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GC녹십자가 국가예방접종사업(NIP)용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고 있다. 같은 입찰행위에 대해 형사재판에서는 경쟁제한성을 부정해 무죄가 확정됐지만 행정재판에서는 이를 인정해 20억 원대 과징금 처분이 유지됐다. GC녹십자는 대법원이 이러한 판단 차이를 설명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해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헌재)는 23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GC녹십자의 재판취소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지난 3월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뒤 처음으로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이다. 이날 청구인 GC녹십자 측 법무법인 율촌과 이해관계인인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측 법률대리인들은 세 가지 쟁점을 놓고 맞섰다.
경쟁제한성은 법률문제인가, 사실문제인가
첫 번째는 담합의 요건인 ‘경쟁제한성’ 판단의 성격이다. 경쟁제한성이란 사업자들의 공동행위로 시장경쟁이 제한되거나 제한될 우려가 있는지를 뜻한다.
형사 항소심은 다른 도매상들이 백신 공급확약서를 발급받아 GC녹십자와 경쟁할 가능성이 낮고 들러리 입찰이 낙찰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행정소송 법원은 제3자도 공급확약서를 받을 수 있고 입찰·수의계약 과정에서 가격경쟁이 가능하다고 봐 과징금 처분을 유지했다.
GC녹십자 측은 “동일한 증거와 사실관계를 두고 형사와 행정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면, 이는 단순한 사실 평가의 차이가 아니라 규범적 포섭 및 법령 적용의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경쟁제한성은 법률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공정위 측은 “이 사건의 본질은 형사판결과 행정판결의 결론이 다르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차이가 원심판결을 파기해야 할 헌법상·법률상 하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라고 반박했다.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은 증명 기준과 사실 평가가 달라 결론이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오영준 재판관은 의료사고나 공무원 징계 사건에서도 형사·민사·행정재판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며 그런 사건도 모두 심리불속행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느냐고 물었다. GC녹십자 측은 이번 사건에서는 상반된 판단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조차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답했다.
대법원의 행정소송 심리불속행 기각은 적법했나
두 번째는 심리불속행 기각의 적법성이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상고이유를 검토해 법률에서 정한 심리속행 사유가 없다고 판단하면 추가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다만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는 중대한 법령 위반 등을 심리불속행의 예외 사유로 정하고 있다.
GC녹십자 측은 형사·행정판결 간 충돌이 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5호의 ‘중대한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있다’와 ‘없다’는 양립할 수 없다”며 대법원이 법리적 모순을 심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 측은 “심리불속행 제도는 심사를 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라, 상고이유를 모두 검토한 후 심리를 속행할 사유가 없다고 정당하게 판단하는 심사 절차”라고 맞섰다. 또 제4조 제3항 제2호에 따라 상고이유가 원심판결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심리불속행 기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행정소송 원심 선고가 2025년 10월로 형사 대법원 무죄 확정(같은 해 12월)보다 빨랐다는 점도 강조했다. “후발적으로 선고된 대법원 형사 판결이 존재하지 않던 원심 행정판결의 하자를 소급하여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행정소송 원심 선고 당시에도 형사 항소심의 무죄 판결은 존재했다.
조한창 재판관은 양측에 심리불속행의 예외 사유와 예외 사유가 주장된 경우에도 기각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물었다. GC녹십자 측은 판결이 충돌한다면 심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정위 측은 원심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만큼 기각이 적법하다고 맞섰다.

판결 이유 설명 생략, 재판청구권 침해인가
세 번째는 판결 이유제시 의무다. GC녹십자 측은 법원이 당사자 주장을 인식·고려해야 한다는 ‘법적 청문권’도 재판청구권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GC녹십자 측은 “당사자와 법률 대리인은 대법원이 왜 종전 형사 확정판결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며 이번처럼 상반된 판결이 존재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판결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공정위 측은 GC녹십자가 상고이유서와 제출 자료를 통해 충분히 주장할 기회를 가졌다며 “판결문에 개별 이유가 적히지 않았다는 것과 주장이 판단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현행법은 심리불속행 판결의 이유 생략을 허용하고 있다.
김복형 재판관은 형사 무죄 확정 뒤 별도 설명 없이 행정사건 상고가 기각된 상황을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로 물었다. GC녹십자 측은 헌재가 이유제시 의무의 헌법적 한계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백신 입찰 담합에서 재판소원까지
이번 사건은 GC녹십자가 한국MSD와 공동판매계약을 맺은 HPV 백신 ‘가다실’ 구매입찰에서 비롯됐다. 공정위는 GC녹십자가 2017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세 차례 입찰에서 도매상들을 들러리로 참여시켰다며 2023년 8월 시정명령과 20억 3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GC녹십자는 형사 1심에서 벌금 70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2024년 7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25년 1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나 과징금 취소 행정소송에서는 2025년 10월 서울고법에서 패소했고, 대법원도 올해 2월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심판의 대상은 과징금 자체가 아닌 대법원의 기각 판결이다. 헌재가 GC녹십자의 청구를 받아들이더라도 과징금이 곧바로 취소되는 것은 아니며 법원이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해야 한다.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첫 전원재판부 회부 사건인 만큼 이번 헌재 판단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판결에 대한 헌법적 통제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가늠할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