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의 역할이 단순한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자본 배분과 포트폴리오 재편이라는 투자 실행 단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국내외 정책 당국과 민간 금융기관, 학계 전문가들이 ‘제1회 서울 기후금융 컨퍼런스 2026’에 모여 기후 데이터와 산업별 감축 경로를 실질적인 자본시장 투자 행동으로 연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해법을 모색했다. 특히 주식시장의 저탄소 전환을 이끌 핵심 인프라로서 ‘한국형 기후 벤치마크(K-PAB·K-CTB)’의 도입 타당성과 구조적 과제가 집중 조명됐다.

글로벌 기후 비영리단체 아크(Arc)와 사단법인 한국ESG커뮤니티(KEC)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서울 기후금융 컨퍼런스 2026’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정부와 국회, 한국은행, 국내외 자산운용사 및 학계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해 기후 금융 시스템의 실행 전략을 다각도로 점검했다.
고탄소주 빼도 투자 수익률 안 떨어져
개회 특별세션에서는 대출에 편중된 국내 기후금융 구조를 주식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한 인프라로 한국형 기후 벤치마크의 도입 방안이 심도 있게 다뤄졌다. 기후 벤치마크는 기후 관련 투자 성과를 비교, 평가하는 지수, 등급 등의 기준이다. 기존 국내외 시장에 출시된 다수의 친환경 펀드나 ESG 지수는 계량적 감축 기준과 경로 설정이 모호해 실제로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다수 포함되는 등 무늬만 친환경을 표방하는 ‘그린워싱’ 논란이 자주 불거졌다.
이에 유럽연합(EU)은 파리협약의 목표인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 제한 경로에 부합하는 지수에만 공인 명칭을 부여하는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 지수를 처음 짤 때 시장 평균보다 탄소 배출량을 50% 줄여 출발하고 매년 최소 7%씩 추가 감축하도록 규정한 파리협약 연계 벤치마크(PAB)와, 30% 감축으로 출발해 매년 7%씩 줄여나가는 기후전환 벤치마크(CTB)가 대표적이다.
발표자로 나선 민준기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팀장은 한국은행 연구진이 지난해 도출한 한국형 기후 벤치마크의 시장 도입 타당성 검토 결과를 설명했다. 연구진은 사업장 내 직접 배출(Scope 1)과 전력 사용 등에 따른 간접 배출(Scope 2) 자료를 공시한 코스피 상장사 807곳을 분석 대상으로 모았다. 이어 코스피 시장 전체의 주가 흐름은 따라가면서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조건을 부여했다. 그 결과 807개 기업 중 파리협약 기준을 충족한 450개 기업이 K-PAB 지수에, 점진적 전환 기준을 충족한 515개 기업이 K-CTB 지수에 편입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환경 개선 효과가 뚜렷하게 확인됐다. 기업의 매출액 대비 탄소 배출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인 ‘가중평균탄소집약도(WACI)’를 비교한 결과, 2024년 기준 K-PAB 지수는 92.4톤/십억 원으로 집계돼 일반 코스피 시장 평균(217.0톤/십억 원)보다 무려 57.4%나 낮아졌다. 점진적 감축을 목표로 한 K-CTB 지수 역시 129.4톤/십억 원으로 40.3%의 높은 감축률을 보였다.

연간 500톤 이상의 온실가스를 뿜어내던 다배출 기업의 비중도 기존 8.6%에서 K-PAB에서는 2.3%로 크게 줄었다. 오염 기업의 주식 비중은 덜어내고 탄소 감축 전환에 앞장선 기업의 비중을 늘려, 투자금이 저탄소 기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된 것이다.
수익률 측면에서도 시장의 오랜 편견을 깼다. 흔히 친환경 기준에 맞추느라 고탄소 대형주를 덜어내면 주식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10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지난 10년간의 실제 주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두 지수를 가상 운용한 결과, K-PAB의 누적 수익률은 코스피 시장 평균보다 오히려 5.6%포인트 높았으며 K-CTB 역시 4.6%포인트 웃돌았다. 코스피 지수와의 주간 수익률 편차를 나타내는 괴리도 표준편차도 K-PAB이 0.17, K-CTB가 0.14 수준에 머물렀다. 시장 전체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따라가면서도, 환경을 위해 탄소를 절반 이상 덜어내는 제약을 걸어도 투자 수익률을 희생할 필요가 없음을 숫자로 증명한 셈이다.
