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비즈한국

이달의 브랜드
익숙함을 낯설게 만든 ‘버거킹’

친숙한 일상 브랜드를 새로운 맥락과 경험으로 재해석

편집자 주
브랜드가 상품을 넘어 감각과 경험, 태도로 기억되는 시대,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사는지보다 무엇에 끌리고 어떤 경험을 기억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비즈한국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와 함께 매월 ‘이달의 브랜드’를 선보인다. 비마이비가 포착한 브랜드의 새로운 감각과 흐름을 독자들에게 전하며, 지금 주목받는 브랜드가 왜 선택받았는지 그 맥락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비즈한국] 익숙함은 브랜드의 강력한 자산이지만 때로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오래 봐온 브랜드일수록 소비자는 무엇을 파는지, 어떤 이미지를 가졌는지 이미 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제품 하나, 새로운 광고 하나로는 좀처럼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번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새롭게 보여주느냐다.

8월 주목받은 브랜드들은 익숙한 자산의 쓰임을 조금씩 비틀었다. 캠핑장에서 보던 헬리녹스의 의자는 음악을 듣는 도심의 휴식 도구가 됐고, 버거킹은 글로벌 프랜차이즈에 ‘백반집 감성’을 입혔다. 용산 아이파크몰은 쇼핑몰을 ‘덕질’을 위해 일부러 찾아가는 공간으로 바꿨고, 수천 년 된 고전 ‘오디세이아’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를 만나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미용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는 시술을 이야기하는 대신 사회가 정한 외모의 기준에 대해 긴 대화를 시작했다.

비마이비는 8월 ‘입고’에 헬리녹스, ‘먹고’에 버거킹, ‘머물고’에 용산 아이파크몰, ‘즐기고’에 ‘오디세이’, ‘쓰고’에 강남언니를 선정했다. 매달 일상에서 만나는 100여 개 브랜드를 살펴보고 아이덴티티와 시의성, 차별성, 커뮤니케이션, 화제성 등을 기준으로 분야별 브랜드를 고른다.

새로운 것은 반드시 없던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 8월의 브랜드들이 보여준 각기 다른 방식이다.

입고 : 캠핑 의자가 신발을 만났을 때, ‘헬리녹스’

헬리녹스가 지난 7월 말 크록스와 함께 선보인 협업 제품은 출시 5분 만에 온라인 물량이 모두 팔렸다. 체어와 테이블로 이름을 알린 아웃도어 브랜드가 신발을 만든다는 조합부터 낯설다. 하지만 헬리녹스가 최근 몇 년간 움직여온 방향을 보면 갑작스러운 선택은 아니다.

헬리녹스의 브랜드 철학은 ‘앳 홈, 애니웨어(AT HOME, ANYWHERE)’, 어디에서든 편안하게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캠핑이나 아웃도어가 아니라 ‘어디에서든’이다. 그래서 헬리녹스는 익숙한 캠핑 장비를 낯선 장소로 계속 옮겨왔다.

복합문화공간 ‘카메라타 황인용 뮤직스페이스’에서는 ‘섬머 뮤직 캠핑(SUMMER MUSIC CAMPING)’을 열어 음악을 들으며 헬리녹스의 체어와 테이블에서 쉬도록 했다. 가수 장범준의 게릴라 콘서트 프로젝트 ‘버스카버스카’와 전자음악과 독서를 결합한 ‘리딩 시티’에도 제품을 제공했다. 산과 캠핑장에서 보던 의자가 공연장과 독서 공간으로 들어오자 같은 제품의 의미도 달라졌다.

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페치와 체어·짐색·더플 등을 만들었고 슈프림, 라이카, PAF 등과도 협업했다. 지난해에는 코오롱FnC와 ‘헬리녹스 웨어’를 론칭해 캠핑 장비에서 쌓은 기술과 디자인을 옷으로 옮겼다. 이번 크록스 협업까지 더하면 헬리녹스라는 이름 아래 의자부터 가방, 옷, 신발까지 모인 셈이다.

