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NS에 누군가가 골프 앱의 조인란을 캡처해서 올렸다. 그린피가 3만 원, 4만 원이었다. 아무리 혹서기라고 해도 예전엔 상상할 수 없는 그린피다. 혹시 누군가 어그로를 끌려고 조작한 것일까? 평소 자주 사용하는 골프 앱이어서 들어가 봤다. 사실이었다. 댓글들을 읽어 봤다. 부킹 매니저가 임박해서 자체적으로 그린피를 내린 것이라는 답글이 있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버티면 1만 원에도 라운드가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조인을 하는 사람들은 3명의 라운드를 싫어한다. 캐디피와 카트비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4명을 맞춰야 하는 부킹 매니저는 그린피를 내려서라도 멤버를 구해야 하는 것이고, 그 그린피로 왔다는 것을 조인 멤버에게 말하지 말기를 부탁받는다. 가끔 조인 골프를 가서 얼마에 왔는지 물어보면 그린피가 서로 다른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물론 부킹 매니저의 비즈니스 활동에 따라 일어나는 그린피 특가라는 것은 팩트지만, 골퍼들의 특가 그린피 기준이 이미 많이 낮아졌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이 정도는 돼야 골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클래스가 하위급이거나 상태가 안 좋은 골프장은 비로소 무한 경쟁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한민국의 골프장은 골프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의 높은 요금을 보장받았다. 아무리 교통이 안 좋고 시설이 별로인 골프장이라도 그래도 골프장이니까 요금이 높아도 골퍼들은 받아들여야 했다. 최상급 코스와 최하급 코스의 요금 차이가 그 코스의 차이만큼 나지 않았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그린피의 상향 평준화가 일어났다. 골퍼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여기가 이 돈을 받는다고?”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고 이렇게 상태가 엉망인데 그린피가 00이라고? 동네 모텔에 가까운 코스가 골프 코스라는 이유만으로 4성급 호텔 요금을 받는 격이었다.
이제 그 시대는 막을 내린 듯하다. 골프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들면 일정 이상의 수익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것은 마치 의사나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고소득이 보장되었던 시대를 지나 그들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과도 같다.
미국이나 영국의 골프장은 그린피가 천차만별이다. 일본도 그렇다. 동네의 커뮤니티 코스는 단돈 몇십 달러지만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코스의 그린피는 1000달러에 육박한다. 수십 배의 차이가 난다. ‘이 그린피에 이 정도 상태면 나쁘지 않지’와 ‘역시 그린피 값을 하네’가 함께 공존한다. 대한민국의 골프장도 이제 많은 골프장이 스스로를 낮추고 저가 골프장임을 커밍아웃하지 않을까?
그린피 20만 원의 한 팀을 받는 것과 그린피 10만 원의 두 팀을 받는 것을 비교해 보자. 그린피상으로는 같은 액수다. 하지만 카트비는 두 팀을 받으면 두 배를 받게 된다. 한 팀보다 두 팀을 받으면 식음료 매출도 달라질 것이다. 캐디피는 캐디에게 돌아가는 것이지만 라운드 팀 수가 적은 골프장의 캐디는 떠나가기 마련이다. 골프장은 어떻게든 더 많은 팀을 받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는 부킹 매니저와 연계해서 이뤄질 것이다.
물론 혹서기라서 그럴 수 있다. 당연히 성수기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접근성이 좋고 시설이 좋고 명성이 높은 소위 명문 구장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그 코스들은 굳이 가격 경쟁을 하지 않아도 골퍼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꿈의 구장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비즈니스 골프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인카드 사용을 금지시키지 않는 한 도시에서 가까운 전통의 명문 구장의 사정은 별반 바뀌지 않을 것이다.
최근 골퍼들의 골프장 이용 추세를 보면 혹서기와 혹한기의 라운드 수가 예전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양극화, 그리고 고가 골프장과 저가 골프장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골프장에서 명품과 럭셔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코스에 비해 지나치게 웅장하고 화려한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와 코스 주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조형물 등으로 마치 톱클래스의 골프 코스인 양 행세했던 골프장들이 스스로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골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조금 더 멀리 가더라도 저렴한 그린피를 찾아가는 골퍼들은 ‘나, 오늘 얼마에 쳤잖아’를 마치 무용담처럼 이야기할 것이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더 이상 무용담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