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어차피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할 거라면,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대신 내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독일 베를린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김홍배 씨에게 왜 한국을 떠났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전남 목포 출신인 그는 한국에서 기계설계 엔지니어로 약 5년간 일했다.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다. 4년 전 아내와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했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개발 경력은 없었다.
그런 그가 올해 6월 독일 연방정부의 오픈소스 개발 지원 프로그램인 ‘프로토타입 펀드(Prototype Fund)’에 선정됐다. 독일의 전자송장(E-Rechnung) 생성을 돕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OpenInvoiceXML’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프로토타입 펀드는 개인전자 개발자에게 6개월간 최대 4만 7500유로(7100만 원)를 지원한다. 여기에 2차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4개월간 최대 3만 1667유로(4700만 원)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두 단계를 합하면 10개월 동안 최대 7만 9167유로(1억 1800만 원)다. 회사 설립이나 지분 투자 유치가 필수인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력이다. 베를린에 온 뒤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햄버거를 만들고 한국 식당에서 치킨을 튀겼다. 그렇게 약 3년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처음 만든 전자송장 서비스는 거창한 사업계획서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프리랜서 영어 교사인 아내가 매달 송장을 작성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자동화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 작은 아이디어가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독일에서도 주 60시간, 하지만 내 일을 한다
김 씨가 독일에 온 것은 2022년 무렵이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그는 장시간 근무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했다.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했어요. 그런데 그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일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그렇게 일해야 했기 때문이었죠. 어차피 그렇게 일할 거라면 다른 나라에 가서 내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한 뒤 그가 선택한 것은 취업이 아닌 창업 준비였다. 물론 당장 창업할 만한 기술도, 충분한 자본도 없었다.

Q. 한국에서는 기계설계를 했는데, 독일에 와서 코딩을 처음 배운 건가요.
“네. 독일에 와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창업을 하려고 코딩을 배운 거예요. 42 Berlin이라는 코딩학교에서 약 2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글로벌 코딩 교육 네트워크 ‘42’의 베를린 캠퍼스인 42 Berlin은 등록금도, 전통적인 의미의 교수나 강의도 없는 독특한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이다. 학생들은 정해진 강의를 듣는 대신 실제 프로그래밍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서로의 코드를 검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동료 학습(Peer-to-Peer Learning)’ 방식으로 공부한다. 코딩 경험이나 관련 학위가 없어도 지원할 수 있으며, 입학 과정에서는 약 4주간의 집중 코딩 과정인 ‘피신(Piscine)’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과 학습 의지를 평가한다. 베를린 캠퍼스는 24시간 개방되며, 기업들의 후원으로 등록금 전액이 무료다.
42 Berlin의 이러한 교육방식은 김 씨처럼 기존 직업을 떠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 김 씨 역시 이곳에서 C, C++, Python 등을 배우며 개발 역량을 쌓았다. 특히 정규 교육과정뿐 아니라 사이드 프로젝트 커뮤니티에 참여해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은 이후 InvoicingU(인보이싱유) 창업과 OpenInvoiceXML 개발로 이어졌다.
Q. 코딩을 공부하는 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햄버거도 만들고 한국 치킨집에서 치킨도 튀겼어요. 거의 3년 정도 그렇게 했죠. 힘들면 아르바이트 해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은 제 프로젝트에 투자했어요.”
그는 아내의 경제적인 지원도 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아내가 4년 동안 거의 다 일했어요. 저는 개발 공부를 하고 제가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었죠.”
한편 베를린에 와서도 그의 근무시간은 크게 줄지 않았다.
“지금도 일주일에 60시간 정도 일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다르죠.”
그에게 독일 이주는 더 적게 일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자신이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내 위해 만든 서비스, 첫 고객이 생기다
김 씨가 개발한 상용 서비스 InvoicingU의 출발점은 프리랜서인 아내의 일상이었다. 독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고객에게 청구서를 발행해야 한다. 고객명, 서비스 내역, 제공 날짜, 금액, 세금 정보 등을 정리해 송장을 작성하고 이메일로 발송한다. 업무량이 많지 않더라도 매달 같은 정보를 반복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아내가 영어 선생님인데, 송장을 보낼 때마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작성하는 거예요. 제가 옆에서 보다가 ‘이제 코딩 배웠으니까 내가 만들어줄게’라고 했죠.”