민준기 팀장은 “이러한 지수를 투자에 활용한다면 고탄소에서 저탄소로 자본이 재배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민 팀장은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크고, 산업 구조도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다”며 “지수를 구성할 때 고탄소 제조업을 일률적으로 시장에서 배제하기보다는, 기업의 기술 혁신과 전환 노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지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출 중심’ 녹색금융 넘어설 아시아 각국 사례 공유
지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 녹색금융의 구조적 한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좌장을 맡은 최용환 NH-아문디 자산운용 ESG 팀장은 현재 국내 녹색금융이 대출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녹색·기후금융 시장 규모는 약 1081조 원에 달하지만, 이 중 은행권 대출(여신) 비중이 약 61%에 달해 주식 등 민간 자본시장으로의 자금 공급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은 “기존 대출 중심의 구조를 넘어 주식시장에 기후 자본을 유입시키는 데 있어 K-PAB과 K-CTB 연구가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했다”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기후 리스크 관리,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주주로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책임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자율 지침)를 연계해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국내 기업들이 단순한 목표 선언을 넘어 실제 투자 가능한 사업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리스타 첸 L&G자산운용 글로벌 투자 스튜어드십 공동총괄은 싱가포르 통화청(MAS)의 지속가능금융협회(SSFA) 사례를 언급하며 당국과 금융사, 기업 간 공통 언어(택소노미) 구축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첸 총괄은 “아시아의 전환을 위해 수조 달러의 자본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투자자 관점에서 부족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실행에 대한 신뢰”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의 감축 선언과 위험 평가는 단지 시작일 뿐이며, 그 평가가 실제 사업 전략과 설비투자 계획으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가 핵심”이라며 “이행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때 글로벌 자본이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탄소 제조업 비중이 높은 아시아 주요국들의 기후금융 추진 사례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마준 중국 베이징 금융녹색발전연구원(IFS) 원장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31%를 차지하는 중국의 전환금융 체계를 소개했다. 마준 원장은 2016년 녹색금융 지침 발표 이후 10년간 약 7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녹색 대출·채권 시장을 조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11개 고탄소 배출 업종을 아우르는 중앙은행 차원의 ‘전환금융 택소노미’를 구축하고 20여 개 지방정부와 함께 상업적 전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야스 이와나가 아문디 자산운용 일본지사 최고기후리스크책임자(CRIO)는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민관 합동으로 150조 엔(약 1조 달러)을 투입하는 일본의 ‘GX(녹색전환) 전략’을 공유했다. 이와나가 CRIO는 경제산업성(METI)과 금융청(FSA)이 공동 개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본 정부가 2024년 초 세계 최초로 4조 2000억 엔(약 28조 원) 규모의 국채 형태 ‘기후전환채권(GX국채)’을 발행했으며, 조달 자금의 상당수를 민간 기업의 탈탄소 R&D와 혁신 기술 지원에 배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한국이 고민하는 고탄소 산업의 전환과 주식·채권 인프라 확장에 유용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시장의 신뢰를 쌓기 위해 정책 및 공시 인프라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현장 축사에 나선 곽병진 한국회계기준원 원장은 “올해 2월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KSSB) 공표와 7월 금융위의 공시 로드맵 발표로 우리나라는 지속가능성 공시의 원년을 맞았다”며 “국가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자본이 적시에 전환 투자로 흘러가기 위한 출발점은 신뢰할 수 있는 공시정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 도입 초기에는 모든 수치가 완벽하기 어려운 만큼, 지금은 숫자의 완성도 자체보다 기업이 가정과 데이터의 한계를 얼마나 투명하게 밝히고 품질을 개선해 나가는지를 주목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