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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리포트
이창동 ‘가능한 사랑’, 넷플릭스 타고 K콘텐츠 가능성 넓히길

'오디세이보다 포괄적이고, 기생충보다 진지' AI 시대에 적합…미국 아카데미 수상 노려볼 만

[비즈한국] 2026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수많은 사람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동생이자 제작자인 이준동 대표에게 “이 영화를 기다리느라 매일 술을 마셔야 했던 제작자 이준동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제작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일깨웠다.

지난 9월 1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이 경쟁 부문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영화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이 2018년 ‘버닝’ 이후 8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지만 기획기간까지 헤아리면 10년이 걸렸다. 쌍용자동차 집단 해고 등 한국 노동 현실과 고통을 다루는 데에 감독 개인의 윤리적인 고민이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했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는 이창동 감독이지만, 국내 영화 생태계에서는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에 선뜻 투자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준동 대표는 “작품의 완성도는 높더라도 상업성을 대놓고 밀어붙이는 영화는 아니고….국내 투자자들이 관심은 있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영화 투자 체력이 거의 바닥이어서 아주 상업적인 장르 영화조차도 투자를 못 받는 상황”이었다고도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와 OTT의 약진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이후 투자처가 나타났으나 국내 기업이 아니었다. 바로 넷플릭스였다. 올해 신설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다군 지원 선정작으로 뽑혔음에도 지원 신청을 스스로 물린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작동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제작비 60억 원 이상 80억 원 미만 규모였는데 자진 취하한 이유로는 넷플릭스의 투자 조건이 더 좋다는 점이 꼽혔다.

넷플릭스는 애초 제작비에 2배 정도 더 얹어 120억~130억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제작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넷플릭스는 기본적으로 온라인 공개방식이기에 극장 흥행의 부담도 덜한 점이 주효했다. 손익분기점과는 별도로 영화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셈이다. 더구나 글로벌 공개와 향유가 단번에 이뤄진다.

넷플릭스에게 흥행 수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타깃은 이창동 감독이다. 그의 명성과 브랜드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작가주의 감독이 넷플릭스의 인지도를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칸과 베니스 수상 감독이고, 이미 ‘버닝’으로 아카데미 예비후보에도 올라 인지도가 있다. 넷플릭스의 최종 목적은 아카데미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마도 그것이 이창동 감독이 언급한 이제 시작이라는 말의 맥락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국내 대기업 자본의 동력이 작용했지만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의 자본과 시스템이 그 역할을 자임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제9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로 출품이 결정됐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제한적 극장 상영(Limited Theatrical Release)을 추진했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가 되는 데 필요해서다. 미국 내 지정된 주요 도시 50개 가운데 10개 이상의 상업 극장에서 최소 일주일 이상 연속 상영해야 한다. 또 하루 3회 이상 그 가운데 한 회는 프라임타임인 오후 6시~10시 사이에 지정된 미국 대도시 극장에서 유료 상영해야 한다. 이는 아카데미 측이 스트리밍 영화를 견제하기 위해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수백억 원을 투입하는 아카데미캠페인(FYC, For Your Consideration)에도 나선다. 이러한 방식으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4관왕 수상의 효과를 봤다. 물론 아카데미상을 받기 위한 조치만은 아니다. 영화 거장들은 극장 개봉을 양보할 수 없는 조건으로 내세운다. 한국에서도 9월 23일 넷플릭스보다 두 달 정도 앞서 영화관에서 개봉한다. 전통적인 영화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이 짧지만 유효한 선택이 극장 제한 개봉인 셈이다.

영화 ‘가능한 사랑’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그렇다고 베니스 국제영화제 전후로 할리우드 매체들이 ‘가능한 사랑’에 더 열띤 호평을 보낸 것이 넷플릭스의 투자 때문만은 아니다. 근원적이면서 미학적 예술의 가능성을 대중적으로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례로 올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우먼 언노운’과 비교해보자.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에서 독일군의 연인이었던 여성에게 가해진 낙인과 집단 린치 현상에 다뤘다. 유럽인에게는 익숙하지만 미국에서 수용성이 높을지는 알 수 없다. 반면 ‘가능한 사랑’은 계급과 착취, 사랑과 욕망에 대해서 보편적이면서도 일상적으로 접근하며 깨달음을 공유하기 때문에 더욱 소구력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AI 시대에 지금 필요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AI 시대의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을 생각하게 해주는데, 고대로 돌아간 점을 생각하면 지금 현실을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충분히 보완하는 작품이 ‘가능한 사랑’이다. 영화 ‘오디세이’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오지만, ‘가능한 사랑’은 타인과의 사랑과 우정의 연대에 관한 작품이기 때문에 더 포괄적이다.

이러한 영화 스토리라인에서 중요한 것이 배우들의 연기고, 배우 전도연의 연기가 100년에 나올 명품연기라는 평가를 받은 배경일 것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받지 못한 연기상 수상 가능성을 기대해볼 만한 배경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계급 갈등을 직접적으로 그리면서도 블랙코미디라는 당의정을 입혔다. 이와 달리 계급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고통의 심연으로 들어간 ‘가능한 사랑’은 사랑을 넓혀 인류애와 우정의 전제 조건을 세밀하고 반성적인 성찰로 다뤘다.

이런 작품이 세계인에게 즉각적으로 공유될 수 있게 된 것은 K콘텐츠 산업에서는 하나의 채널이 열린 것이다. 넷플릭스의 약진으로 이제 플랫폼과 투자의 생태계가 바뀌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렇듯이 넷플릭스는 어떤 면에서든 국내 영화계에 영향을 미쳤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로 ‘가능한 사랑’이 남기를 바란다.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 장르를 끊임없이 특화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겁고 진지한 영화가 오히려 긍정의 선순환을 낳고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것이 흥행작 중심인 멀티플렉스 영화관 산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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