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50년 인류의 식량 부족’. 숱하게 들었지만,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좀처럼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서늘한 전망은 최근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UN이 2024년 발표한 세계 인구 전망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50년 약 97억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인구가 약 83억 명임을 감안하면 25년 안에 중국 인구에 맞먹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더 늘어나는 셈이다.
먹어야 할 입은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 여건은 반대로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농업의 근간을 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기온 상승과 가뭄·폭염 등 극한기상의 증가가 주요 작물 생산량을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22년 유럽은 최소 50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의 가뭄을 겪었고, 같은 해 인도는 폭염으로 밀 생산량 전망이 하향되자 국내 공급 확보를 위해 밀 수출을 전격 제한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기상이변은 이제 한두 해의 흉년이 아니라, 글로벌 식량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불안 요인이 됐다.
이런 가운데 유럽 푸드테크계에서 핀란드 스타트업이 던진 도발적인 해법이 주목받고 있다. 땅이 아닌 공기에서 식량을 생산하겠다며 미래 먹거리 시장에 뛰어든 솔라푸즈(Solar Foods)가 그 주인공이다.

농경지 대신 스테인리스 탱크로
식량 문제의 통상적인 해법은 더 넓은 경작지, 더 강한 품종 개발 등과 같이 농업의 틀 안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솔라푸즈는 식량 생산의 전제 자체를 바꿨다. 이 회사가 만드는 단백질 분말 ‘솔레인(Solein)’에는 농지도, 비료도, 가축도 필요 없다. 원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 전기, 그리고 미네랄과 질소 공급원 등이다. 발상 자체가 SF 영화처럼 들리지만, 헬싱키 인근 반타(Vantaa)의 공장에서 이미 실제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솔레인은 미생물 배양을 통해 만들어진다. 먼저 전기를 이용해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다. 이 수소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산소, 미량의 영양분 등을 발효조에 넣고 특정 미생물을 배양한다. 치즈나 된장처럼 발효를 통해 단백질을 얻는 원리지만, 미생물의 먹이가 곡물이 아닌 수소와 이산화탄소라는 점이 다르다. 발효조 안에서 미생물이 번식하며 단백질을 축적하고, 이를 건조·분말화하면 노란 빛깔의 분말, 솔레인이 완성된다.

솔라푸즈에 따르면 솔레인은 건조 중량 기준 약 78%가 단백질이며, 9가지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갖췄다. 또 맛과 냄새가 거의 없어 단백질 음료, 식물성 식품, 제과류 등 다양한 가공식품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솔라푸즈의 전과정평가(LCA)에 따르면 솔레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육류 단백질의 약 1%, 식물성 단백질의 약 20% 수준이다. 농지와 가축 없이 생산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식량 생산의 환경 부담을 크게 낮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연구실에서 공장으로, 이제는 시장으로
솔라푸즈는 핀란드 국립기술연구센터(VTT)와 라펜란타-라티공대(LUT)의 연구에서 출발해 2017년 설립된 스핀오프 기업이다. 에너지 시스템을 연구하던 공동창업자 파시 바이니카(Pasi Vainikka)와 바이오프로세스 전문가 유하-페카 피트캐넨(Juha-Pekka Pitkänen) 등이 전기와 이산화탄소를 식용 단백질로 전환하는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회사를 세웠다.
솔라푸즈는 딥테크 기업의 기술 개발 단계와 상업적 수익 창출 사이의 긴 공백 구간인 ‘죽음의 계곡’을 완전히 넘어섰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연구실의 기술을 실제 생산시설로 끌어올리는 첫 번째 관문은 넘었다. 창업 7년 만인 2024년 4월 반타에 세계 최초의 상업 규모 솔레인 생산시설 ‘팩토리 01’을 가동했다. 연간 최대 160톤의 생산 능력을 갖춘 이 공장은 실험실의 비전을 실제 산업 규모의 생산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마일스톤이 됐다.

시장 진입 전략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턱대고 마트 진열대의 ‘대체육’ 코너를 노리기보다, 고단백 원료에 대한 지불 용의가 높은 고부가가치 시장을 먼저 공략했다. 솔라푸즈는 2024년 9월 미국에서 FDA 사전 심사 없이 자체 안전성 검토를 거쳐 판매할 수 있는 지위(Self-Affirmed GRAS)를 확보했고, 같은 해 11월 뉴욕 브루클린의 레스토랑 옴스테드(Olmsted)에서 론칭 행사를 열며 프리미엄 식재료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미국의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암브로시아 콜렉티브(Ambrosia Collective)가 솔레인을 원료로 한 단백질 파우더 ‘플란타(Planta)’를 출시하며 첫 솔레인 소비자 판매 제품이 탄생했다.
상업성은 이제 다음 관문이다. 팩토리 01의 역할은 대량생산 자체보다 생산기술을 산업 규모로 확대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데 있었다. 솔라푸즈는 2025년 팩토리 01에서 파일럿 시설 대비 100배 규모로 생산기술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고, 설계 생산능력인 연간 160톤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제 회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생산량을 키우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공장보다 규모가 크게 확장되는 차기 공장 설립 청사진도 나왔다.
지난달 11일 발표된 솔라푸즈 상반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차세대 공장 ‘팩토리 02’는 핀란드 남동부 라펜란타에 들어선다. 회사가 제시한 1억9100만 유로(약 3000억 원) 규모의 자금조달 계획 가운데 핀란드 정부의 지원금 등으로 71%를 확보한 상태이며, 2026년 최종 투자 결정을 거쳐 2028년 말 1단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1단계 생산능력은 연간 3200톤으로 팩토리 01의 20배다. 이후 2단계 증설을 마치면 연간 6400톤으로 생산능력을 늘릴 계획이다.

솔레인이 오늘 당장 인류의 주식인 밀이나 쌀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솔라푸즈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분명하다. ‘식량은 반드시 땅에서 나와야 한다’는 수천년 농경 사회의 전제가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강수량이 부족한 사막이든, 농지가 턱없이 부족한 메가시티든, 기존의 농업 환경과 관계없이 전기와 공기에서 얻은 원료로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충분한 규모와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면 식량 생산의 장소도 달라질 수 있다. 농지가 아니라 전기와 물, 생산시설이 있는 곳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계에 가깝지만, 핀란드의 작은 스타트업이 실제 공장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 가능성이 더 이상 연구실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