그런데도 브랜드가 산만해 보이지 않는다. 제품을 확장하기 전에 ‘어디에서든 편안한 휴식’이라는 기준을 먼저 세웠기 때문이다. 헬리녹스는 캠핑용품을 더 많이 만드는 대신 캠핑용품에서 얻은 경험을 다른 일상으로 옮기고 있다.

먹고 : 버거킹이 ‘백반집 감성’을 꺼내든 이유

버거킹 매장 앞에 ‘아침됩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새로울 것 없는 문장이지만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로고 아래 놓이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버거킹은 지난 7월 말 모닝 메뉴 판매 매장을 확대하면서 원색 포스터와 입간판을 내걸었다. 세련된 광고 대신 동네 백반집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다.

버거킹은 원래 브랜드 이미지를 비트는 데 능숙하다. ‘트러플 머쉬룸 와퍼’를 다시 내놓을 때는 인기 연애 프로그램을 패러디했고, ‘뉴와퍼’ 출시 전에는 ‘와퍼 단종’이라는 메시지로 소비자를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글로벌 브랜드와 한국의 오래된 식당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서 재미를 만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한편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수동에 선보이는 세계 최초 플래그십 매장 ‘플레임그라운드’에서는 버거킹의 핵심 자산인 ‘불맛’을 전면에 내세운다. 일반적인 패스트푸드 매장과 달리 전용 메뉴와 테이스팅 코스를 마련해 불맛을 하나의 미식 경험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한쪽에서는 백반집처럼 친근하고, 다른 쪽에서는 프리미엄 레스토랑처럼 진지하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익숙한 버거킹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오랫동안 쌓인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스스로 깨뜨릴 줄 안다.

머물고 : 쇼핑보다 ‘덕질’, 용산 아이파크몰의 변신

쇼핑몰은 익숙하다. 옷을 사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곳이다. 문제는 이제 이 정도의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쇼핑몰까지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웬만한 물건은 온라인에서 살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이나 영화관도 어디에나 있다. 용산 아이파크몰은 여기에 ‘취향’을 집어넣었다.

최근 아이파크몰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캐릭터처럼 팬덤이 뚜렷한 콘텐츠가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초 문을 연 글로벌 피규어 브랜드 굿스마일컴퍼니 매장은 일주일 만에 1만 3000명이 찾았다. 치이카와샵과 반다이남코 코리아스토어 등이 자리 잡았고, 체험형 공간 ‘도파민 스테이션’과 팝업 전용 공간 ‘더 코너’도 만들었다.

행사의 방향도 분명하다. 말랑이와 왁뿌볼 등을 모은 ‘말랑페스타’, 20여 개 키보드 전문 브랜드가 참여한 ‘아이파크몰 키보드 페스티벌’처럼 모두에게 적당히 인기 있는 콘텐츠보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꽂히는 취향을 골랐다. 여기에 디자이너·스트리트 패션과 러닝·아웃도어 브랜드를 강화해 콘텐츠를 보러 온 사람이 자연스럽게 쇼핑까지 이어가도록 했다.

변화는 숫자로도 나타났다. 비마이비 자료에 따르면 도파민 스테이션 방문객이 증가한 기간 아이파크몰 전체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 늘었다. 쇼핑몰을 ‘많은 사람이 올 만한 곳’으로 만드는 대신 ‘누군가 반드시 오고 싶은 곳’으로 바꾼 결과다.

즐기고 : 3000년 된 이야기가 새롭다 ‘오디세이’

올여름 가장 뜨거운 영화는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약 3000년 전 쓰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가족이 기다리는 왕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고전에도 때아닌 바람이 불었다. 교보문고에서는 지난 7월 ‘오디세이’와 ‘오디세이아’ 등 관련 키워드가 포함된 책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600% 증가했다. 밀리의 서재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검색량이 개봉 전 일평균의 3.6배로 뛰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꺼내든 2030세대도 적지 않았다.

3000년 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든 또 하나의 장치는 상영 방식이다.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된 작품의 화면을 제대로 보기 위해 관객들은 특수상영관을 찾아 움직였다. 특히 원본 화면비를 구현하는 CGV 용산 아이맥스는 예매 경쟁이 과열됐고 다른 지역에서 서울까지 찾아오는 ‘원정 관람’도 이어졌다. 아이맥스와 일반 상영관의 화면 차이는 밈이 돼 온라인을 돌아다녔다.

