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거대한 선체를 용접해 바다에 띄우는 건조 역량과, 그 배를 거친 바다 한가운데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붙잡아두는 제어 기술은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닻을 내릴 수 없는 심해나 해상 구조물 인근에서 바람·파도·조류에 맞서 선박의 위치와 선수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동적위치제어시스템(DP)’이 대표적인 제어 기술이다.
위치 참조 센서와 운동 측정 장치, 제어 알고리즘, 추진기가 실시간으로 맞물려 위치 오차를 1~2m 이내로 잡아내는 이 기술의 강자는 노르웨이 콩스버그 마리타임(Kongsberg Maritime)이다. 콩스버그는 현재 해상 크레인선·시추선·해상풍력 설치선(WTIV) 같은 고사양 특수선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인수로 완성한 ‘풀 패키지’
콩스버그의 지배력은 2019년 4월 1일 영국 롤스로이스의 상선 부문 ‘롤스로이스 커머셜 마린(RRCM)’을 인수함으로써 확고해졌다. 2018년 7월 5억 파운드(약 9500억 원) 규모로 성사된 거래는 유럽연합 경쟁당국 승인을 거쳐 이듬해 마무리됐고, 콩스버그는 인수와 동시에 전 세계 40개국에 직원 1만 1000명, 연매출 220억 노르웨이크로네(약 3조 28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몸집을 불렸다. 스러스터·추진기 같은 하드웨어를 만들던 롤스로이스와, DP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콩스버그가 한 지붕 아래 놓이면서 ‘설계-제어-추진’을 한 회사가 일괄 공급하는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
이 통합의 결과물이 현대 대형 상선과 특수선에 표준처럼 자리 잡은 항해·기관 통합 제어 시스템(IAS)이다. 최근 한국 LS마린솔루션이 튀르키예 테르산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는 초대형 해저케이블 포설선에도 콩스버그의 K-Pos 동적위치제어시스템과 배터리 하이브리드 전력 시스템, 주 추진 장치가 통합 패키지로 공급된다.
국내 조선업계와 콩스버그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은 콩스버그와 공동기술개발협약을 맺고 옥포조선소에서 건조하는 LNG 부유식 저장·재기화설비(FSRU)용 제어시스템을 함께 개발한 바 있다.
선체는 한국 회사가 만들어도 제어 기술 사와야
국내 대형 조선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선체를 완공해도, 선박을 실제로 움직이는 통합 제어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려면 콩스버그의 라이선스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GTT의 LNG 화물창처럼 선가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떼어가는 구조는 아니지만, 장비 구매비에 더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유지보수 계약이 뒤따르는 방식으로 매출이 이어진다. 콩스버그의 디지털 플랫폼 ‘코그니파이(Kognifai)’가 구독형 서비스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콩스버그의 반경은 이제 ‘움직이는 배’를 넘어선다. 올해 3월 콩스버그는 미국 해양시추업체 씨드릴, 한화드릴링과 손잡고 육상 관제센터에서 심해 시추선의 DP를 원격으로 제어하는 ‘리모트 DP’ 기술 개발에 나섰다. 사람이 배 위에서 직접 조작하던 위치제어를 육상에서 표준화된 절차로 통제하겠다는 구상으로, 자율운항 시대의 운영 표준을 콩스버그가 먼저 그리는 셈이다.
경쟁 구도도 만만치 않다. 바르질라(핀란드)와 ABB(스위스)가 각각 자체 DP·자동화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브랜드 인지도와 서비스 네트워크에서 콩스버그를 뒤쫓는 처지다. 시장조사기관 집계로는 전체 DP 시장에서 콩스버그의 점유율이 20%대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범용 소형 선박까지 아우른 수치여서 그렇다. 시추선·크레인선 등 최고 등급(DP3) 특수선 시장에서는 콩스버그의 지배력이 압도적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자율운항 표준 기술도 선점
규제 영역에서도 콩스버그의 입지는 단단하다. 선박 디지털화가 빨라지면서 국제선급연합회(IACS)는 지난해 7월부터 통합요건(UR E27)을 통해 선박 제어시스템의 사이버보안 인증을 의무화했다. 콩스버그는 노르웨이 선급 DNV와 손잡고 K-Pos DP시스템·K-체프·K-IMS 등 자사 자동화·항법·DP 제품군 전반에 대해 국제전기기술위원회 표준에 기반한 사이버보안 인증을 가장 먼저 완료했다.
이미 2017년에도 K-IMS로 DNV GL의 첫 사이버보안 형식승인을 받은 바 있다. 새로운 규제가 생길 때마다 선제적으로 인증을 확보하며 ‘표준을 정의하는 기업’의 지위를 굳히는 셈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내 조선업계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선체 건조 경쟁에서는 한국이 세계를 이끌지만, 그 선체를 제어하는 영역은 여전히 노르웨이산에 의존하는 구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