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별로 웃기지 않은 농담이지만, 트랜스포머를 돌리려면 트랜스포머가 필요합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24년 독일 보쉬가 주관한 행사에서 한 얘기다. 무슨 뜻일까.
앞의 트랜스포머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뼈대가 되는 설계 구조다. 챗GPT의 ‘T’가 바로 트랜스포머다. 뒤의 트랜스포머는 전압을 바꾸는 변압기다. 같은 단어로 말장난을 했지만, 담긴 메시지는 진지했다. AI의 병목이 반도체 칩에서 변압기로, 그다음엔 전기 자체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사이트라인 클라이밋은 올해 가동 예정으로 발표된 대형 데이터센터 용량(약 16GW) 가운데 30~50%가 전력·장비 부족 등의 이유로 연내 가동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대형 데이터센터 임대 기업 디지털리얼티가 엔비디아 본사가 있는 산타클라라에서 2019년 건설을 신청한 데이터센터 사업은 6년이 지나도록 전력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빈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코리아가 한국전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누적 기준 수도권에서 전력계통영향평가 1차 기술검토를 신청한 데이터센터 사업은 522건이었다. 이 가운데 최종 공급 가능 승인을 받은 사업은 10건으로, 전체 신청 건수의 1.9%에 그쳤다. AI 시대의 가장 귀한 자원은 반도체가 아니라 전기라는 말이 더는 과장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발상이 바뀌고 있다. 전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발전소를 데이터센터 옆에 직접 갖다 놓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온사이트(On-site) 전원’이라고 부른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늘면서 온사이트 발전이 실제 발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흐름 속에서 독일 바이에른의 한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1억 5420만 유로(약 230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한 리베리온(Reverion)이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리베리온은 지난 8월 한국 기업 두산퓨얼셀과 SOFC(Solid Oxide Fuel Cell, 고체산화물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스택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엔진도 터빈도 없는 발전소?
데이터센터 바로 옆에 발전소를 짓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가스 엔진이나 터빈을 쓰는 소형 발전기는 이미 데이터센터 현장에 배치되고 있다. 미국 캐터필러나 핀란드 바르질라 등이 대표적이고, GE버노바, 지멘스에너지, 롤스로이스 등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발전기는 가스를 태워 엔진이나 터빈을 돌리고, 그 회전력으로 전기를 만든다. 연료의 에너지가 열과 기계적 운동을 거쳐 전기로 바뀌는 사이 상당한 에너지가 열로 빠져나간다. 현장용 소형 가스발전기는 연료 에너지의 40% 정도만 전기로 바꾼다.
반면 리베리온의 발전소에는 엔진도 터빈도 없다. 겉모습은 선박용 컨테이너를 닮은 철제 상자 하나다. 내부에는 SOFC 스택과 이를 운전하는 각종 장치가 들어 있다. 이 연료전지는 얇은 세라믹 전해질을 사이에 두고 공기와 연료가 각각 공급된다. 고온에서 공기 중 산소가 이온 형태로 전해질을 통과하고, 전극에서 연료와 전기화학적으로 반응하면서 전기를 만든다. 연료를 태우지 않으니 버려지는 에너지가 적다. 리베리온은 독일 뮐라커의 바이오가스 시설에서 사전 양산 설비로 전기효율 74.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가스 열병합발전기의 전기효율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 장치는 거꾸로도 돈다. 전기차가 평소엔 모터로 바퀴를 굴리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회생제동으로 전기를 만들듯, 전기가 남을 때는 같은 연료전지를 전기분해 모드로 돌려 수소를 만든다. 시스템 구성에 따라 메탄도 생산할 수 있다. 바람이 세고 햇빛이 좋은 날엔 남는 전기를 가스로 바꿔 저장하고, 전기가 모자라는 날엔 그 가스로 다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연료를 공기와 섞어 태우지 않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고농도로 분리해 회수하기도 쉽다. 바이오가스로 돌리고 회수한 탄소를 활용하거나 저장하면 대기 중 탄소를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설치도 간편하다. 발전소를 현장에서 짓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완성한 발전 모듈을 현장으로 옮겨 가스 공급시설에 연결하면 된다. 전기가 더 필요하면 모듈을 더 놓으면 된다. 언제 완공될지 모르는 송전선으로 전기를 멀리서 끌어오는 대신, 연료를 끌어와 그 자리에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기술 다음은 생산능력
물론 만능은 아니다. 현재 설비 한 대의 출력은 500kW다. 이를 기준으로 100MW급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채우려면 산술적으로 200대가 필요하다. 리베리온이 계획한 새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250MW로, 설비 용량만 단순 비교하면 100MW급 데이터센터 두 개 반 정도에 해당한다. 실제 필요한 설비 수는 예비전력과 운전 조건 등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데이터센터도 아직은 회사가 목표로 하는 성장 시장이다. 현재 가동 중인 설비는 바이오가스 시설과 공장, 병원 등에 설치돼 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이 지갑을 연 이유는 기술을 현장에서 입증했고, 이제 남은 과제가 생산능력이기 때문이다. 리베리온에 따르면 현재 고객 현장에서 상업용 설비 7기가 가동 중이며, 잠재 매출 규모가 20억 달러를 넘는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스테판 헤르만 CEO는 독일 매체 인터뷰에서 “지금 생산할 수 있는 양과 자릿수가 다를 만큼 수요가 크다”고 말했다. 회사는 투자금의 대부분을 독일 내 새 공장에 투입해 생산능력을 지금의 10배로 늘리고, 설비 한 대의 출력도 메가와트급으로 키울 계획이다.
리베리온은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8월 두산퓨얼셀과 약 1087억 원 규모의 SOFC 스택 공급계약을 맺었다.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두산퓨얼셀로서도 SOFC 스택을 해외 기업에 대량 공급하는 새로운 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됐다.
리베리온의 사례는 발전효율을 높이는 기술과 이를 산업 규모로 구현하는 능력이 별개의 과제임을 보여준다. 74.2%의 전기효율을 실증했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설비를 공급하지 못하면 사업을 키우기 어렵다. 리베리온이 새 공장에 투자하고 한국 기업과 대규모 공급계약을 맺은 이유다.
AI 시대의 전력난은 발전 기술 하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시점까지 설비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를 기다리기 어려운 시대, 전기를 만드는 기술만큼이나 그 기술을 대량 생산하고 현장에 설치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