처음에는 아내가 사용하는 간단한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고객 정보와 서비스 내역을 미리 저장해두면 매달 송장을 빠르게 생성하고 이메일로 전송할 수 있는 웹 기반 서비스로 발전했다.
Q. 기존에 수작업으로 하던 일이 얼마나 간단해진 건가요.
“처음 고객 정보와 서비스 정보만 입력할 때 시간이 걸리죠. 그다음부터는 이미 정보가 저장돼 있으니까 불러와서 송장을 보내면 됩니다. 1분 안에도 보낼 수 있어요.”
처음에는 개인적인 문제 해결이었지만, 서비스를 공개하자 외부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를 도와주려고 만든 거였는데, 인터넷에 올려놓으니까 사람들이 연락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가서 솔루션도 만들어주고 그랬어요.”
현재 InvoicingU는 프리랜서와 소규모 사업자를 대상으로 고객 정보와 송장, 일정 등을 관리하는 SaaS 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고객 수는 약 30명 수준이다. 무료로 월 5건까지 송장을 발송할 수 있고, 그 이상을 이용하려면 월 14유로를 내고 유료 구독해야 한다.
아직 대규모 고객을 확보한 스타트업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고객이 존재하고, 고객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며,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매출을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험을 쌓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이 이후 독일 정부의 오픈소스 지원 프로그램과 연결됐다.
2028년 독일 전자송장 의무화, 새로운 기회가 열리다
독일은 현재 기업 간 거래에서 사용하는 전자송장 제도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PDF 파일로 송장을 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컴퓨터가 송장 정보를 자동으로 읽고 처리할 수 있는 구조화된 전자 데이터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형식이 XRechnung과 ZUGFeRD다. XRechnung은 기계가 읽는 XML 기반 송장 형식이며, ZUGFeRD는 사람이 읽는 PDF와 기계가 처리하는 XML 정보를 결합할 수 있는 형식이다.
독일 정부는 2025년 전자송장 수신 체계를 도입했고, 송장 발행 의무는 기업 규모와 매출 등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일반적인 독일 국내 B2B 거래에서는 2027년부터 일부 사업자에게 의무가 적용되고, 2028년부터는 주요 유예기간이 종료된다. 소액 거래나 소규모사업자 등은 예외다.
Q. 전자송장 제도가 바뀌는 것이 왜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나요.
“지금까지는 PDF로 사람이 볼 수 있는 송장을 만들면 됐는데, 앞으로는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XML 데이터가 필요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새로운 송장 시스템을 사용해야 하잖아요.”
독일의 기업용 회계·ERP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이미 다양한 솔루션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기업을 위한 복잡한 시스템이 모든 사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월 몇 건에서 수십 건의 송장을 발행하는 프리랜서나 작은 단체에는 사용하기 간편한 서비스가 더 적합할 수 있다. 김 씨는 여기에서 기술적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가 개발 중인 OpenInvoiceXML은 독일 전자송장 규격에 맞는 송장을 생성하고 검증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사용자는 웹사이트에서 별도 계정 없이 송장을 작성할 수 있으며, 개발자들은 이 프로젝트의 오픈소스 엔진을 활용해 다른 송장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에 전자송장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여기서 두 서비스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InvoicingU는 김 씨가 운영하는 상용 송장 관리 서비스다. 고객 정보와 송장 내역을 저장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OpenInvoiceXML은 다른 개발자나 기업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전자송장 생성·검증 기술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다. 독일 정부의 지원금은 이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지급되는 것이지, InvoicingU라는 상용 서비스에 직접 투자되는 것은 아니다.
