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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오션 옆 ‘틈새’ 공략…
한국이 차세대 항암제 RPT 노리는 이유

ADC 경쟁서 중국 앞서나가자 RPT로 시선 전환…신약부터 CDMO까지 K-RPT 생태계 확장

[비즈한국] ADC(항체-약물접합체)가 차세대 항암 모달리티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 바이오기업들이 다양한 ADC 후보물질을 앞세워 글로벌 빅파마와 잇따라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ADC 경쟁이 과열되는 가운데 업계의 시선은 ‘넥스트 ADC’로도 쏠리고 있다. ADC 자체의 기술적 한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한편, 기존 치료 방식의 미충족 수요를 겨냥한 새로운 모달리티를 선점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RPT(방사성의약품 치료제)다.

RPT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표적 물질에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해 종양에 방사선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특히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 때문에 생산부터 운송, 환자 투여까지 촘촘하게 연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항암제와 산업 구조부터 다르다. 높은 병원 밀도와 방사성의약품 제조·공급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 RPT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뇌 속의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침착을 영상화해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는 PET 및 CT 촬영용 방사성 진단 신약 ‘뉴라체크’ 사용 이미지. 사진=듀켐바이오 홈페이지

ADC 존재감 키우는 중국…‘다음 모달리티’ RPT 주목

최근 글로벌 ADC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중국 기업이다. 켈룬바이오텍, 메디링크테라퓨틱스, 듀얼리티바이오 등 중국 바이오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와 잇따라 대형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체결된 글로벌 ADC 기술수출 계약의 약 70~80% 이상을 중국 기업이 휩쓴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기업들은 자체 ADC 플랫폼을 구축하고 새로운 표적과 페이로드·링커 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개발 및 기술수출을 확대하면서 ADC 생태계 전반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엔허투’ 등장 이후 ADC가 주목받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항체라는 큰 분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고형암 조직 내부까지 충분한 양의 약물을 전달하기 어렵고, 정상 조직에 미치는 독성과 반복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성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때문에 ADC 개발사들은 이중항체 ADC나 새로운 페이로드·링커를 적용하거나 마스킹플랫폼 등을 활용하며 기존 ADC 자체를 고도화하는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ADC와 다른 방식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RPT도 차세대 모달리티로 주목받고 있다

ADC가 항체에 세포독성 페이로드를 연결해 암세포로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RPT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리간드나 항체 등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하는 형태다. 두 기술 모두 암세포를 정밀 타격한다는 기본 구조는 유사하지만, RPT는 화학 약물 대신 물리적 방사선을 내뿜어 암세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박소영 1004벤처파트너스 대표(왼쪽 두 번째)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제약·바이오·건강기능 산업 전시회 ‘CPHI/HI Korea 2026’ 부대행사 ‘K-바이오 신약 모달리티와 기술 사업화 컨퍼런스’에서 방사성의약품이 한국의 틈새시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최영찬 기자

미국 VC도 한국 RPT 주목 “중국과 전면전 피할 틈새시장”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도 RPT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헬스케어 전문 벤처캐피털(VC)을 운영하는 박소영 1004벤처파트너스 대표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제약·바이오·건강기능 산업 전시회 ‘CPHI/HI Korea 2026’ 부대행사 ‘K-바이오 신약 모달리티와 기술 사업화 컨퍼런스’에서 “미국 시장에서 ADC, TPD(표적단백질 분해)와 함께 RPT는 현재 가장 뜨겁게 떠오르는 기술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RPT 분야는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뚜렷한 선두주자가 아직 보이지 않는 상태”라며 “ADC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과 직접적인 전면전을 피해 한국이 글로벌 헤게모니를 선점할 수 있는 최고의 틈새시장”이라고 강조했다.

RPT에서는 신약 후보물질 자체만큼이나 이를 실제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제조·공급 능력이 중요하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능이 감소하는 반감기가 있어 생산과 품질관리, 운송, 병원 투여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런 진입장벽이 한국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주요 대형병원과 연구기관이 밀집하고 방사성의약품 제조시설을 비롯한 관련 인프라도 이미 갖춘 터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축적한 임상시험 수행 역량까지 결합하면 신약 개발뿐 아니라 생산과 공급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이미 RPT로 시선을 확장하고 있다. 2013년 미국에서 허가된 바이엘의 전립선암 치료제 ‘조피고’를 비롯해 노바티스의 ‘루타테라’가 2018년, ‘플루빅토’가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연 매출 19억 9400만 달러(2조 7000억 원)를 기록한 플루빅토의 성공 이후 글로벌 제약사들은 RPT 투자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는 2024년 악티늄-225(Ac-225) 기반 RPT를 개발하는 레이즈바이오를 약 41억 달러(5조 5128억 원)에 인수해 RPT 파이프라인과 자체 생산시설을 한꺼번에 확보했다.

방사성의약품 전체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를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트레이츠리서치에 따르면 진단용과 치료용을 합친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2025년 74억 7000만 달러(10조 419억 원)에서 2034년 174억 8000만 달러(23조 4984억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방사성의약품 전문기업 듀켐바이오는 전북자치도와 투자협약을 맺고 정읍첨단과학산업단지에 RPT 특화 CDMO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 등을 구축한다. 사진=듀켐바이오 제공

듀켐바이오, 전국 12개 제조소 기반 RPT CDMO 허브 노린다

국내에서는 방사성의약품 전문기업 듀켐바이오가 RPT 시장 확대에 맞춰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듀켐바이오는 지난 4일 RPT 특화 CDMO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 등을 구축하기 위해 336억 원 규모의 신규 시설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북 정읍첨단과학산업단지에 들어설 시설은 2032년까지 단계적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듀켐바이오가 RPT CDMO 사업에 주목하는 것은 방사성의약품 특유의 공급망 때문이다. 방사성의약품은 동위원소의 반감기 때문에 일반 의약품처럼 한 곳에서 대량 생산해 장기간 보관한 뒤 세계 각지로 배송하기 어렵다. 결국 국가 단위 거점 마련이 중요하다.

