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선정 방식이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업계를 대표하는 여러 기업이 폭넓게 참여했다면, 최근에는 현지 인허가와 시장 진출, 공동 연구개발 등 순방국에서 구체적인 사업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이 선별되는 모습이다. 경제사절단이 단순한 세 과시를 넘어 기업의 해외 사업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핀셋 동행’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에 동행한 경제사절단에는 제약·바이오 기업 중 SK바이오팜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과거 대통령 순방마다 다수의 제약·바이오 기업이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의 브라질 출시를 앞두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 3월 브라질 국가위생감시국(ANVISA)으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으며 브라질 제약사 유로파마와 함께 브라질을 포함한 중남미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순방 기간 열린 한·브라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희귀 뇌전증 치료제 공동 연구개발(R&D)과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협력을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미국은 셀트리온, 브라질은 SK바이오팜…지역별 맞춤 선별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사절단에 참여한 제약·바이오 기업들을 살펴보면 지역별 시장 특성과 사업 목적에 맞춰 기업을 선별한 흐름이 나타난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 일정인 2025년 8월 미국 순방에 동행했다. 당시 셀트리온은 미국 생산기지 확보를 추진하고 있었고, 이후 미국 내 생산시설 인수를 마무리하며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지난 4월 이 대통령의 동남아(베트남) 순방 일정에는 배병준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사장과 김경남 웨이센 대표가 함께 했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베트남에서 범용 항바이러스제 현지 유통 및 항암 신약의 현지 임상 2상 진출을 추진 중이었고, 웨이센은 AI 내시경 의료 솔루션 진출을 준비 중이었다.
올 1월 중국 국빈 방문 순방길에는 ‘강한방’ 브랜드를 보유한 SY그룹 서기성 회장이 경제사절단에 참여했다. SY그룹은 중국 현지 대형 유통 유통망 및 헬스케어 기업 2곳과 K-헬스케어 제품 중국 내 독점 공급 및 한방 메디컬 플랫폼 구축을 위한 MOU를 체결해 현지 사업 확대에 나섰다.
이들 사례는 단순한 기업 홍보보다 현지 인허가, 유통망 구축, 공동 연구개발, 투자 협력 등 정부 간 협력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경제사절단이 외교 일정을 활용해 기업의 해외 사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운영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많이 데려가는 것보다 성과 낼 기업으로”
대통령 해외 순방 경제사절단은 정권마다 운영 방식에 차이를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신성장동력 육성을 기조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경제사절단에 참여했다. 당시 국내 바이오 산업은 글로벌 신약 개발과 해외 인허가가 본격화되기 이전 단계여서 원료의약품 수출이나 기술 협력 중심의 논의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경제사절단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2015년 중국 방문 당시에는 보건의료 분야 기업과 기관 40여 곳이 참여했다. 다만 다수의 업무협약이 구속력이 없는 협력 수준에 머물면서 실질적인 사업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는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벤처기업 참여를 확대하며 실질적인 해외 진출 지원을 강조했고, 윤석열 정부 역시 첨단산업 협력을 전면에 내세워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참여 폭을 넓혔다. 다만 경제사절단 규모가 커질수록 개별 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최근에는 경제사절단 구성 기준이 ‘얼마나 많은 기업이 참여했는가’보다 ‘어떤 기업이 현지에서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가’에 맞춰지는 분위기다. 해외 인허가 협의와 규제 해소, 현지 유통망 구축, 공동 연구개발 등 정부 간 협력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사절단을 구성하는 사례가 늘면서, 세일즈 외교 역시 규모보다 성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임의로 제약·바이오 분야를 배제하거나 숫자를 맞춘 것이 아니라 사전에 조율된 MOU 등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을 우선 선별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사절단은 미래 협력 방향을 제시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최근에는 순방 기간 중 실질적인 사업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앞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이 확대되고 순방 일정과 맞물리는 사업이 늘어난다면 경제사절단에 참여하는 기업 수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