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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빨래도 제대로 못하던 로봇, 2조 원 투자받다

시연 실패와 기술력 부족에도 인간과 공존하는 ‘인지 로봇’ 비전으로 최대 투자 유치

[비즈한국]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5에서 한 스타트업 휴머노이드 로봇의 라이브 데모를 참관했다. 로봇은 빨래 더미에서 흰옷과 색깔옷을 분류하는 것을 시연하는 중이었는데, 조금 어설프다고 느껴졌다. 로봇은 가끔 흰옷을 집으면서 색깔옷을 함께 잡아 흰옷통에 넣었고, 애꿎은 빨래 바구니를 손으로 쳐버리거나, 아무것도 집지 않은 채 옮기는 동작만 하는 민망한 장면도 종종 나왔다. 몇몇 관람객은 실소를 터뜨렸다. “이 로봇이 언제쯤 인간을 도울 수 있다는 거야?”, “너무 느려서 도와주고 싶다”고 쑥덕거리던 사람들도 있었다. 

독일 로봇 회사 뉴라로보틱스의 인지로봇 4NE1과 창업자 CEO 다비드 레거. 사진=neura-robotics.com

아마존, 엔비디아, 퀄컴…잇달아 지갑 열어

의아해진 나는 업체가 어떤 곳인지 검색했다. ‘뉴라 로보틱스(Neura Robotics)’였다. 검색 결과 3개월 전에도 비슷한 해프닝이 있었다. 지난해 6월 뮌헨에서 열린 박람회 오토마티카(Automatica)에서 이 로봇의 쇼케이스를 열었는데 정작 로봇이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뉴라 측은 작동하지 않는 모형으로 행사를 치러야 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당시 CEO 다비드 레거(David Reger)는 “이 발표가 조금 덜 화려해질 것 같다”면서 쇼케이스를 시작했다. 투자자의 이목을 끌어야 할 스타트업으로선 ‘PR 참사’라고 불릴 일이었다. 회사는 이후 “엔지니어들이 아침까지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했다”, “예상치 못한 도로 통제 때문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라 로보틱스의 4NE1이 빨갯감을 구분하는 모습. 사진=neura-robotics.com

잊고 지내던 이 회사의 소식을 최근에 뒤늦게 접했다.

뉴라 로보틱스는 올해 6월 시리즈C에서 무려 14억 달러(약 2조 원)를 끌어모았다. 규모만 놓고 보면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업계 단일 투자 라운드 중 가장 많은 액수다. 기업가치는 70억 달러(약 10조 원)로 평가받았다.

투자자들의 면모도 화려하다.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Tether)가 주도했고 아마존, 엔비디아, 퀄컴, 보쉬, 섀플러, 유럽투자은행 등이 명단에 함께 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을 비롯한 쟁쟁한 투자자들이 미완(未完)의 독일 로봇 스타트업에 과감히 지갑을 연 것이다.

슈바벤의 일론 머스크

뉴라 로보틱스 창업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독일 슈바벤 지방 출신인 레거는 실업계 중고등학교(Hauptschule)를 졸업하고, 직업교육학교(Ausbildung)에서 기계 모형 제작 기술자 자격 과정을 이수했다. 정규 대학 학위는 없다. 테크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상당수가 명문 공대 출신에 빅테크 기업 및 연구소 근무 이력 등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학위도 로봇 경험도 없던 레거는 스위스의 한 로봇공학 기업에 입사해 현장에서 직접 기술을 익혔고, 이것이 뉴라 로보틱스의 창업 계기가 된다.

이러한 배경과 더불어 테크 스타트업 CEO인 그의 자신감 넘치고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독일 언론은 레거를 ‘슈바벤의 일론 머스크’라고 부른다.

다비드 레거가 뉴라 로보틱스가 소개되는 뉴욕 타임스퀘어 나스닥 타워 앞에 있다. 사진=neura-robotics.com

레거는 개인 홈페이지 맨 앞에 “세상을 바꿀 다음 혁명은 팔다리 달린 스마트폰, 즉 인지 로봇이다. 그것은 독일에서 나올 것이다. 우리는 그걸 일론 머스크에게 넘겨주지 않겠다”고 썼다.

