보인다. 일부 미생물은 자기의 에너지와 자원을 들여 ‘공공재’를 합성해서 세포 밖으로 분비해 주변의 다른 미생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자선활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공공재를 만드는 미생물과 그 혜택을 받는 미생물은 대부분 친족이다. 매우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인 기실 자기네 종족 보존과 번성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친족을 위해서만 그러는 건 아니다. 낯선 세균들끼리도 우호적 교류를 한다. 그것도 아주 흔하게.

세균은 물질대사 과정에서 대사물 일부를 세포 밖으로 잃는다. 그로 인해 주변 다른 세균들이 공짜로 혜택을 누린다. 세균들마다 이런저런 물질을 내놓으면서 나눔의 규모가 커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규칙적인 물물교환 수준으로 발전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공동체가 된다. 아예 대를 이어 관계를 이어가는데, 서로 착 달라붙은 채로 세포분열을 하거나 아주 가까이에서 나노튜브로 서로를 연결해 물질을 직접 이동시키기까지 한다.

사람 역시 미생물과 공생한다.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소화관에는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미생물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를테면 장에서 살아가는 수백 종의 장내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식이섬유 등을 발효시켜 짧은사슬지방산과 비타민, 아미노산, 항염증물질을 내놓는다. 장내미생물이 내뿜는 대사물질은 면역기능은 물론 뇌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간의 생존에도 미생물이 필수적인 셈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유산균이 이 같은 유익균, 이른바 프로바이오틱의 대표 사례다.

살모넬라균이 두 개의 동일한 세포로 분열하는 모습. 사진=Janice Haney Carr/CDC

특히나 놀라운 것은 세균의 ‘내리사랑’이다. 세균은 세포 하나가 곧 개체인 단세포 생물이다. 보통 자라서 두 배로 커지면 세포분열을 해 똑같은 크기의 세균 둘로 나뉜다. 과거에는 세균은 늙어죽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2005년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둘로 나누어진 세균의 양쪽 끝부분은 원래 가지고 있던 면과 새로운 절단면이 생기는데, 손상된 단백질은 예전의 면으로 보내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세포분열이 거듭되면서 손상된 단백질이 쏠린 세포는 노화가 가속돼 결국 죽음을 맞는다. 만약 손상된 생체물질을 두 세포가 똑같이 나눠 가진다면 세대를 거듭하면서 손상이 퍼져나갈 텐데, 그걸 막는 전략인 것이다. 하찮은 미물조차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출발점을 물려주는 모습에서 저자는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떠올린다.

흔히들 단순하거나 생각 없는 사람을 ‘단세포’라고 놀린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실은 세균이 그렇게 ‘단세포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저자는 세균이 그냥 질병을 유발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가장 긴밀한 연결고리임을 역설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생명체가 보여주는 공생과 협력의 모습은 각자도생이 난무하는 인간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세균도 사랑을 아는데” 사람은 그보다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남희 기자

문화예술 분야와 콘텐츠 관리를 담당합니다.

namhee@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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