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브랜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유행을 따르고,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을 되살린다. 거창한 기술을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를 다시 이야기하는 브랜드도 있다. 어느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이 해당 브랜드와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다.
브랜드가 상품을 넘어 감각과 경험, 태도로 기억되는 시대,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사는지보다 무엇에 끌리고 어떤 경험을 기억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비즈한국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와 함께 매월 ‘이달의 브랜드’를 선보인다. 비마이비가 포착한 브랜드의 새로운 감각과 흐름을 독자들에게 전하며, 지금 주목받는 브랜드가 왜 선택받았는지 그 맥락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10월 주목받은 브랜드들의 행보도 제각각이었다. 편안한 신발을 만드는 르무통은 고객과 함께 천천히 걸었고, 11년 만에 돌아온 캪틴큐는 단종의 시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디자인하우스는 자신들의 성과보다 한국인의 창조성을 조명했다. 테슬라는 신형 스포츠카를 공중으로 띄워 올리는 장면 하나로 세계적인 화제를 만들었다. 귀여운 캐릭터 치이카와는 한국의 음악방송 무대에 올라 아이돌처럼 춤을 췄다.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는 10월 ‘입고’에 르무통, ‘먹고’에 캪틴큐, ‘머물고’에 디자인하우스, ‘즐기고’에 치이카와, ‘쓰고’에 테슬라를 선정했다. 매달 100여 개 브랜드를 검토하고 정체성과 시의성, 차별성, 커뮤니케이션, 화제성 등을 기준으로 주목할 브랜드를 고른다.
이번 달 사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서로 다른 다섯 브랜드가 저마다 가장 잘하는 것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의 강점을 이해하고, 이를 소비자가 반응할 만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입고 : 모두가 달릴 때 걷기를 이야기한 ‘르무통’

러닝 열풍이 이어지면서 운동화 시장에서도 속도와 기록이 중요한 경쟁 요소로 떠올랐다. 더 가볍고 탄성이 좋은 신발,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 그런데 르무통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더 빨리 달리는 방법이 아니라 편안하게 걷는 즐거움이다.
르무통은 가볍고 편안한 착화감을 앞세운 컴포트 슈즈 브랜드다. ‘걸을 땐 르무통’이라는 광고 문구로 인지도를 높였고, ‘편하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제품을 개발한다. 계절별 신제품을 쏟아내기보다 착화감과 완성도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대표 제품인 ‘메이트’는 2021년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 200만 족을 넘어섰다. 르무통은 이를 기념해 지난 10월 9일 경기도 용인에서 고객과 임직원이 함께하는 ‘메이트 데이’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약 4km를 걷는 산책회에 참여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겼다.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산책회는 기록이나 순위를 겨루는 행사가 아니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 걷고 시간을 보내는 데 의미를 둔다.
광고에서도 같은 방향을 유지했다. 10월 8일 공개한 ‘르무통 피플’에는 민음사의 박혜진 편집자가 등장했다. 제품의 기능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그의 산책 습관과 일상적인 생활 방식을 담았다. 신발을 신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걷는지를 이야기한 것이다.
신발 브랜드가 걷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가 실제로 함께 걷도록 만들고, 광고에서도 걷는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르무통은 제품과 캠페인, 고객 행사를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했다. 신발의 기능적 강점이 브랜드의 생활 철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먹고 : 11년 만에 돌아온 전설의 술 ‘캪틴큐’

