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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PBR 기업 220곳 이름표 단다, 지주사·금융주 긴장

11월 2일 첫 명단 공표…기업가치 제고 계획 없으면 MTS에도 ‘저PBR’ 표시

[비즈한국] 오는 11월부터 장기간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기록한 상장사 명단이 공개된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저PBR 기업 공표제도 세부기준안을 공개하면서다. 거래소 간이 시뮬레이션 결과 공표 대상은 최소 120개, 최대 220개 기업으로 추산된다. 공표 대상에 오른 기업은 거래소 공시 홈페이지에 이름이 올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도 ‘저PBR’ 태그가 붙는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내지 않은 기업에는 사실상 ‘저평가 방치 기업’이라는 이름표가 붙는 셈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11월부터 저PBR 기업 명단을 공표한다. 사진=최준필 기자

코스피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가 기준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28일 ‘저PBR 기업 공표제도’ 세부기준안을 공개하고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저PBR 기업 공표제도는 낮은 PBR에도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하지 않거나 낮은 주가를 방치하는 기업을 공개해 기업가치 개선을 유도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이를 ‘네이밍 앤드 셰이밍(Naming & Shaming)’ 방식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공표 대상은 시장별·업종별로 나눠 정한다. 코스피 상장사는 최근 3년간 6개 반기 연속으로 같은 업종 내 PBR 하위 25%에 포함되면 공표 대상이 된다. 코스닥 상장사는 기준이 하위 10%다. 업종 구분은 글로벌 산업분류 기준인 GICS(Global Industry Classification Standard)를 활용해 11개 업종으로 나눈다.

금융당국이 업종별 기준을 택한 것은 금융업이나 장치산업처럼 구조적으로 자산 규모가 크고 PBR이 낮게 형성되는 업종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PBR 1배 미만이라는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면 업종별 차이를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일시적인 주가 상승으로 공표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장치도 뒀다. 원칙적으로는 최근 6개 반기 연속 기준 이하인 기업이 대상이지만, 6개 반기 중 1개 반기만 기준을 웃돈 경우에는 과거 7번째 반기 PBR까지 확인한다. 이때 해당 반기 PBR도 기준 이하라면 공표 대상에 포함된다. 반대로 최근 6개 반기 중 2회 이상 기준을 벗어나면 공표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내면 1년 면제

기업이 공표를 피할 수 있는 길도 있다. 저PBR 개선계획을 포함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면 1년간 공표 대상에서 면제된다. 개선계획에는 저PBR 원인 분석, 목표 설정, 개선계획, 이행평가 등이 담겨야 한다. 형식적인 공시만으로 면제받는 것을 막기 위해 거래소가 별도 양식과 지침을 제공한다.

다만 장기간 저PBR 상태가 이어진 기업은 예외다. 시장별·업종별 기준으로 최근 6년간, 즉 12개 반기 연속 하위 기준에 해당한 기업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해도 면제 특례를 받을 수 없다. 금융당국은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계획 공시를 넘어 실제 PBR 개선을 촉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간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특례 적용이 불가능한 기업은 약 120개다. 코스피 80개, 코스닥 40개 수준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내지 않을 경우 공표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은 최대 약 220개로 추산된다. 코스피 130개, 코스닥 90개 규모다. 전체 상장사의 5~10%가 ‘저PBR 기업’으로 공표될 수 있는 셈이다.

첫 공표 시점은 11월 2일이다. 거래소는 8월 5일부터 관련 규정·세칙 개정 예고에 들어가 8월 24일까지 의견을 받는다. 이후 9월 중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개정안을 승인한 뒤 11월 첫 거래일에 첫 명단을 공개한다.

MTS에 ‘저PBR’ 태그, 기업 IR 부담 커진다

이번 제도의 파급력은 단순 명단 공개에 그치지 않는다. 저PBR 기업으로 공표되면 거래소 공시 홈페이지에 명단이 올라가고, 증권사 HTS와 MTS 종목명에도 ‘저PBR’ 태그가 붙는다. 투자자들이 주식 거래 화면에서 해당 기업이 저PBR 공표 대상이라는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장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저PBR 태그는 기업의 수익성이나 재무 안정성 자체를 직접 평가하는 지표는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주주환원이나 자본 효율 개선에 소극적인 기업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모두 MTS에서 해당 표시를 확인하게 되면 IR 대응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금융지주와 지주회사, 철강·유통·건설 등 전통적으로 PBR이 낮게 형성돼 온 업종으로 향한다. 다만 이번 제도는 시장별·업종별 상대평가 방식인 만큼 단순히 PBR 1배 미만이라고 해서 곧바로 공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업종 안에서 장기간 하위권에 머무른 기업이 대상이다.

이미 금융지주들은 저PBR 해소 압박에 대응해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해 왔다.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는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확대를 앞세워 밸류업 정책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주 안에서도 자본비율과 주주환원 여력, 자기자본이익률(ROE)에 따라 시장 평가가 갈리는 만큼 저PBR 공표제도 시행 이후 업종 내 차별화가 더 뚜렷해질 수 있다.

지주회사도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지주회사는 보유 자회사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고, 자회사 지분 가치와 순자산가치가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SK, LG, 롯데지주, GS, 한화 등 주요 지주사들은 계열사 실적과 배당, 자사주 정책, 사업 재편 방향에 따라 시장의 재평가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밸류업 공시’ 압박 본격화

이번 제도는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사실상 압박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저PBR 공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10월 22일 PBR 산정 기준일 전까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해야 11월 첫 공표에서 면제될 수 있다. 거래소는 9월 중 기업들이 과거 반기별 PBR과 업종 내 하위 기준 해당 여부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상장사들은 앞으로 자신의 업종 내 PBR 순위와 개선계획 공시 여부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특히 주가가 장기간 순자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업은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비핵심 자산 매각, 사업구조 개편 등 구체적인 주주환원·자본 효율 개선 방안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거래소는 저PBR 공표 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진 면담, 설명회, 컨설팅도 추진한다. 일정 규모 이하 기업에는 외부 전문가를 통한 PBR 개선 컨설팅 제공도 검토한다. 또 상장폐지 실질심사와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에도 PBR 등 주주가치 관련 지표를 반영할 계획이다. 다만 저PBR 자체를 상장폐지 심사 발동 사유로 추가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저PBR 공표제도가 기업 밸류업 정책의 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그동안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는 자율적 성격이 강했지만, 앞으로는 저PBR 기업으로 공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실질적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표 대상에 오른 기업은 주가 부양이나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저PBR 태그가 MTS에 표시되면 개인투자자들도 해당 기업을 저평가 방치 기업으로 인식할 수 있다”며 “특히 지주회사나 자산주처럼 오랫동안 저평가 논란이 있던 기업들은 11월 첫 공표 전까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을지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종국 기자

기업의 움직임 뒤에 있는 구조와 이해관계를 취재합니다. 드러난 사건보다 그 사건이 벌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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