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최초의 사진 매체 특화 공립 미술관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사진 전시와 함께 포토북 카페, 암실, 포토 라이브러리까지 체험 가능한 곳으로, 10여 년의 준비 끝에 2025년 5월 개관한 ‘신상’ 미술관이다. 이곳에서 지난해 작고한 현대 사진의 거장 마틴 파(Martin Parr)의 대규모 회고전가 열리고 있다길래 도봉구 창동으로 향했다.

창동역 1번 출구로 나와 걷다 왼쪽으로 꺾으면 건물들 사이로 모던한 느낌의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를 향해 직진으로 걷다 보면 씨드큐브 창동 앞의 거대한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조각가 임영희의 ‘공간과 단상-Ⅱ’로, 망원경을 들고 서 있는 높이 13미터의 거대한 사람 형태이다. 몸체 부분이 검은색과 흰색으로 나뉘어 있는데, 재미난 건 납작하고 슬림한 옆모습으로 되어 있어 각도에 따라 부피감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 이 외에도 몇몇 조형물들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과 어우러지며 전형적인 베드타운인 창동에 독특한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외관부터 사진미술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직사각형의 모듈을 층층이 쌓아 올린 외관의 질감이 독특한데, 사진의 최소단위인 픽셀을 모티프로 한 것이라고. 출입구 또한 카메라 조리개가 열렸다 닫히는 원리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빛과 시간에 따라 외벽의 색감이 달라지도록 설계한 것도 사진의 핵심 요소인 빛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마디로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여러 각도에서 시간을 들여 감상하기 좋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와 한국 건축가 윤근주의 협업물로, 제11회 한국문화공간상 뮤지엄 부문 수상기관으로 선정됐다.
내부로 들어서면 높이 10미터에 달하는 층고 높은 로비와 함께 상어 속에 마틴 파의 얼굴이 삽입된 ‘오토포트레이트, 베니돔, 스페인’이 관람객을 반긴다. 지금 열리고 있는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는 지난 7월 16일 시작해 10월 18일까지 진행으로, 마틴 파의 대표작 500여 점과 1982년부터 2026년까지 출간된 사진집 90권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세계적인 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의 작가로 활동한 마틴 파는 수십 년간 현대 사회의 일상과 시각문화를 집요하게 관찰해 왔다. 그의 고향인 영국은 물론 전 세계 관광지, 스포츠 경기장, 패스트푸드점과 거리 등 사람들이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을 꾸준히 기록해 온 것. 때문에 무척 친숙한 풍경이면서도 순간순간 과장된 색채와 밀도 높은 화면과 절묘한 포착으로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찍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 사진을 보며 ‘어?’ 하고 놀라며 가까이 들여다보게 될 것이고,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남북한에서 촬영한 그의 사진들을 보며 의외의 웃음을 터트리게 될 것. 사진이라 하면 괜히 어렵게 느끼는 일자무식이라고 괜히 주춤할 필요 없다. 오늘날 우리가 SNS, 광고 등에서 매일 마주하는 강렬한 색채와 밀착된 시선들이 이미 그의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이미 전시 제목 자체가 ‘우리는 마틴 파다’라고 명랑하게 선언할 만큼, 모두가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임을 표방한다.
누구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일상을 기록하는 이 시대에 사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장 곳곳에 관람객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만드는 거울을 배치해 두고, ‘세상은 웃기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루한 것에는 의외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모든 사진은 선전이다’ 등 마틴 파의 문장을 새겨 놓아 생각할 여지를 던진다.
가구 브랜드 알소(Arso)가 협찬한 소파에 앉아 마틴 파의 사진책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관람 형태도 독특하다. 얼마 전 유영국 회고전에서 열람용으로 비치했던 절판본 도서가 분실됐던 사례를 보면 리스크가 있지 않나 싶지만, 관람객들이 작품에 카메라부터 들이대기보다 차분히 앉아 찬찬히 사진책을 읽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 이 또한 중요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시간을 들인 편안한 관람을 권한다. 전시를 보고 사진에 흥미가 더 커졌다면 4층에 위치한 포토라이브러리도 들려보자. 국내 사진 관련 자료와 다양한 사진집,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마틴 파의 사진집을 만날 수 있는 건 물론.
마틴 파 회고전은 물론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관람료가 무료다. 주중에는 오후 8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은 오후 7시까지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니 참고할 것(월요일 휴관). 자녀와 함께라면 사진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을 찾거나 인근의 중랑천 산책도 염두에 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