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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지으면 AI·반도체 전력난 해결? 평균 공사기간 10.9년 걸린다

신규 원전 기다리는 사이 태양광이 발전량 추월…한국도 ‘제때 공급할 전기’ 확보가 과제

[비즈한국]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전기를 원전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관건은 시간이다.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새 원전이 전기를 생산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지난달 30일 공개된 ‘세계 원자력 산업 현황 보고서 2026(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WNISR 2026)’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가동을 시작한 원전 16기는 모두 당초 건설 일정을 넘겼고, 평균 10.9년이 걸렸다. 그사이 태양광은 지난해 처음으로 원전 발전량을 추월했다. 원전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와 함께, 필요한 시점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독립 에너지·원자력 정책 분석기관인 ‘마이클 슈나이더 컨설팅’이 주관하는 이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원전 가동 현황과 건설 실적, 정책 동향을 분석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전력 수요 증가로 원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산업의 성장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중국을 제외하면 발전량은 정체돼 있고, 새 원전을 짓는 동안 기존 원전은 노후화하고 있다.

세계 원자력 산업이 정체기를 걷고 있다. 사진은 울산광역시 새울원자력발전소.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중국 빼면 발전량 감소, 1990년대 중반 수준

2025년 전 세계 원전 발전량은 2703TWh(테라와트시)로 전년보다 1.1% 늘었다. 그러나 증가세를 이끈 곳은 중국이었다. 중국의 원전 발전량은 7.6% 증가했지만, 나머지 국가를 합친 발전량은 오히려 0.2% 줄었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원전 발전량은 1990년대 중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점을 찍었던 2006년과 비교하면 14%, 발전량으로는 369TWh 적다. 중국의 빠른 원전 확대가 다른 지역의 정체를 가리고 있는 셈이다.

세계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다. 2025년 원전 비중은 8.8%로, 역대 최고였던 1996년의 17.5%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최근 45년 사이 가장 낮다.

지난해에는 새로 가동한 원전보다 문을 닫은 원전이 많았다. 중국 2기, 인도와 러시아 각 1기 등 총 4기가 전력 공급을 시작했다. 반면 벨기에와 러시아에서 각각 3기, 대만에서 1기 등 총 7기가 영구 폐쇄됐다. 신규 가동보다 폐쇄가 많았던 것은 2021년 이후 처음이다.

기간을 지난 20년으로 넓혀도 상황은 비슷하다. 2006~2025년 세계에서 원전 104기가 새로 가동했고 106기가 문을 닫았다. 신규 가동의 절반 이상인 53기는 중국에 들어섰다. 이 기간 중국에서는 폐쇄된 원전이 없었고, 중국 밖에서는 55기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2026년 7월 1일 기준 세계 31개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411기다. 가장 많았던 2002년의 438기보다 27기 적다.

전세계 전력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표=생성형AI

반면 태양광과 풍력은 빠르게 성장했다. 2025년 세계 태양광 발전량은 전년보다 약 30% 늘어난 2783TWh를 기록했다. 태양광만으로 원전 전체 발전량인 2703TWh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풍력까지 합치면 발전량은 원전의 약 2배에 이른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태양광·풍력의 합산 발전량이 원전의 5배를 웃돈다. 특히 중국에서 지난해 늘어난 태양광 발전량만 약 330TWh로, 같은 기간 원전 발전량 증가분의 약 10배에 달한다.

설비가 늘어나는 속도도 차이가 났다. 지난해 세계 태양광 설비 용량은 510GW(기가와트), 풍력은 159GW 늘었다. 각각 전년 대비 27%, 14%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원전은 신규 가동과 폐쇄를 반영한 전체 가동 용량이 0.5GW 줄었다.

낮에 만든 전기를 저녁에…배터리가 바꾸는 전력 공급

태양광과 풍력의 약점은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 대규모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BESS)다. 전기가 많이 생산될 때 충전해뒀다가 필요한 시간에 꺼내 쓰는 방식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전세계 태양광 발전량이 원전 발전량을 넘어섰다. 사진은 새만금 육상 태양광 1구역 전경. 사진=현대엔지니어링 제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전력망에 설치된 대규모 배터리 설비의 약 78%는 최근 3년 사이 들어섰다. 2025년에 새로 연결된 배터리만 총 104GW의 출력과 257GWh(기가와트시)의 저장 용량을 갖췄다. GW는 한 번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의 크기, GWh는 저장할 수 있는 전기의 양을 뜻한다.

