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 철강 업계가 안팎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미국과 일본 같은 주요 수출국들은 자기 나라 철강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한국산 철강 제품에 높은 관세를 잇달아 매기고 있다. 내수 시장에는 경기 부진을 겪는 중국이 값싼 철강 제품을 대거 밀어내면서 가격을 지키기 힘들어졌다. 최근 미국 정부가 높은 관세 장벽을 바탕으로 자국 내 대규모 제철소 건립 계획까지 공식화하면서 한국 철강사들이 중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입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 규제 절반이 ‘철강’⋯곳곳에 수입 장벽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간한 ‘2026년 상반기 대한(對韓) 수입규제 동향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기준 전 세계 26개국에서 한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시행되거나 조사 중인 수입규제는 총 241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하반기 대비 11건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철강·금속 품목에 적용된 규제는 113건으로 전체의 46.9%를 차지하며 단일 품목 기준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화학(37건), 플라스틱·고무(35건) 등 다른 주력 수출 품목과 비교해도 철강재에 규제가 집중되는 양상이다.
신규 조사 개시 건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한 신규 조사는 2025년 상반기 10건에서 하반기 23건, 2026년 상반기 25건으로 집계됐다. 규제 조치는 선진국과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호주가 특정 강재를 대상으로 반덤핑 조사에 들어갔고, 유럽연합(EU)은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개편해 국가별 무관세 쿼터를 배분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영국 역시 쿼터 축소 및 초과분에 대한 관세 체계를 운용 중이며, 캐나다는 철강 관련 규제를 연장하는 등 주요 교역국 전반에서 보호무역 조치가 상시화되고 있다.
안방 넘보는 중국산 덤핑에⋯정부, H형강·봉강 방어막
해외 판로가 위축되는 사이 국내 내수 시장은 중국산 철강재의 유입으로 가격 형성에 지속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둔화와 내수 소비 감소로 발생한 잉여 물량이 유입되면서 국내 기초 건자재 및 특수강 시장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제강사들이 설비 가동 조절과 교대제 전환 등을 추진했으나, 건설경기 침체와 맞물려 내수 수급 불균형 해소에는 한계가 따랐다.
이에 대응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지난 9월 17일 회의를 열고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요청에 따라 중국산 H형강에 대한 덤핑방지관세 부과 및 가격약속 연장을 건의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H형강은 빌딩과 공장의 기둥재, 토목공사 등에 쓰이는 핵심 구조용 강재다.
무역위는 중국산 H형강 수입 규제가 종료될 경우 국내 산업 피해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향후 5년간 가격약속과 함께 28.23~32.72%의 덤핑방지관세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무역위는 세아베스틸과 세아창원특수강이 신청한 중국산 합금강 봉강에도 25.08~27.96%의 임시 관세 부과를 건의했다.
미·일 관세 압박 속 트럼프 ‘아이오와 150억 달러 제철소’ 발표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도 통상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유정용 강관(OCTG, 기름 파이프) 연례재심 최종 판정에서 넥스틸 29.94%, 세아제강 9.80% 등 반덤핑 관세율을 확정했다. 지난 3월 예비판정 당시 0%를 받았던 것과 비교해 세율이 크게 올랐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부과하는 50%의 철강 관세가 단순 합산될 경우, 미국 내 수입업자가 한국산 OCTG를 들여올 때 부담해야 하는 최고 관세율이 거의 80%에 달할 수 있다.
일본 역시 지난 8월부터 한국산 용융아연도금강판(GI)에 최고 38%의 잠정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조사 대상이 열연·냉연강판 등 주력 판재류로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수출 물량이 조정되고 있다.
수출 환경을 둘러싼 가장 구조적인 변화는 미국의 ‘제조업 내재화’ 추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28일 백악관에서 아이오와주에 15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입해 대규모 메사비 메탈릭스(Mesabi Metallics) 제철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연간 최대 1000만 톤의 철강 생산 능력을 목표로 하는 이 공장은 미국 내 원자재를 활용해 완제품까지 전 공정을 자국에서 소화하는 일관 생산 체제를 지향한다. 수입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장벽에 더해 미국 자체 생산 능력까지 확충될 경우, 현지 공급망에서 한국산 철강재의 점유율과 설 자리는 장기적으로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철강 산업은 내수 시장에서는 헐값에 들어오는 중국산 철강재를 막느라 바쁘고, 주력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는 높은 관세 부담과 현지 제철소 신설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게 됐다. 대내외 통상 변수에 따른 국내 철강상업의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