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9월 10일 자그레브에서 방위사업청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크로아티아 국방부와 다연장로켓 천무(K239 Chunmoo) 18문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수주액은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 약 4억 3520만 유로(약 6400억 원)다. 납품은 2026년부터 2029년까지 이어지고, 물량의 85%가 2028년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통해 크로아티아는 폴란드·에스토니아·노르웨이에 이어 유럽에서 네 번째 천무 도입국이 됐고, 한국 방위산업은 크로아티아와 처음으로 대규모 무기 거래를 진행했다.
이 계약이 유독 눈길을 끄는 건 크로아티아가 이미 미국산 하이마스(HIMARS) 로켓 8문을 사기로 한 상태에서 천무를 추가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는 2024년 12월 약 3억 5100만 달러(한화 약 4800억 원) 규모로 하이마스와 사거리 80㎞급 로켓 394발을 주문해 놓고, 같은 장거리 로켓포를 왜 또 샀을까. 그 배경에는 미국산 무기의 ‘공급 불안’과 ‘수출 승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하이마스에 사거리 500㎞급 PrSM 미사일을 개발했지만, 수출 승인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크로아티아가 구매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이란 전쟁 여파로 미국의 유도무기 재고가 고갈되어 기본형 유도로켓 버전의 납기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반면, 천무는 한 발사대에 두 개의 발사 포드를 달아 GCR-80 239㎜ 유도탄을 최대 12발 실어 하이마스(6발)의 두 배 화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사거리 160㎞ CTM-160 유도로켓과 사거리 290㎞ CTM-290 전술탄도미사일을 공급할 수 있어 하이마스보다 화력도 강하고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탄약을 크로아티아에 공급할 수 있다. 실제로 크로아티아 국방장관 이반 아누쉬치(Ivan Anušić)는 크로아티아가 천무를 구매하면서 사거리가 300㎞를 넘고 최대 500㎞, 구경 607㎜까지 확장 가능한 무기체계를 보유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크로아티아는 미국제와 한국제 다연장로켓을 동시에 구매하는 ‘이중 조달(Dual-source)’을 택한 것이다. 하이마스로 정밀타격 능력을, 천무로 대량 화력과 탄종 유연성을 확보해 발사대 26문의 장거리 로켓 전력을 꾸린다. 단일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이다. 크로아티아 총리 안드레이 플렌코비치(Andrej Plenković)는 이번 도입을 “라팔 전투기 도입 이후 가장 크고 중요한 투자”라고 불렀다. 처음으로 매우 먼 거리의 목표물을 신속·정밀하게 타격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설명이다.
발칸의 ‘화약고’에서 다시 불붙은 군비 경쟁
천무 선택의 배경에는 크로아티아가 마주한 안보 불안이 자리한다. 인접국 세르비아가 이스라엘제 다연장로켓 펄스(PULS)와 사거리 300㎞ 이상의 정밀타격 미사일, 중국제 체계까지 도입하면서 발칸반도의 군비 경쟁이 다시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크로아티아는 국방예산을 2025년 국내총생산(GDP)의 2.01% 수준에서 2027년 2.5%, 2030년 3%, 2032년 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고, 2008년 폐지했던 징병제를 18년 만에 부활시켰다.

크로아티아군의 군사력 현대화 계획에 따라 현재 프랑스산 라팔(Rafale) 12대를 F4 표준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독일산 레오파르트2A8 전차 44대와 프랑스산 세자르(CAESAR) MK2 자주포 18문, 체코산 타트라 트럭 420대, 미국산 브래들리 장갑차를 잇따라 도입했다. 이 현대화 패키지 규모만 약 19억 유로(약 2조 9000억 원)에 이르고, 유럽연합(EU)의 SAFE 제도를 통한 17억 유로 장기 저금리 대출이 뒷받침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화력 리빌딩’이 발칸반도까지 번진 셈이고, 이 기회를 틈타 유럽 방산의 전통 강자들이 채운 크로아티아의 무기 목록에 천무가 끼어든 것이다.
천무 다음으로 도전할 무기체계는?
크로아티아가 안보 불안을 느끼고 군 현대화에 노력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대한민국 K-방산에 대한 추가 수요를 기대해 볼 만하다. 우선 가장 확실한 판로는 천무 후속 물량과 탄약이다. CTM-290 전술탄도미사일과 607㎜급 장거리 미사일 추가 구매, 그리고 군수지원(MRO) 계약이 자연스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노르웨이·에스토니아 같은 다른 유럽의 천무 구매 국가도 비슷한 흐름을 따르고 있다.
또한 크로아티아의 천무 다음 무기체계 획득 사업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 크로아티아는 5억~6억 유로 규모의 중거리 방공체계와 약 10억 유로짜리 초계함 2척 획득 계획을 진행 중이며, 업체 선정을 내년 안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중거리 방공체계에는 당연히 우리 천궁-II(KM-SAM)가 도전할 만하다.

크로아티아는 지금까지 단거리 방공에만 집중해 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을 거치며 이제 세계 어느 나라든 단순한 방공미사일이 아니라 드론과 탄도미사일에 동시에 대응 가능한 복합 방공체계를 원하고 있다. 실제로 크로아티아는 천궁-II 제조사 LIG D&A(옛 LIG넥스원)와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이번 이란 전쟁에서의 실전 사용이 수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크로아티아에 수출할 만한 K-방산 제품으로는 얼마 전 미국 수출에 성공한 K9MH 차륜형 자주포와 ‘천경’ 대포병레이더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이미 프랑스산 세자르 자주포를 보유하고 있지만 K9MH 자주포는 각종 유도포탄을 운용할 수 있어 20% 이상의 사거리 우위를 가지고, 수동 장전 방식인 세자르와 달리 완전 자동 장전 방식을 채택하여 발사 속도가 분당 최대 9발로 세자르의 거의 3배 수준의 화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적 포병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대포병레이더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 자주포와 대포병레이더를 패키지로 수출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물론 냉정하게 짚을 부분도 있다. 크로아티아의 현대화는 전통적으로 독일·프랑스·미국 중심의 ‘서방 무기’로 채워져 왔다. 천무 한 건이 이 구도를 당장 뒤집지는 못한다. 한국산이 발칸에서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천무가 예정대로 2028년에 깔끔하게 인도되고, 탄약·정비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약속 이행’이 먼저 증명돼야 한다. 납기와 가격으로 문을 연 만큼, 신뢰로 문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K-방산이 유럽에서 폴란드·루마니아를 넘어 발칸반도까지 영토를 넓힌 건 분명한 성과다. 천무 한 대가 아니라, 그 뒤에 따라붙을 탄약·정비·후속 체계까지 함께 팔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크로아티아 시장의 진짜 열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