‘마시면 다다음 날 깬다.’ 캪틴큐를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된 농담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양주 대중화를 이끌었던 술이지만, 독한 숙취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따라다녔다. 2015년 단종된 이후에도 이름이 잊히지 않았던 이유다.
1980년 롯데칠성음료가 출시한 캪틴큐는 첫해에만 1000만 병 이상 판매됐다.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양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단종 이후에는 술 자체보다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담이 브랜드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롯데칠성음료는 10월 21일 캪틴큐를 11년 만에 다시 출시했다. 짙은 초록색 병과 복고풍 라벨 등 외관에는 과거의 흔적을 남겼지만 내용물은 달라졌다. 카리브해 지역의 럼 원액을 사용하고 두 단계의 숙성 과정을 거쳐 제조했다. 과거 제품이 지녔던 이미지는 살리면서 지금의 소비자에게 맞는 술로 다시 만든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캪틴큐의 오랜 공백을 적극 활용했다. 개그맨 이선민을 모델로 기용해 옛 광고를 패러디했고, 롯데칠성음료 직원이 직접 출연하는 ‘캡틴블루’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했다. 직원이 기획과 촬영, 편집까지 맡아 브랜드를 알리는 방식이다. 여기에 11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장이 보물을 가져왔다는 설정으로 한정판 ‘캪틴큐 보물상자’를 내놨다. 1만 2000세트 가운데 1980세트에는 순은 주화를 넣어 실제 보물찾기처럼 꾸몄다.
소비자 반응도 빨랐다. 세븐일레븐 앱에서 캪틴큐 검색량은 30만 건을 넘겼고, 편의점이 준비한 사전 예약 물량도 소진됐다. 과거를 기억하는 소비자의 향수에 새로운 소비자의 호기심이 더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단종 브랜드의 부활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인지도만 믿고 제품을 다시 내놓으면 잠깐의 화제로 끝날 수 있다. 캪틴큐는 11년이라는 공백 자체를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다. 오래된 술의 귀환을 하나의 이벤트로 만든 것이다.
머물고 : 50주년을 맞은 디자인하우스가 꺼낸 한 글자 ‘막’

디자인 전문 기업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선택한 단어는 뜻밖에도 ‘막’이었다. 막춤, 막국수, 막걸리처럼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정교하고 세련된 결과물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디자인하우스가 주목한 것은 바로 그 간극이었다.
디자인하우스는 1976년 창립 이후 월간 디자인,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등을 발행하며 한국의 디자인과 생활문화를 기록해 왔다. 이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와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 전시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고, 팝업 플랫폼 헤이팝과 크리에이터 플랫폼 디자인플러스 등 디지털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디자인하우스는 ‘막, 크리에이티브!(Mak, Creative!)’라는 문화 캠페인을 기획했다. 여기서 ‘막’은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도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하게 준비된 결과물보다 서툴더라도 일단 만들어보는 창조성에 주목한 것이다.
10월 26일 서울 장충동 사옥에서 열린 기념 전시 ‘막(MAK)’에는 공간과 패션, 음식, 디자인 등 여러 분야의 창작자 26명이 참여했다. 패브릭 아티스트 김은하는 조선 왕실의 잔칫상에서 영감을 얻어 50주년 생일상을 만들었다. 창작자 그룹 다다친구들은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카르텔의 의자를 각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디자인하우스는 월간 디자인에서도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막’의 의미를 인터뷰로 풀어냈다.
50주년을 맞은 기업이라면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고 미래 비전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자인하우스는 대신 지난 반세기 동안 자신들이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과 생활문화에 시선을 돌렸다. 창립 기념행사를 기업의 역사 전시가 아니라 한국인의 창조성을 살펴보는 자리로 만든 셈이다.
즐기고|귀여운 캐릭터가 아이돌이 됐다, ‘치이카와’

아이돌 그룹이 출연하는 음악방송에 작은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일본 캐릭터 치이카와의 주인공들이 엠넷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인기 K팝 콘텐츠인 ‘릴레이 댄스’에도 참여했다. 신곡을 발표한 가수도 아닌데 음악방송의 홍보 방식을 그대로 활용했다. 귀여운 캐릭터와 한국의 아이돌 문화가 만난 장면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다.
이색적인 홍보는 극장판 영화의 국내 개봉에 맞춰 진행됐다. 9월 30일 개봉한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첫날 12만 명을 동원하며 올해 개봉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높은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개봉 17일 만에는 누적 관객 150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에서 이미 대규모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이어간 것이다.
영화의 인기는 캐릭터 상품 시장으로 번졌다. 용산 아이파크몰 치이카와샵에는 개점 전날 밤부터 대기 행렬이 생겼고, 극장 협업 상품과 관람 특전도 빠르게 소진됐다. CGV가 선보인 캐릭터 팝콘통은 여러 차례 준비한 물량이 품절돼 추가 예약 판매로 이어졌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서는 10월 첫 주 치이카와 검색량이 석 달 전보다 약 14배 증가했다.
치이카와의 경쟁력은 귀여운 외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의외로 현실적이다.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집을 마련하려고 청약에 도전한다. 귀여운 그림 안에 취업과 주거, 생계 같은 현실의 고민이 담겨 있다. 어른들이 치이카와에 공감하는 이유다.
국내 홍보에서도 이 특징을 잘 활용했다. 캐릭터의 세계관을 길게 설명하거나 영화의 줄거리를 반복해서 소개하는 대신, 한국 소비자에게 익숙한 K팝 홍보 방식을 빌렸다. 캐릭터가 아이돌처럼 음악방송에 출연한다는 의외성이 화제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치이카와의 가장 큰 매력인 귀여움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쓰고 : 자동차를 하늘로 띄운 테슬라, 한 장면의 힘

