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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줄이고 감사위원은 늘리고…
상법 개정 앞둔 대기업의 셈법

정관 고쳐 이사회 규모 축소하고 임기 분산…소수주주 이사회 진입 효과 낮출 수 있다는 분석

[비즈한국] 대기업 이사회가 작아지고 있다. 9월 10일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담은 개정 상법 시행을 앞두고 이사 수를 줄이거나 정관상 이사 수 상한을 낮춘 기업이 잇따랐다. 기업들은 ‘이사회 운영 효율화’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사 수가 줄어들수록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수주주 측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여지도 함께 좁아질 수 있다.

9월 10일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담은 개정 상법이 시행된다. 사진은 서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종로 일대 빌딩숲. 사진=박정훈 기자

8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2025년과 2026년 비교가 가능한 상장사 332곳을 분석한 결과, 8월 말 기준 이들 회사의 등기임원은 2328명으로 전년 2374명보다 46명(1.9%) 감소했다. 반면 독립이사(옛 사외이사)는 같은 기간 1256명에서 1258명으로 2명 늘었다. 전체 등기임원에서 독립이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52.9%에서 54.0%로 높아졌다.

단순히 임기가 끝난 이사를 다시 선임하지 않은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정관을 고쳐 이사회 최대 인원을 낮춘 기업도 확인된다. 10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상법에 대응해 이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미 시작된 셈이다.

9명에서 5명으로…정관까지 고친 LS일렉트릭

이사회 축소가 가장 눈에 띄는 곳 중 하나는 LS일렉트릭이다. 리더스인덱스 조사에서 LS일렉트릭의 등기임원은 지난해 9명에서 올해 5명으로 4명 줄었다.

LS일렉트릭은 3월 26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까지 손봤다. 종전 정관은 이사를 ‘3인 이상 9인 이내’로 두도록 했지만 이를 ‘3인 이상 5인 이내’로 바꿨다. 이사의 최대 정원을 절반 가까이 줄인 것이다. 회사가 공시한 정관 변경 목적은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 및 전문성 제고’였다. 이사 임기도 일률적인 3년에서 ‘3년 이내로 하되 이사회 구성의 전문성 및 다양성 등을 고려해 이사별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바꿨다.

같은 주총에서 LS일렉트릭은 기존 정관에 있던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도 삭제했다. 이는 개정 상법 시행에 따른 조치다. 9월 10일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일정 요건을 갖춘 주주가 집중투표를 청구했을 때 정관을 근거로 이를 배제할 수 없다. LS일렉트릭은 관련 정관 조항의 시행 시점도 ‘2026년 9월 10일 이후 최초로 이사의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 소집이 있는 경우’로 명시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도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했다.

LS일렉트릭의 등기임원은 지난해 9명에서 올해 5명으로 4명 줄었다. 사진은 올해 3월 11일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의 LS일렉트릭 부스. 사진=최준필 기자

셀트리온도 비슷하다. 셀트리온은 올해 등기임원을 12명에서 9명으로 줄였다. 동시에 정관상 이사 최대 인원을 기존 15명에서 9명으로 낮췄다. 셀트리온이 밝힌 변경 목적은 ‘이사회 정비’다. 집중투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기존 조항도 삭제했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은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실제 이사 수 감소 폭이 가장 큰 기업은 고려아연이었다. 고려아연의 등기임원은 19명에서 14명으로 5명 감소했다. 다만 고려아연은 영풍·MBK파트너스와 장기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어 이사 감소를 개정 상법 대응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사회 축소는 일부 기업만의 현상도 아니다. 리더스인덱스가 4월 50대 그룹 상장사 가운데 비교가 가능한 269곳의 정기주총 결과를 분석했을 때 전체 이사는 1780명에서 1733명으로 47명 줄었다. 특히 사내이사가 843명에서 807명으로 36명 감소했고 당시 사외이사는 937명에서 926명으로 11명 줄었다.

그룹별 감소 규모는 카카오가 14명으로 가장 컸다. 롯데가 13명, 삼성 9명, LS 7명, 한화 6명, 영풍 4명 순이었다. 현대백화점과 미래에셋, 효성, LX, 이랜드 등은 사외이사는 그대로 두고 사내이사만 줄였다.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 수 조정에 나선 기업도 잇따랐다. 리더스인덱스 조사에서 관련 안건을 낸 기업은 15곳이었다. 효성은 효성·효성티앤씨·효성화학·효성중공업·효성첨단소재 등 5개 계열사에서 관련 안건을 올렸고, LS그룹에서는 LS일렉트릭·LS네트웍스·E1·예스코홀딩스 등 4곳이 이사 수 조정에 나섰다. 한국앤컴퍼니그룹에서는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 밖에 한진칼·GS글로벌·롯데케미칼·셀트리온 등이 포함됐다. 다만 효성중공업에서는 관련 정관 변경 안건이 부결됐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올해 주총 소집공고를 분석한 자료에서도 구체적인 변화가 확인된다. 앞서 언급한 셀트리온, LS일렉트릭 외에도 카카오는 11명에서 7명, 롯데케미칼은 11명에서 9명,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15명에서 11명, 한진칼은 11명에서 9명으로 이사 수를 줄이는 안건을 냈다. HS효성첨단소재는 16명에서 7명, 효성티앤씨는 16명에서 9명으로 상한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사 수 줄이면 집중투표제 효과도 작아지나

