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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방산 블록’ 본격화, K-방산 새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

가성비·빠른 납기론 5년 내 한계 직면…‘구성품 단위’ 수출 및 현지 생산 등 대안 마련해야

[비즈한국] 최근 캐나다 해군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CPSP)에서 우리나라가 독일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번 수주전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이나 무기체계의 성능 차이보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캐나다 수주전은 K-방산이 마주한 시장 환경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이 재무장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무기 수요 확대가 반드시 역외 기업의 수출 기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은 막대한 국방비를 자국과 역내 방산업체의 생산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며 사실상의 방산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K-방산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가격 대비 성능’과 ‘신속한 납기’가 당분간은 유효하겠지만, 유럽의 생산 역량이 회복되면 점차 희석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완성품을 저렴하고 빠르게 공급하는 기존의 수출 공식을 넘어 현지 생산과 유지·보수, 안보 협력, 구성품 수출을 포괄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2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에서 참관인들이 장보고 잠수함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성능 차가 아닌 전략적 선택…다시 높아진 ‘동맹의 장벽’

K-방산이 유럽 시장에서 거둔 급격한 성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특수한 안보 위기가 만들어낸 초과 수요에 힘입은 결과였다.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은 극심한 안보 불안 속에서 당장 현장에 배치할 수 있는 대규모 무기체계를 필요로 했다.

당시 유럽 방산업체들은 오랜 군비 축소로 생산 라인이 줄어든 탓에 갑작스럽게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응해 대규모 생산 기반을 유지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신속한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의 공급 공백을 빠르게 메웠다.

그러나 한국산 무기의 유럽 진출 확대는 역설적으로 유럽의 방산 블록화를 재촉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전통적인 방산 강국에서는 유럽의 안보를 유럽의 무기와 기술로 지켜야 한다는 ‘유럽 자강론’이 힘을 얻었다. 외부 공급에 의존해 당장의 무기 부족을 해결하는 데서 벗어나, 역내 생산 기반을 재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AI방위산업융합학과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의 긴급 수요와 특정 무기체계에 대한 신속한 보충 수요는 비정상적이고 특수한 상황이었다”며 “전쟁 발발 후 수년이 지난 지금은 원래의 동맹 중심 거래로 회귀하는 이른바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해석할 수 있다. 나토 회원국들은 유사시 공동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단순한 무기 성능뿐 아니라 기존 동맹 체계와의 호환성, 군수지원 체계, 장기간의 안보 협력 관계를 중시한다. 성능과 가격이 우수하더라도 역외 국가라는 한계를 뛰어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다.

전략에서 금융까지…유럽의 방산 빗장 걸어 잠그기

유럽의 방산 국산화와 블록화는 선언적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정책과 금융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방위산업전략(EDIS)’,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 ‘유럽안보활동(SAFE)’을 잇달아 추진하며 역내 조달과 공동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EDIS는 2030년까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과 국방 대비태세를 재건하기 위한 최상위 전략이다. 무기 조달에서 제3국 의존도를 낮추고 회원국 간 공동 구매를 확대해 유럽 방위기술·산업 기반을 하나로 묶는 것이 핵심이다. EU는 2030년까지 회원국 국방 획득 예산의 최소 50%를 역내에서 조달하고, 2035년에는 이 비율을 6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EDIP는 이러한 전략에 예산과 실행력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다.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우선 15억 유로, 약 2조 2000억 원을 투입해 역내 방산기업의 기술 개발과 공동 연구, 생산 확대, 공동 조달을 지원한다. EDIP의 재정 지원을 받는 공동 조달 사업은 무기체계와 구성품에 포함된 비EU·비유럽경제지역(EEA) 부품 비중이 35%를 넘을 수 없다.

SAFE는 유럽 국가들의 공동 조달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1500억 유로, 약 220조 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이다. 회원국이 탄약과 드론, 미사일 방공망, 포병체계 등을 공동 구매할 때 장기 저금리 대출을 지원한다. 다만 지원을 받으려면 최소 2개국 이상이 조달에 참여해야 하고, 이 가운데 한 곳 이상은 EU 회원국이어야 한다. 생산과 조달 비용의 최소 65%를 유럽 역내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는다.