배터리 가격이 떨어지고 설치가 늘면서 태양광으로 낮에 만든 전기를 해가 진 뒤에도 활용하는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낮 시간대 태양광이 전력 수요의 60~70% 이상을 담당하고, 저녁에는 배터리가 수요의 최대 44%를 공급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텍사스도 전력망에 연결된 배터리 용량을 2023년 5GW에서 2025년 말 17GW로 늘렸다.

이 같은 수치만으로 재생에너지와 배터리가 모든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기를 생산하는 시간과 사용하는 시간의 차이를 배터리가 메우면서, 재생에너지 활용폭이 넓어지고 있다.

최근 가동 원전 16기 모두 건설 일정 지연…SMR도 시간 필요

원전 확대의 걸림돌 중 하나는 긴 건설 기간이다. 2026년 7월 1일 기준 세계 14개국에서 원자로 73기를 건설하고 있지만, 절반 이상인 37기가 중국에 몰려 있다. 해외 건설 시장에서는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의 비중이 크다. 로사톰은 러시아 내 7기 외에 해외 9개국에서 22기의 건설을 맡고 있다.

공사가 예정대로 끝나는지도 문제다. 2023~2025년 세계 9개국에서 처음 전력망에 연결된 원전 16기는 모두 당초 일정보다 늦어졌다. 기초 콘크리트를 붓기 시작한 시점부터 전력망에 연결되기까지 평균 10.9년이 걸렸다. 기간을 2016~2025년으로 넓히면 원전 63기의 평균 건설 기간은 9.5년이었다.

SMR의 상용화 사례는 아직까지 한 곳뿐이다. 업계에서는 2030년대 중반에 본격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역시 실제 전력 공급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평가다. 보고서는 서방권에서 상업용 원자로 건설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사례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달링턴의 BWRX-300 1기를 꼽았다.

미국과 영국 등이 추진하는 다수 모델은 아직 설계 인허가 심사나 사업 타당성 검토 단계에 있다. 보고서는 상업적 대량 생산과 본격적인 전력 공급이 빨라야 2030년대 중반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지원과 기업의 개발 계획이 곧바로 가동 가능한 발전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새 원전 건설이 더딘 사이 기존 원전은 나이 들고 있다. 2026년 중반 기준 세계 원자로의 평균 가동 연수는 32.9년이다. 가동 중인 411기 가운데 269기가 31년 이상, 169기가 41년 이상 운전됐다. 원전 보유국 31개국 중 20개국은 원전 평균 가동 연수가 30년을 넘었다.

오래된 원전을 계속 쓰려면 주요 배관과 설비를 점검하고, 강화된 안전 기준에 맞춰 보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전을 멈추는 기간도 발생한다. 프랑스 원전 56기의 2021~2025년 가동 실적을 분석한 결과, 원자로 1기당 평균 정지 기간은 18.5개월이었다. 5년 중 약 31%에 해당한다.

폭염과 가뭄도 원전 운영에 부담을 준다. 냉각수로 쓰는 강물이 줄거나 수온이 높아지면 출력을 낮추거나 가동을 멈춰야 한다. 프랑스 국영전력회사 EDF에 따르면 2026년 8월 기준 냉각수 배출 수온 제한과 하천 유량 감소에 따른 연간 발전 손실은 9TWh를 넘어섰다. 프랑스 전력 당국이 당초 2050년으로 예상한 연간 기후 관련 손실 5.6TWh를 이미 훌쩍 넘겼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량이 늘어나는 시간에 맞춰 원전 출력을 낮추는 일도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처럼 출력을 조절하는 운전이 설비에 부담을 주고 정비 비용을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얼마나 지을까’와 ‘언제 쓸 수 있나’ 함께 따져야

이번 보고서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도 결국 전력 공급의 시점이다. 한국은 AI 데이터센터와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등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 원전 신설과 SMR 도입을 주요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원전 건설 실적을 보면 새 원전이 필요한 시기에 맞춰 가동할 수 있을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최근 3년간 가동을 시작한 원전은 건설에 평균 10년 이상 소요됐고, SMR도 본격적으로 상용화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2030년대 전후로 집중될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공사나 상용화 일정이 늦어질 경우의 대책이 필요하다.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 역시 비용과 안전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2030년 이전 설계수명이 끝나는 국내 원전의 계속운전 비용을 검증하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를 마련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전기가 필요한 때 실제로 공급되도록 발전소 건설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원전의 역할을 정하는 일과 함께 재생에너지, 저장장치, 전력망 확충을 어떤 일정으로 조합할지 구체화해야 하는 이유다.

김민호 기자

중화학공업·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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