듀켐바이오는 이미 이 같은 생산·배송 시스템의 중요성을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에서 경험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사용되는 아밀로이드 PET용 방사성의약품에는 반감기가 약 110분인 불소-18(F-18)이 사용되는데, 듀켐바이오는 전국에 방사성의약품 제조소 12곳을 확보해 주요 권역별로 제품을 생산해 병원에 공급하고 있다.

듀켐바이오 관계자는 “환자가 예약하면 그날 새벽 거점 제조소에서 약을 생산해 불과 몇 시간 안에 병원으로 배송해야 하는 물류·운영 역량이 필요하다”며 “전국 12개 제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방사성의약품 공급 경험을 축적해왔다”고 말했다.

듀켐바이오는 이러한 경험을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CDMO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플루빅토 등에 사용되는 루테튬-177(Lu-177)의 물리적 반감기는 약 6.6일 수준이다. 해외 생산시설에서 장거리 운송할수록 실제 환자 투여까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시장과 가까운 곳에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공급 안정성과 효율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

노바티스가 글로벌 생산거점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 RPT 생산시설을 확충한 데 이어 6억 위안(1199억 원) 이상을 투입한 중국 하이옌 공장과 1억 달러(1340억 원) 이상을 들인 일본 사사야마 공장이 연내 가동이 예상된다.

하지만 모든 후발 제약·바이오기업이 노바티스처럼 지역별 생산시설을 직접 지을 수는 없다. 자체 생산망을 구축하려면 상당한 초기 자본과 방사성의약품 제조 경험이 필요한 만큼 현지 제조와 품질관리, 배송을 대신할 수 있는 전문 CDMO의 역할도 커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듀켐바이오가 CDMO 사업을 겨냥한 것이다.

방사성 동위원소 확보도 또 다른 숙제다. 특히 차세대 RPT의 핵심 원료로 주목받는 Ac-225는 현재 생산량이 제한돼 글로벌 제약사들이 장기 공급계약을 맺으며 물량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듀켐바이오 역시 향후 고객사의 개발 단계와 수요에 맞춰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한국수력원자력 등을 중심으로 원자력 인프라를 활용한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확대가 추진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조달 기반도 넓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듀켐바이오 관계자는 “CDMO는 특정 치료제에 들어가는 방사성 동위원소 물질에 맞춰 생산하기 때문에 수주 물량이 정해지면 필요한 물질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면서 “국내에도 원자력 인프라와 방사성 동위원소를 추출하는 기술이 갖춰져 수급 자체가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용제 SK바이오팜 센터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개최된 ‘삼성서울병원 X 에임드바이오 ADC 콘퍼런스에서’ 방사성의약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SK바이오팜·퓨쳐켐·셀비온…국산 RPT 개발 경쟁도 본격화

제조 인프라뿐 아니라 국산 RPT 신약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SK바이오팜은 RPT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파이프라인과 원료 공급망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미국 테라파워와 벨기에 판테라, 독일 에커트앤지글러 등 해외 동위원소 기업들과 Ac-225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후보물질 개발부터 원료 확보까지 RPT 밸류체인을 넓히는 중이다.

첫 RPT 후보물질인 ‘SKL35501’은 2024년 7월 풀라이프 테크놀로지스로부터 총 5억 7150만 달러(7921억 원) 규모로 도입했다. 영상진단제 ‘SKL35502’를 이용해 환자를 선별한 뒤 SKL35501을 투여한다는 전략인데 SK바이오팜은 지난 1월 SKL35501과 SKL35502의 FDA로부터 임상 1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파이프라인도 추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위스콘신대학 기술이전기관(WARF)으로부터 RPT 후보물질 ‘WT-7695’을 최대 5억 7600만 달러(8425억 원)에 도입했고, 현재 전임상 개발이 진행 중이다.

전립선암 RPT에서는 퓨쳐켐과 셀비온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퓨쳐켐은 Lu-177 기반 전립선암 RPT 후보물질 ‘FC705’를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지난 5월 임상 2a상 환자 투여를 완료했다. 치료제에 앞서 지난 4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전립선암 진단의약품 ‘프로스타뷰’ 허가를 받아 출시 중이다. 진단제로 전립선암 발현 여부를 확인하고 치료제로 연결하는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셀비온도 Lu-177 기반 RPT ‘Lu-177-DGUL’의 임상 2상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30일 식약처에 조건부 품목허가를 신청해 현재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Lu-177-DGUL은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이자 식약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지원체계(GIFT) 대상으로 지정받았다.

RPT 시장은 노바티스 등 글로벌 빅파마가 상용화 측면에서 앞서 있지만 차세대 파이프라인과 생산 인프라를 둘러싼 경쟁은 이제 본격화하는 단계다. 국내에서도 SK바이오팜이 글로벌 신약 개발에 나서고 퓨쳐켐·셀비온이 국산 RPT 상용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듀켐바이오가 생산·공급망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ADC에서는 중국 바이오기업이 글로벌 기술수출 시장에서 빠르게 주도권을 확보했지만 RPT는 아직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후보물질 개발뿐 아니라 방사성 동위원소 확보와 제조, 물류, 병원 투여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가를 전망이다.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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