Q. 상용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왜 핵심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나요.
“어차피 제가 InvoicingU에서 개발한 코드가 있었잖아요. 그걸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프로토타입 펀드(Prototype Fund)에 지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코드를 공개하면 경쟁자도 활용할 수 있지만, 그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쓰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사람들이 직접 설치하고 업데이트하는 게 번거로우면 제가 클라우드로 관리하면서 자동 업데이트해 주는 서비스도 생각하고 있어요.”
오픈소스 자체는 무료로 공개하되 향후 호스팅, 유지보수, 업데이트 등 부가 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직 확정된 사업 모델은 아니다. 기술을 독점하기보다는 기술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그 위에서 추가적인 사업 기회를 만들려는 시도다.
독일 정부가 개인 개발자의 시간에 투자하는 이유
김 씨가 지원받은 프로토타입 펀드는 독일 연방 연구·기술·우주부(BMFTR)의 재정 지원을 받아 Open Knowledge Foundation Deutschland가 운영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사업화에 성공한 기업보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려는 개인과 소규모 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스타트업 지원사업이 법인 설립, 사업계획서, 매출 전망, 고용 창출 등을 강조한다면, 프로토타입 펀드는 새로운 오픈소스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지원한다.
선정된 프로젝트는 반드시 오픈소스 라이선스로 공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의 지원으로 개발된 기술을 다른 개발자나 기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Q. 프로토타입 펀드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나요.
“6개월 동안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줘요. 저는 최대 금액으로 지원받고 있고요. 일반적인 창업 지원금처럼 어디에 얼마를 쓰겠다는 것보다 제가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지원받는 방식이에요.”
김 씨는 지원금을 분기 단위로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발에 투입하는 시간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철학이 드러난다.
다만 이것이 지원금을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공식 지침에 따르면 지원금은 승인된 인건비와 간접비를 기준으로 산정되며, 전체 프로젝트 예산의 최대 95%를 지원한다. 나머지 최소 5%는 신청자의 자기부담이다. 정해진 프로젝트 수행과 행정·보고 의무도 있다. 정부가 창업자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도 아니다. 기술을 공개하고 사회적 활용 가능성을 높인다는 조건으로 개발 활동을 지원하는 구조다.
김 씨가 선정된 2026년 지원 대상은 총 28개 프로젝트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인프라, 접근성, 사이버보안,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김 씨는 그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선정된 프로젝트들을 찾아봤는데, 한국인 이름은 못 봤어요. 그래서 아마 제가 한국인 최초로 이 지원을 받은 거 같아요.”
“코드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것이 더 중요”
프로토타입 펀드는 자금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선정자들에게 프로젝트 관리, 사용자 경험(UX), 브랜딩, 창업 등에 관한 코칭을 제공하며, 다른 오픈소스 개발자들과 교류할 기회도 마련한다. 김 씨 역시 최근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코칭을 받았다. 외부 전문가가 그의 프로젝트를 검토하면서 기술 자체보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조언했다.
“기술적으로 무엇을 구현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 쉬운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코칭에서는 프리랜서와 소규모 사업자,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제품을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하고, 실제 사용자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집해야 한다는 조언이 중심이었다. 계정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오픈소스라는 점, 개인정보 보호와 사용 편의성 등도 기존 솔루션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로 검토하고 있다.

OpenInvoiceXML은 현재 1000개 이상의 자동화 테스트를 통해 50개가 넘는 송장 사례와 시나리오를 검증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다음 단계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기술적 완성도만이 아니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도 쉽게 송장을 작성할 수 있는지,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오픈소스 엔진을 자신의 시스템에 통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현재 프로토타입 펀드의 2차 지원 단계에 도전하는 이유다.
3분 피칭으로 결정되는 두 번째 기회
지난 10월 9일 김 씨는 Prototype Fund의 2차 지원 심사에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회의실에 모였고, 그는 집에서 카메라를 켜고 온라인으로 발표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이어서 약 4분간 질의응답이 오갔다. 그가 답해야 했던 질문은 세 가지였다.

