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향후 10년간 재정 200조 원과 정책 기후금융 790조 원 등 총 1000조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대한민국 산업 구조의 녹색 전환을 지원하는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10월 7일 발표했다.
녹색전환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산업·사회·생활 구조를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기술 기반으로 바꾸는 정책이다. 이와 연계해 기업 주도로 약 220조 원 규모의 ‘K-GX 시그니처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주력 제조업을 저탄소 구조로 개편해 ‘녹색제조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책의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에 상응하는 온실가스 감축 실적 집계 체계와 지원 자금에 대한 사후관리 규정을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안게됐다.

저탄소 전환, 녹색산업 육성, 제도 기반 마련이 핵심
정부가 K-GX 전략을 마련한 배경에는 심화되는 기후리스크와 더불어 한국 경제가 직면한 대외 무역 환경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2100년까지 우리나라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지정학적 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0%를 넘는 국내 산업의 전방위적 전기화와 탈탄소 전환이 요구된다.
주요국의 무역 규제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올해 1월부터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됐고,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제조업에 탄소 감축은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을 위한 기본 요건이 됐다. 철강 산업의 경우 CBAM 도입에 따른 탄소인증 비용만 2026년 851억 원에서 2034년에는 5589억 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신성장동력 K-GX’, ‘모두의 K-GX’, ‘지속가능한 K-GX’ 등 3대 정책 방향을 축으로 종합 계획을 수립한 배경이다.
이번 대책의 첫 번째 축인 ‘신성장동력 K-GX’는 철강, 석유화학, 정유,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5대 탄소 다배출 업종의 공정을 저탄소로 개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풍력, 소형모듈원자로(SMR), 전력기기 등 10대 녹색산업을 육성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00GW까지 조기 확충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모두의 K-GX’는 지역 발전과 국민 체감도를 높이는 과제로 채워졌다.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체계와 연계해 나주 에너지특화도시 조성, 제주 2035 탄소중립 실증 등을 추진하며, 석탄발전소 폐지 지역을 ‘정의로운 전환 특구’로 지정해 근로자 고용안정을 지원하고 햇빛·바람소득마을을 통해 주민 이익공유 모델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지속가능한 K-GX’는 10년간 재정 200조 원과 기후금융 790조 원을 투입하고, 핵심 품목에 대한 국내생산세액공제 도입과 순환경제 규제특례구역 신설 등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러한 정책의 선도 모델로 제시된 것이 약 220조 원 규모의 ‘K-GX 시그니처 프로젝트’다. 여러 대기업이 이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다. 포스코홀딩스는 동남권에 수소환원제철 설비와 100만 톤급 수소 생산 인프라를 마련해 2030년 실증과 2037년 상용화를 추진한다. 한화큐셀은 충북 진천·음성에 페로브스카이트-실리콘 탠덤 태양전지 생산설비를 구축해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에 협력사의 공정 탄소 감축을 돕는 ‘탈탄소전환센터’를 2026년 말 설립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 소듐전지 ESS 파일럿 라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창원 SMR 전용 파운드리 공장, HD한국조선해양의 울산 친환경 선박 기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모듈러 주택 대상 히트펌프 보급 등도 주요 사업으로 들어간다.
탄소 감축목표와 어떻게 연계하고 관리할 것인가
정부 발표 후 이어진 설명 자리에서는 이번 전략이 실제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도록 정교화해야 할 현실적 과제를 함께 짚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하반기 마련하는 업종별 감축 로드맵과 관련해, 기업들이 이미 자체적으로 수립한 설비투자 계획에 머물지 않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부합하도록 추가 감축을 어떻게 견인할 것인지가 주된 쟁점으로 거론됐다. 지원 정책이 자칫 단순한 설비 보조에 그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강은구 산업통상부 산업환경과장은 “업종별 감축 로드맵은 민간의 투자 계획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민간의 투자 의향은 현장에 기반을 두기 위한 필수 요소일 뿐”이라며 “2035년 NDC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술 개발 단계와 정부의 설비 지원, 청정수소 및 무탄소 전력 인프라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 감축 수단 위주로 로드맵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10년간 790조 원 이상 공급 예정인 정책 기후금융의 성과 관리 체계 역시 구체화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대규모로 공급되는 금융 지원의 경우 실제 온실가스 감축량을 개별적으로 집계해 NDC와 직접 연결하는 체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원을 받은 기업이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적용할 자금 관리 및 사후 대책 마련도 향후 과제로 꼽혔다.
오일영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에너지실장은 “기후금융은 용도가 다양해 단일 금융 수단으로 국가 NDC 달성 기여도를 곧바로 확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 실장은 “다만 기후금융 지원 대상을 설계할 때 해당 사업을 통해 온실가스가 어느 정도 감축되는지를 사전에 평가하는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후관리 장치와 관련해서는 “연초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업계 및 금융권과 실질적인 운영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운영 기준을 담은 ‘전환금융 운영규정’을 올해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정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이어졌다. 거시적인 산업 전환 방향성에는 공감대를 나타내면서도, 구체적인 정책 수단과 정합성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인공지능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정부 정책 속에서 녹색산업 정책을 새롭게 꺼내 놓은 것은 산업 균형의 측면에서나 기후대응의 측면에서나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압도적으로 치우친 정부 정책의 균형추 역할을 하기에는 K-GX 3대 메가프로젝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의 저탄소화 목표도 과감하지 못하고, 중국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녹색산업의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기에도 ‘녹색산업 정책’ 수단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짚었다.
특히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의 녹색전환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김 소장은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가 전력 대부분을 화석연료로 공급받을 예정인 상황에서, 이들 프로젝트의 녹색화, ‘그린 AI’ 정책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한 점은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녹색산업이라 할 수 없는 SMR은 빼고, 그린 AI 정책을 비중 있게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산업의 녹색 전환에서 탄소집약적 산업은 지원과 함께 규제가 적극적으로 결합돼야 성과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