자동차가 경사로를 달려 올라가더니 연기와 함께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하늘에서 회전하고 다른 자동차 위를 뛰어넘는다. 영화의 특수효과나 AI로 만든 영상처럼 보이지만, 테슬라가 10월 15일 공개한 신형 로드스터의 시연 장면이다.
테슬라는 9년 만에 선보이는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의 시연 행사를 일반적인 모터쇼가 아닌 스페이스X 시험 시설에서 열었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차량을 등장시키고, 스페이스X의 기술을 활용한 공중 도약을 시연했다. 자동차 신제품 발표회를 로켓 발사 행사처럼 연출한 것이다.
테슬라는 이 기술에 스케이트보드 묘기에서 이름을 따온 ‘킥플립’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사전 공개한 티저에는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떠올리게 하는 문구도 숨겼다. 공중을 나는 자동차라는 오래된 상상을 현실의 기술과 연결한 셈이다.
영상이 공개되자 온라인에서는 각종 패러디가 쏟아졌다. 생활용품 브랜드 스크럽 대디는 로드스터 대신 자사 제품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영상을 만들었고, 하이네켄은 음주운전 경고 문구에 비행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유행에 참여했다. 테슬라가 만든 한 장면이 다른 브랜드들의 마케팅 소재가 된 것이다.
다만 로드스터의 가격과 실제 출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고, 시연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둘러싼 의문도 남아 있다. 극적인 시연이 곧 양산 기술의 완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가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테슬라는 차량의 성능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사람들이 기억하고 다시 공유할 만한 장면을 먼저 만들었다.
10월의 브랜드 ‘치이카와’

귀여운 캐릭터는 많다. 인기 캐릭터를 활용한 영화와 상품도 흔하다. 치이카와가 10월의 브랜드로 선정된 이유는 이미 확보한 인기에 기대지 않고, 한국 소비자에게 다가갈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는 데 있다.
치이카와는 일본에서 탄탄한 팬덤을 형성한 캐릭터다.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현실의 고단함을 담은 이야기로 성인 소비자에게도 사랑받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성공한 캐릭터라고 해서 한국의 극장과 상품 시장에서도 같은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를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 관심을 갖게 할 계기가 필요했다.
영화 배급사가 선택한 방법은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음악방송과 릴레이 댄스는 국내 소비자에게 낯설지 않은 콘텐츠다. 하지만 그 무대에 사람이 아닌 치이카와 캐릭터가 등장하자 익숙한 형식이 전혀 다른 재미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내용이나 캐릭터의 인기를 반복해서 강조하지 않고, 치이카와를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만든 것이다.
성과도 뚜렷했다. 개봉 17일 만에 150만 관객을 넘어섰고,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한 대기 행렬과 품절 사태가 이어졌다. 온라인 검색량이 급증하고 관련 기업의 주가까지 움직였다. 영화의 흥행이 캐릭터 IP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브랜드가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흔히 고민하는 것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다. 치이카와의 사례는 반대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캐릭터의 핵심 매력인 귀여움은 그대로 두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만 한국 시장에 맞게 바꿨다.
자신의 매력을 바꾸지 않고도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 치이카와가 10월의 브랜드로 보여준 가능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