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은하 중심에는 태양보다 약 400만 배 무거운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가 자리한다. 거대한 질량에 비해 그 활동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주변 물질을 왕성하게 끌어들이지도, 은하 중심부를 눈부시게 밝히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사실상 휴면 상태에 가까운 블랙홀로 여겨졌던 이유다. 그러나 정밀 관측을 통해 이 조용한 블랙홀도 주변으로 바람을 내보내며 가까운 우주 공간을 바꾼 흔적이 드러났다.

초대질량 블랙홀은 활발하게 물질을 끌어들여 은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블랙홀 주변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너지는 은하핵을 밝히고, 주변 가스를 가열하거나 밀어낸다. 그 영향이 충분히 강하면 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차가운 가스의 공급이 줄어들어 별 탄생이 억제되기도 한다. 궁수자리 A*는 이러한 활동성 은하핵과 비교하면 훨씬 차분한 상태다. 그렇다고 주변과의 상호작용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블랙홀 주변에는 가스와 먼지, 별이 모여 있다. 가스는 충돌과 마찰을 겪으며 에너지를 잃고, 각운동량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각운동량을 잃은 일부 가스가 블랙홀 쪽으로 이동한다.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중력 위치에너지의 일부가 열로 바뀌면서 가스의 온도가 올라간다. 뜨거워진 물질은 빛을 방출하고, 일부는 바깥으로 흘러나가 블랙홀 주변에 바람을 일으킨다. 이 바람은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탈출한 물질이 아니라, 블랙홀로 들어가던 물질 가운데 일부가 주변에서 다시 방출되는 흐름이다.

블랙홀에 유입되는 물질이 많지 않아도 주변에 전달되는 에너지는 상당할 수 있다. 연구진이 제시한 에너지 규모의 예를 들면, 종이 클립 하나 정도인 1g의 가스가 블랙홀로 유입되며 내놓는 에너지만으로도 훨씬 바깥에 있는 약 100kg의 가스를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궁수자리 A*에 적용하면 그 거리는 빛이 약 12일 동안 이동하는 거리에 해당한다. 태양과 해왕성 사이 거리의 50배를 넘는 규모다. 적은 양의 물질만 유입되더라도 블랙홀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궁수자리 A*가 과거에 지금보다 훨씬 격렬하게 활동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우리 은하 원반의 위아래로 거대하게 뻗은 페르미 버블이 대표적이다. 감마선으로 관측되는 이 구조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 가운데 하나는 은하 중심 블랙홀의 과거 활동이다. 그러나 먼 과거에 남겨진 흔적만으로는 오늘날에도 궁수자리 A*가 바람을 내보내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최근의 활동을 확인하려면 블랙홀 가까이에 남은 흔적을 찾아야 한다.
우리 은하 중심부는 지구에서 약 2만 6000광년 떨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두꺼운 먼지와 가스가 놓여 있어 가시광선으로 중심부를 들여다보기 어렵다. 천문학자들이 전파와 적외선, X선을 이용하는 이유다. 이번 연구에서는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간섭계인 알마(ALMA)가 2017년과 2018년, 2021년에 수집한 관측 자료를 활용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약 230GHz에서 방출되는 일산화탄소의 전파 신호다. 이 방출선은 약 100K 정도의 차가운 분자 가스를 추적하는 데 유용하다. 블랙홀 자체에서 나오는 빛보다 그 주변의 차가운 가스가 어디에 얼마나 분포하는지를 정밀하게 살핀 것이다. 여러 해에 걸친 자료를 결합해 가로와 세로가 각각 2700픽셀에 이르는 관측 지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는 궁수자리 A의 빠른 밝기 변화를 처리하는 일이 중요했다. 궁수자리 A는 짧은 시간 간격으로 전파의 세기가 달라진다. 중심부의 밝고 변덕스러운 신호를 정확히 보정하지 못하면 그 주변의 희미한 구조를 구분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를 모델링하고 중심 전파원의 영향을 제거해, 주변에 퍼진 가스의 미세한 구조를 드러냈다.