세 제도는 각각 전략과 보조금, 금융지원을 담당하며 유럽산 무기의 구매와 생산을 촉진한다. 외형상 특정 국가의 진입을 직접 금지하지는 않지만, 역내 생산 비율과 부품 원산지 조건을 통해 비유럽 기업의 단독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사실상의 무역 장벽으로 작동한다.

가성비와 신속 납기의 유효기간…앞으로 5년이 갈림길

2024년 12월 3일 경기도 파주시 1포병여단 장타대대에서 열린 후반기 육군 국제과정(K-AIC)에서 외국인 교육생들이 K9자주포 기동 및 운용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유럽이 무역 장벽을 세우는 목적은 단순히 외국산 무기를 배제하는 데 있지 않다. 역내 방산기업이 생산 라인을 확충하고 숙련 인력을 확보할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크다. 이 기간 유럽의 방산 생산력이 회복되면 K-방산의 최대 강점인 가격 경쟁력과 신속한 납기는 이전만큼 강력한 차별점이 되기 어렵다.

한국국방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유럽연합 대비태세 2030의 주요 내용과 한국 방산수출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서 유럽이 2030년까지 최대 8000억 유로를 방위산업에 투자해 생산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생산 기반이 향후 3~5년에 걸쳐 복원되면 우리나라의 강점인 빠른 납품이 이전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물론 유럽이 우리나라의 생산 능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 속에서 생산 라인을 상시 가동하며 대량생산과 규모의 경제를 이미 구축했다. 반면 유럽은 생산시설을 증설하는 것뿐 아니라 숙련공과 공급망을 확보하고 생산단가를 낮추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김경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유럽이 독자 방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생산 라인을 확대하더라도 실제 산업 인프라가 완전히 가동돼 한국을 대체하기까지는 수년의 유예기간이 존재할 것”이라며 “당장 충격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유럽이 무역 장벽을 통해 체질을 개선할 시간을 벌고 있는 만큼 우리 역시 5년 뒤를 내다본 장기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유럽의 생산력이 회복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현재의 수출 실적에 안주해 기존 생산품의 판매에만 집중한다면 유럽 방산업체가 경쟁력을 되찾는 순간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 반대로 지금 확보한 고객 국가와 수출 거점을 현지 생산과 공동 개발의 기반으로 전환한다면 유럽의 역내 조달 원칙을 새로운 진입 경로로 활용할 수 있다.

무기 판매에서 산업·안보 결합으로…새 수출 공식 필요

전문가들이 우선적으로 제안하는 전략은 현지화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처럼 이미 한국산 무기를 대규모로 도입한 국가에 현지 조립·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부품 제조와 인력 양성, 유지·보수·정비(MRO)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한국 기업이 유럽 밖에서 완성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대신 유럽 방산 생태계의 일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김경숙 책임연구위원은 “유럽이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로 가는 것은 분명한 만큼 앞으로는 단순히 무기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무기를 구매하는 국가에 현지 생산 라인과 인력 양성, MRO 등을 함께 제공하고 무기체계의 전 주기를 책임지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준동맹 수준의 안보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나토의 글로벌 파트너인 I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지위와 ‘한-EU 안보방위파트너십’ 등 기존 협력 체계를 활용해 우리나라를 단순한 무기 판매국이 아닌 공동 안보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원준 교수는 “나토 회원국들은 유사시 공동으로 위협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무기의 호환성과 상호운용성, 표준화를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 역시 동맹 또는 준동맹으로서 상호운용성을 증명하고, 유사시 연합 훈련과 공동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품 중심의 수출 구조를 구성품 중심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현재 K-방산 수출은 전차와 자주포, 전투기, 잠수함 등 완성된 무기체계 단위에 편중돼 있다. 그러나 유럽의 역내 완성품 조달 원칙이 강화되더라도 핵심 부품과 소재, 전자장비, 센서 등 구성품 시장에서는 외부 조달 수요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 방산 전문가는 “완성된 무기체계 시장에서는 유럽의 블록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세부 구성품은 오히려 외부 조달 비율이 늘어나는 영역도 있다”며 “구성품 수출은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특성이 있는 만큼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고 대기업과 연계하는 상생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중화학공업·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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