‘오디세이’의 흥미로운 점은 최첨단 영화 기술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읽어온 이야기에 붙었다. 가장 오래된 콘텐츠와 가장 현대적인 영화 경험의 만남이 익숙한 고전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들었다.

쓰고 : 미용의료 플랫폼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묻다, 강남언니

미용의료 플랫폼이라면 어떤 시술이 인기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어느 병원의 후기가 좋은지를 이야기할 것 같다. 그런데 강남언니가 최근 시작한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정작 이런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기준 이탈 모임’이라는 이름의 팟캐스트에는 디자이너 박시영, 유튜버 명예외국인, 출판사 무제 이사 김아영이 출연한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나잇값’과 ‘취향’, ‘통제’, ‘외모평가’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은연중 요구하는 기준을 놓고 한 시간 가까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는다.

변화의 배경에는 지난 7월 진행한 리브랜딩이 있다. 강남언니는 글로벌 브랜드명을 ‘Unni(언니)’로 통일하고 로고와 앱 UX를 바꿨다. 미용의료 가격과 후기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넘어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아름다움을 선택하도록 돕는 ‘글로벌 뷰티 내비게이터’가 되겠다는 것이다. 새 브랜드 미션 역시 ‘나다운 아름다움’과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에 초점을 맞췄다.

‘나다움’ 자체는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강남언니가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은 이를 광고 카피로 끝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준 이탈 모임’에서는 외모를 평가받았던 경험부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출연자들의 실제 이야기가 오간다. 미용의료 플랫폼이 아름다워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아름답다는 기준은 누가 정했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8월의 브랜드 ‘버거킹’

햄버거만큼 익숙한 음식도 드물고, 버거킹만큼 설명이 필요 없는 프랜차이즈도 드물다. 그래서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새로워지기는 어렵다. 새로운 메뉴를 하나 더 내놓는다고 소비자가 브랜드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8월의 버거킹은 익숙한 브랜드를 낯설게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보여줬다. 하나는 ‘아침됩니다’라는 문구를 앞세운 백반집 감성의 모닝 캠페인이다. 글로벌 햄버거 브랜드와 오래된 동네 식당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엉뚱한 조합이 소비자의 시선을 끌었다. 버거킹이 그동안 연애 프로그램 패러디나 ‘와퍼 단종’처럼 조금은 과감하고 장난스러운 마케팅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브랜드 특유의 유머도 놓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 방향이다. 성수동에 선보이는 세계 최초 플래그십 매장 ‘플레임그라운드’에서는 패스트푸드의 익숙함을 벗고 프리미엄 미식 경험을 강조한다. 버거킹의 핵심 자산인 ‘불맛’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일반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전용 메뉴와 테이스팅 코스까지 준비했다. 백반집처럼 친근하게 내려갔다가 프리미엄 다이닝처럼 깊게 들어가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전략이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도 모두 ‘버거킹답다’는 점이다. 버거킹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갑자기 고급스러운 브랜드인 척하지 않았고, 대중에게 다가가겠다고 가격 경쟁에만 매달리지도 않았다. 대중과 만날 때는 특유의 유머를 활용하고, 브랜드를 깊게 보여줄 때는 오랫동안 지켜온 ‘불맛’을 꺼냈다.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정체성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두 가지 강점을 낯선 방식으로 다시 보여줬다.

익숙한 브랜드가 새로워지는 방법은 반드시 변신에 있지 않다. 때로는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보지 못했던 모습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백반집 감성에서 프리미엄 불맛까지, 익숙한 버거킹을 가장 버거킹답게 낯설게 만든 것. 8월의 브랜드로 버거킹을 주목한 이유다.

봉성창 기자

기업이 말하는 성장의 언어와 그 뒤에 놓인 현실의 간극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날카롭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산업의 현재와 다음을 기록하겠습니다.

bong@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광펜 추가
✕ 형광펜 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