기업이 이사회 규모를 줄이는 것이 주목받는 이유는 집중투표제의 구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에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한꺼번에 선임할 때 주주가 ‘보유 주식 수×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갖는다. 예컨대 이사 5명을 뽑는다면 1주를 가진 주주에게 5표가 주어진다. 주주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다만 여러 이사를 당선시키려는 지배주주는 표를 여러 후보에게 배분해야 하는 반면 소수주주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한 후보에게 표를 집중할 수 있어 일반적인 투표보다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9월 10일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회사는 발행주식총수의 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집중투표를 청구할 경우 정관을 근거로 이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한 번에 뽑는 이사 수가 적어지면 집중투표제의 효과도 줄어든다. 이사 전체 숫자를 줄이고 각각의 임기를 달리하면 특정 주총에서 동시에 선임되는 이사 숫자를 줄일 수 있다. 정관상 이사 상한을 낮추고 이사별 임기를 다르게 설정하는 방식이 개정 상법 대응책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기업이 이사회 규모를 줄이는 것이 주목받는 이유는 집중투표제의 구조 때문이다. 사진은 한 대기업 주주총회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법무법인 세종 지배구조전략센터도 올해 주총을 분석하면서 많은 기업이 집중투표제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관상 이사 수 상한을 조정하고, 이사 임기를 분산해 한꺼번에 선임되는 이사 수를 줄이는 전략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여러 기업이 기존 ‘3년’으로 고정했던 이사 임기를 ‘3년 이내’로 바꾸거나 이사별로 임기를 달리 정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는 현행 상법상 이미 독립이사(옛 사외이사)를 3명 이상 두면서 이사 총수의 과반수로 구성해야 한다. 따라서 이사회 전체 규모를 줄인다고 독립이사 의무 비율 자체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필요한 독립이사의 절대 숫자는 줄어들 수 있다. 이사회가 9명이면 최소 5명의 독립이사가 필요하지만 이사회가 5명이라면 3명으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자와 의결권 자문기관은 이사 수 상한을 낮추는 정관 변경에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법무법인 세종은 올해 기관투자자들이 이사 수 상한 설정·축소 안건에 대해 ‘이사회 구성의 유연성 제한과 주주권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대체로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이사 임기를 분산하는 시차임기제도 경영진의 경영권을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사회 축소 자체가 위법하거나 곧바로 상법 개정 취지를 회피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 규모나 사업 구조 변화에 따라 이사회 규모를 조정할 필요가 있을 수 있고, 실제 기업들은 효율성과 전문성 등을 정관 변경 이유로 제시한다. 각 기업이 이사 수를 줄인 목적 역시 개별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사는 줄고 감사위원은 늘었다

눈여겨볼 점은 이사회 전체 규모와 반대로 감사위원 숫자는 증가했다는 점이다.

리더스인덱스 조사에 따르면 332개 상장사의 감사위원은 지난해 917명에서 올해 926명으로 9명 늘었다.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기업은 274곳에서 276곳으로 2곳 증가했다. DN오토모티브와 대웅제약은 각각 3명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계룡건설산업은 감사위원을 3명에서 5명으로 늘렸고 농심·대한유화·대한전선·메리츠금융지주 등도 각각 1명씩 늘렸다.

이 역시 개정 상법과 무관하지 않다. 7월 23일부터 감사위원 선임·해임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이른바 ‘합산 3% 룰’이 시행됐다. 9월 10일부터는 대규모 상장회사에서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해야 하는 감사위원이 기존 최소 1명에서 2명으로 확대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감사위원 숫자 자체를 늘리는 것도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감사위원회가 3명인 상태에서 분리선출 감사위원이 2명이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지만 감사위원이 5명이면 비중은 40%로 낮아진다. 분리선출 감사위원에 대한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위원회 내부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출 수 있다.

우종국 기자

기업의 움직임 뒤에 있는 구조와 이해관계를 취재합니다. 드러난 사건보다 그 사건이 벌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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