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입법 조치가 첫발을 내디뎠다. 2026년 7월 22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소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단일 수치가 아닌 ‘범위형(상한과 하한)’으로 설정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기후 관련 최상위법인 이 법안이 배출권거래제와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하위 제도에 미칠 영향을 두고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개정안에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중장기 감축 목표가 명시됐다. 구체적으로 2035년까지 목표는 하한 53% 및 상한 61%, 2040년까지는 하한 69% 이상 및 상한 80%, 2045년까지는 하한 84% 이상 및 상한 90% 수준 범위에서 각각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했다.
감축 경로 설정 외에도 다양한 조항이 신설됐다. 감축 목표 설정 시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과학적 분석, 국제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추가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소속 국립기후과학원의 역할도 확대돼 특정 연도 이후에 허용되는 잔여 온실가스 배출총량(탄소예산)에 관한 분석 및 예측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개정안의 핵심 쟁점은 범위형으로 설정된 목표 중 ‘하한선’의 법적 성격이다. 개정안은 하한(53%)을 2050년 탄소중립 시점까지 일정한 속도로 줄여나가는 ‘선형감축경로’로, 상한(61%)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감축 경로로 정의했다.
시민사회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플랜 1.5는 규탄 성명을 내고 선형감축경로를 하한으로 설정한 것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 명백히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단기적인 감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 앞서 국회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 74.9%가 1.5℃ 목표 달성을 지지한 반면 선형감축경로 지지는 19.9%에 불과했다며, 이번 합의가 국민적 합의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하한선’이 실질적 규제 기준으로 작용
탄소중립기본법의 감축 목표는 하위 제도 중 실질적 경제 규제 수단인 배출권거래제(K-ETS)를 만날 때 효과를 발휘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들에게 연간 배출할 수 있는 허용 총량을 할당하고,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기업의 생산 활동에 직접적인 ‘탄소 비용’을 매기는 강력한 잣대다.
문제는 법률의 세부 조항이다. 개정안은 중장기감축목표를 상한과 하한의 범위로 설정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등의 규제가 적용되는 목표는 하한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감축경로가 범위형으로 제시됐지만 법적구속력이 하한선에 맞춰지면서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규제가 적용되는 것이다.
최창민 플랜 1.5 정책활동가는 “상한선은 어떠한 규제와도 연동되지 않는 사실상 ‘붕 뜬 숫자’에 불과하다”며 “반면 하한선은 실질적인 규제와 연동되도록 법에 명시함으로써 하한선이 실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비판했다.
탄기본과 전기본 ‘하향 평준화’ 우려
탄소중립기본법의 파급력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탄기본)’으로 이어진다. 탄기본은 국가와 지자체가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세부적인 예산과 정책을 담아내는 계획이다. 상위법인 탄소중립법이 상·하한의 범위를 제시함에 따라, 곧 수립될 국가 탄기본 역시 이 범주에서 정책을 설계할 가능성이 크다.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국가 탄기본이 법적 최소 기준인 하한선에 맞춰 수립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광역 및 기초 지자체들이 굳이 상향된 감축 목표를 자발적으로 계획에 포함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또한 탄소중립법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장기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맞는 발전 설비와 송·변전망을 어떻게 구성할지 정하는 국가 전력 종합 계획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핵심 근거로 삼아 2년마다 수립된다.
전문가들은 감축 목표가 범위형으로 설정되면서 전기본 수립 과정의 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배보람 부소장은 “감축 목표가 범위형으로 제시되면 전기본 등에서 다루는 에너지 믹스 선택지가 지나치게 다양해진다”며 “결국 탈석탄 시점이나 재생에너지 확대 등 전반적인 정책 방향이 최소 기준인 하한선에 맞춰 느슨해지면, 기후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