또 “로봇 시장은 2030년까지 지금 존재하는 모든 산업보다 커질 것이다”고 단언하는가 하면 AI 규제 논쟁에 대해서는 “AI에 대한 공포 조장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스스로에게 “약간 과대망상증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선호하는 독일 산업계에서는 그의 말이 너무 ‘튄다’고 본 모양이다. 독일 공학계 전문지 VDI 나흐리히텐은 레거를 다룬 기사의 제목을 ‘뉴라의 수장–로봇업계의 논란거리(Neura-Chef – der (Auf-)Reger in der Robotik)’라고 썼다. 독일어로 ‘논란거리’를 뜻하는 Aufreger와 그의 성 Reger를 합친 언어유희다.

4NE1, 펜스 밖으로 나온 로봇

자동차회사의 조립 라인이나 물류 창고 등 공장 자동화에 쓰이는 로봇팔을 보면 대부분 안전 펜스가 쳐져 있다. 자칫 사람이 작업 범위 안에 들어갔다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뉴라 로보틱스는 이 펜스 밖으로 로봇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로봇에 카메라, 촉각 센서, 청각 시스템을 내장해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안전 펜스 없이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레거는 이를 ‘인지 로봇(Cognitive Robot)’이라고 명명했다.

로봇의 이름은 ‘4NE1’이라고 지었다. “누구를 위해서든” 일할 수 있다는 의미의 영어 ‘for anyone(포 애니원)’에서 따왔다. 공장뿐만 아니라 의료·물류·요양·가정까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 곁에서든 일하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뉴라에 따르면 4NE1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물건을 집고, 시각 정보를 인식해 스스로 판단한다. 공장에서 박스를 옮기고, 가정에서 설거지를 돕고, 사무실에서 서류를 분류하는 작업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아직 개발 단계지만 벌써 판매 가격까지 제시했다. 풀 스펙 기준 9만 8000유로(약 1억 5000만 원), 보급형 미니 버전은 1만 9999유로(약 3000만 원)에 책정돼 있다.

로봇의 이름은 ‘4NE1’은 “누구를 위해서든” 일할 수 있다는 의미의 영어 ‘for anyone(포 애니원)’에서 따왔다. 사진=neura-robotics.com

생산 계획도 공격적이다. 올해 6000대를 시작으로 내년에 1만 대 이상, 2030년에는 로봇 팔 및 휴머노이드 합산 연간 100만 대 이상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로봇 제조사로 끝날 생각이 없다는 건 ‘뉴라버스(Neuraverse)’라는 구상에서 드러난다. 뉴라버스는 로봇 AI 훈련을 위한 오픈 플랫폼이다. 외부 개발자와 기업이 각자의 데이터와 작업 시나리오를 올려 로봇 AI를 훈련시키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뉴라는 로봇 AI의 공통 운영체제가 되고, 하드웨어를 팔면서 동시에 플랫폼 수익을 만들 수 있다.

미완의 가능성

뉴라 로보틱스의 지난 1년은 꽤 극적이었다. 4NE1은 데뷔전을 펑크 냈고, 실제 작업은 아직 서툴렀다. 하지만 미래 비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갈 길은 멀다. 레거가 경쟁자처럼 지목한 테슬라 외에 중국 업체들도 쟁쟁하다. 생산 규모와 가격, 안전성, AI 신뢰성 등 넘어야 할 산도 많다. 4년 뒤 100만 대 생산이라는 계획 역시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장악했듯 피지컬 AI·휴머노이드의 시대가 언제 갑자기 찾아올지, 그리고 뉴라 로보틱스가 그 주인공이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필자는 단순히 ‘미완’이라고만 보고 넘겼던 로봇, “저 팔이 5년, 10년 뒤에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2조 원을 베팅한 투자자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마침 뉴라 로보틱스는 오는 9월 4일부터 8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26에서 다시 한번 비전을 공개한다. 레거는 9월 5일 ‘유럽에서 세계로: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다.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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