“왜 추가 지원이 필요한가.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달성하려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1차 지원에서는 전자송장 생성 기술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면, 2차 지원에서는 실제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첫 단계에서는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이제는 사람들이 실제로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에 선정되면 2026년 12월부터 2027년 3월까지 4개월의 추가 개발 기간이 주어진다. 개인 프로젝트의 추가 지원 한도는 3만 1667유로다. 2차 지원은 자동으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김 씨는 현재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도 지원할 수 있을까
프로토타입 펀드의 또 다른 특징은 독일 국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인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국적과 별개로 독일 거주 및 신청 주체에 관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개인 신청자는 만 18세 이상이고 독일에 거주해야 하며, 팀 단위의 경우 독일에 소재한 GbR 등 프로그램이 허용하는 신청 구조를 갖춰야 한다. 김 씨는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Q. 독일 정부 프로그램이면 독일어를 잘해야 하지 않나요.
“저도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지원서는 영어로 작성했어요. 선정되고 나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독일어예요. 다만 영어 번역 자료도 제공해 줍니다.”
그는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저는 먼저 개발 기술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독일어를 잘하면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개발 기술을 갖추면 독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경험처럼 영어로 신청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신청 단계에 따라 언어 요건이 다를 수 있으며, 선정 후 독일 정부에 제출하는 정식 지원 신청서 등 일부 행정 서류는 독일어 작성이 필요하다. 2026년 2차 지원 신청 안내 역시 독일어를 기본으로 하되, 비원어민의 영어 제출을 허용한다고 명시했다. 김 씨는 한국에서 지원을 준비하는 창업자라면 독일 거주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Q.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지원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독일에 와서 살면서 지원하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아요. 선정된 이후에도 여러 서류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실제로 정식 신청 과정에서는 신청자의 신분과 거주 상태, 프로젝트 수행 계획, 자기부담 능력 등을 확인한다. 체류자격에 따라 독일 내 자영업·프리랜서 활동 허용 여부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김 씨의 창업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정부 지원을 받기 전까지의 준비 과정이다. 그가 갑자기 전자송장 솔루션을 개발해 정부 지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2023년부터 42 Berlin의 창업자 모임과 사이드 프로젝트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코딩학교 학생들의 예약 과정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 숙박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하는 플랫폼, 스마트 도어록의 출입 PIN 번호를 자동 발급하는 시스템, 온라인 쇼핑몰의 고객 대기열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2025년에는 InvoicingU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 제약기업 바이엘(Bayer)에서 인턴십을 하며 AI와 업무 자동화 관련 프로토타입 15개를 개발하는 경험도 쌓았다.
그는 링크드인에서 자신이 Prototype Fund에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면서, 단 하나의 완벽한 프로젝트나 특별한 인맥으로 기회를 얻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작은 프로젝트를 반복해서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고, 완성되지 않은 아이디어도 실험하면서 쌓인 경험이 결국 정부 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참고할 만하다. 정부 지원사업에 지원하려고 처음부터 거창한 아이디어를 만들기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문제를 작게 해결해보고, 실제 사용자의 반응을 확인하고, 이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씨가 42 Berlin의 사이드 프로젝트 클럽(Side Project Club)에서 약 1년 반 동안 정기적으로 프로젝트를 공유했던 경험도 같은 맥락이다.
Q. 앞으로도 계속 독일에서 창업을 이어갈 생각인가요.
“네. 내가 만든 것으로 돈을 벌어보고 싶어요. 회사에 들어가면 더 편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내 것을 만들어 직접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InvoicingU는 소규모 서비스이고, OpenInvoiceXML 역시 개발과 사용자 검증을 진행하는 단계다. 향후 얼마나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미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기술을 배우고 제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독일 정부가 그가 개발하는 오픈소스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개발 시간을 지원하고 있다.
김 씨의 이야기는 창업의 출발점이 반드시 투자 유치나 법인 설립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매달 반복하는 불편한 업무를 해결하는 작은 프로그램이 창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용하다면, 이를 사회적 기술 자산으로 발전시키려는 개발자에게 공공자금이 지원될 수도 있다. 프로토타입 펀드가 개인 개발자에게 지원하는 이유기도 하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