궁수자리 A* 주변에는 블랙홀 바로 가까이에서 물질이 유입되는 영역보다 훨씬 큰 규모의 분자 가스 고리가 있다. 은하핵 주변 원반(Circum nuclear disk), 즉 CND라고 부르는 구조다. 이전에는 이 고리의 안쪽 경계가 블랙홀에서 약 0.5파섹 떨어진 곳에 있다고 여겼다. 그보다 안쪽에는 주로 뜨겁게 이온화된 가스가 차 있고, 차가운 분자 가스는 드물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알마 관측 지도는 그 안쪽에도 복잡한 분자 가스 구조가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가스의 속도 분포에는 궁수자리 A* 주변을 회전하거나 중심으로 유입되는 운동과 들어맞는 양상이 나타났다. 우연히 같은 시선 방향에 겹쳐 보이는 배경 구름이 아니라, 은하 중심부의 물질 흐름에 참여하는 가스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이 차가운 분자 가스 분포 한가운데 나타난 원뿔 모양의 빈 구간이었다. 이 구조는 궁수자리 A* 부근에서 시작해 최소 1파섹, 즉 3광년이 넘는 길이로 뻗어 있었다. 원뿔이 벌어진 각도는 약 45도다. 주변에서 관측되는 차가운 분자 가스의 신호가 이 통로 안에서는 현저하게 약했다.
연구진은 이 원뿔 모양의 구조를 블랙홀 주변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바람이 남긴 흔적으로 해석했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차가운 가스를 밀어내거나 가열하면 일산화탄소의 방출이 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관측 지도에서 비어 보인다는 것은 모든 물질이 사라진 진공이라는 뜻이 아니다. 차가운 분자 가스를 추적하는 신호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며, 그 안에는 뜨거운 가스가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바람은 흔히 알려진 블랙홀 제트와 구분된다. 제트는 물질과 에너지가 좁은 방향으로 집중되어 멀리 뻗어 나가는 흐름이다. 반면 바람은 상대적으로 넓은 각도로 퍼져 나간다. 좁은 호스에서 뻗는 물줄기와 넓게 분사되는 샤워기의 차이를 떠올릴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구조는 충분히 넓게 벌어져 있어, 연구진은 이를 제트보다 바람에 가까운 흐름으로 설명했다.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알마가 포착한 차가운 분자 가스와 찬드라가 포착한 X선 방출은 서로 반대되는 분포를 보였다. 차가운 가스가 적은 곳에서는 X선이 강하고, 차가운 가스가 많은 곳에서는 X선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뜨거운 가스가 차지한 공간에서 차가운 가스가 밀려나거나 가열되었다면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다.
원뿔의 경계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주변에서는 분자 가스가 계속 중심부로 흘러들고 있다. 과거에 한 차례 강한 바람이 불고 완전히 멈췄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흔적이 다시 가스로 채워질 수 있다. 빈 구간이 유지되려면 가스를 밀어내거나 가열하는 작용도 이어져야 한다.
바람의 지속 시간도 추정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바람이 주변 이온화 가스 구조를 만드는 주된 원인이라고 가정하고, 가스의 회전과 구조의 크기를 이용해 시간을 계산했다. 그 결과, 관측된 방향의 바람이 적어도 약 2만 년 동안 활동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원뿔의 존재 자체를 확인하는 것과 달리, 이 시간 추정에는 가스가 가열되고 이온화되는 원인에 대한 가정이 포함된다.
궁수자리 A*가 비교적 최근까지 지금보다 밝았다는 증거도 있다. 주변 분자 구름에서 관측되는 X선의 빛 메아리다. 과거 블랙홀 주변에서 방출된 X선이 떨어진 구름에 도달한 뒤 산란되어 지구로 들어오면, 직접 오는 빛보다 긴 경로를 거친 만큼 뒤늦게 관측된다. 이 반사 신호를 분석하면 직접 보지 못한 과거의 활동을 되짚을 수 있다. 이는 바람이 구름과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X선 방출과 구분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관측은 궁수자리 A*가 수백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X선을 방출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수백 년은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살피던 시대와도 맞닿는 시간이다. 당시 X선 관측 기술이 있었다면 오늘날과 다른 은하 중심부의 모습을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가시광선 망원경만으로는 두꺼운 먼지 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채기 어려웠다. 만약 인류의 과학 기술의 발전이 딱 400년 정도만 더 빨랐다면, 우리는 더 눈부신 X선을 토해내는 은하수를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e63cf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 천문학자로 태어난다’,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UFO’ 등을 번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