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주요 금융그룹이 연말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앞두고 일제히 경영승계 절차를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8대 금융지주에서 CEO 선임 절차가 진행되는 자회사만 70여 곳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특정 계파나 친소 관계에 따른 폐쇄적인 인사 관행을 경고하면서 그룹들은 자회사 임원 후보 추천위원회(임추위)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절차를 손질했다. 다만 지주사가 최종 후보 선정 과정에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인 만큼, 절차 개편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한금융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위원회(자경위)는 9월 21일 회의를 열고 자회사 대표 추천을 위한 승계 절차를 개시했다. 신한금융에서는 올해 말 12개 자회사의 대표 임기가 만료된다. 해당되는 곳은 신한은행·카드·증권·캐피탈·손보·저축은행·벤처투자 등이다. 이 중 신한자산신탁과 신한리츠운용(소멸 예정)은 합병을 진행 중으로, 자경위는 2027년 출범할 통합 법인의 신임 대표로 임현우 현 신한리츠운용 사장을 추천했다.
신한 자경위는 첫 회의에서 자회사 임추위 역할 확대를 위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은행 임추위에 자회사 승계 후보군의 정보를 공유하고, 임추위에 후보군 추천 권한을 부여했다. 자회사 대표의 자격 요건과 평가 기준을 구체화해 후보 심의에 활용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그룹 자경위는 후보군 심의를 진행하며, 최종 추천 후보는 각 자회사 임추위의 심의를 거쳐 선임한다.
BNK금융그룹의 자회사 CEO 후보 추천위원회(자추위)는 9월 30일 자회사 대표이사의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하고 추천 절차와 일정을 논의했다. BNK금융에서는 올해 BNK경남은행을 비롯해 증권·자산운용·저축은행·벤처투자 등 7개 자회사의 대표 임기가 끝난다. BNK금융 자추위는 서류심사-평판 조회-경영계획 발표-심층 면접 등의 절차를 거쳐 후보자 경력, 성과, 역량,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한다. 10월 중 1차 후보군 선정, 11월 중순 후보군 압축, 12월 중순 최종 후보자 선정 순서로 진행한다.
BNK금융 이사회회는 9월 16일 지주와 자회사 대표의 승계 절차를 개선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은행 임추위의 상시 후보 추천 권한 부여, 최종 면접 참관 등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합 과정의 공정성도 강화했다. 후보자가 회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경영 구상과 역량을 설명할 수 있도록 최근 3년간 경영 현황, 주요 사안, 전략 등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할 예정이다. 회사 상황을 접하기 어려운 외부 후보에게도 같은 정보를 제공해 공정한 평가를 한다는 취지다.
BNK금융은 “후보 자격과 역량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한편, 내부와 외부 후보가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후보자 간 정보 격차를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의 그룹 임원 후보 추천위원회도 9월 30일 자회사 CEO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했다. 하나금융에서는 하나은행을 포함해 하나증권·카드·캐피탈·생명보험·저축은행 등 6개 자회사를 대상으로 승계 절차를 진행한다. 그룹 임추위는 10월 말 자회사별 최종 후보군을 3인 이내로 정하고, 12월 초에 최종 후보자 1명씩을 선정해 각 사 임추위에 추천할 예정이다.

하나금융도 은행 임추위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고 최종 후보군(숏리스트)에 은행 임추위 의견을 반영했다. 숏리스트를 그룹과 은행 임추위가 공유하고, 최종 후보자 선정을 위한 평가 과정에서 은행 임추위원장이 참석해 의견을 전달하는 식이다. 후보자 검증 절차도 강화한다. 후보 압축 단계마다 최소 2주 이상 검증 기간을 확보해 검토하고, 모든 후보자에게 사전 평가 기준을 적용해 공정성을 높인다. 하나금융은 2024년부터 은행 임추위에 은행장 후보 대상자 추천 권한을 부여했다. 은행 임추위가 후보와 추천 사유를 제출하면 그룹 임추위가 후보군 편입 여부를 심의하는 식이다.
우리금융에서는 우리은행을 포함해 증권·카드·캐피탈·자산신탁·저축은행·자산운용 등 12개 자회사 대표 임기가 올해 마무리된다. 우리금융도 최근 차기 은행장 경영 승계 절차를 개시하면서 임추위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지주사 자추위가 자회사 후보를 추천하는 기존 방식에서, 자회사(은행) 임추위가 후보를 직접 추천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식이다. 후보 검증 절차도 강화했다. 은행 임추위가 외부 전문 기관과 함께 후보자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하고, 후보 경영 성과 검증 권한도 부여했다.
최근 양종희 회장의 뒤를 이어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정한 KB금융에서는 은행·증권·카드·손해보험·자산운용 등 10개 자회사 대표의 임기가 올해 말 종료된다. KB금융은 자추위를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 추천위원회(대추위)라는 명칭으로 운영 중이며, 지주사 대추위에서 최종 후보자를 추천하면 각 자회사 대추위에서 이를 심사한다. KB금융 대추위도 최근 자회사 대표 후보 선정 기준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그룹이 자회사 대표 선임을 앞두고 일제히 자회사의 임추위 권한을 강화하고 나선 배경에는 당국의 요구가 있다. 자회사 대표 선임 과정이 그룹 회장과 지주사 중심으로 이뤄져 후보군 관리가 형식적이고 투명성이 떨어진다고 보면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월 15일 임원 회의에서 “금융지주 자추위가 수립한 자회사 CEO 승계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추위 역할은 제한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9월 23일 8개 은행 지주 회장 및 은행연합회장 간담회에서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자회사 대표를 선임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며 “후보 추천, 검증·선정 과정에서 금융사지배구조법과 모범 관행의 취지에 따라 자회사 임추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제도 개선과 실효성은 별개라는 의견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의 의도나 절차 개선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주사와 자회사 관계를 고려했을 때 지주사 영향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더불어 인사 과정에서 자회사의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는 있으나, 지주사의 본래 기능을 감안했을 때 인사 개입을 통제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