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비즈한국

유럽스타트업열전
비츠앤프레츨, 옥토버페스트 한가운데서 스타트업을 만나다

연구와 창업, 창업자와 투자자 연결하는 유럽 대표 창업 행사…제조업 강점에 AI 기술 접목 초점

[비즈한국] 매년 9월 말이 되면 독일 뮌헨에서는 조금 이상한 풍경이 펼쳐진다. 통풍이 안 될 것 같은 가죽바지(레더호젠, Lederhosen)를 입은 남자, 앞치마 달린 원피스(디른들, Dirndl)를 입은 여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하철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일과 이후 축제장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나온 것. 바로 세계 최대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에 가기 위해서다. 같은 시기, 뮌헨 국제전시장에서는 노트북과 투자자료를 든 창업자와 벤처캐피털리스트, 대기업 혁신 담당자들이 몰려다닌다.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비츠앤프레츨(Bits & Pretzels 2026)이 열리기 때문이다. 

9월 말 뮌헨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사진=oktoberfest.de

창업자 아침 모임에서 시작, 옥토버페스트와 결합

비츠앤프레츨의 출발은 소박했다. 2014년경 뮌헨에서 80여 명이 참석한 창업자 아침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후 규모가 급속히 커졌고, 리처드 브랜슨, 버락 오바마, 미셸 오바마, 링크드인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먼 등 세계적인 인물들이 무대에 서면서 독일을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창업 행사 중 하나가 됐다.

규모는 타 스타트업 행사나 전시회에 비해 작아 보이지만, 어느 행사보다 활기가 넘친다. 행사 기간에 제공되는 하트 모양 빵 프레츨과 무제한 맥주 덕분이다. 비츠앤프레츨의 마지막 날 행사는 옥토버페스트 현장에서 열린다. 비츠앤프레츨 주최 측이 쇼튼함멜(Schottenhamel)이라는 텐트를 통째로 빌려 참가자가 투자자와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비츠앤프레츨 행사와 결합된 텐트 쇼튼함멜. 사진=oktoberfest.de

쇼튼함멜 텐트는 옥토버페스트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곳이다. 매년 뮌헨 시장이 첫 맥주통을 열고 바이에른 사투리로 “맥주통을 땄습니다(O’zapft is)!”며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다. 옥토버페스트는 1867년에 50석짜리 이 작은 맥주 부스에서 시작해 지금은 약 9000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텐트가 됐다. 맥주를 공급하는 곳은 뮌헨의 전통 양조장 ‘슈파텐(Spaten)’이다.

이 역사적인 공간을 비츠앤프레츨이 하루 동안 거대한 스타트업 네트워킹 장으로 바꾼다. 300개가 넘는 긴 나무 테이블마다 창업가와 투자자, 기업 경영진이 섞여 앉는다. 올해는 약 250명의 ‘테이블 캡틴(Table Captain)’이 대화를 이끌었다. 테이블 캡틴은 유명한 투자자, 창업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리더들이다. 투자 상담이라고 하면 회의실에서 정장을 입고 마주 앉은 장면을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에서는 1리터짜리 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투자와 사업 이야기가 오간다.

올해 비츠앤프레츨에는 총 7500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 가운데 창업자가 3000명 이상, 투자자가 1700명 이상이다. 현장 투자자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만 약 3900억 달러에 이르며, 사흘 동안 예정된 창업자와 투자자 간 미팅은 2만 1000건을 넘는다. 대기업에서도 600명 이상의 의사결정권자가 참가했다.

숫자만 보면 또 하나의 대형 스타트업 행사 같지만, 올해 비츠앤프레츨을 돌아보면서 눈에 띈 것은 참가자 숫자보다 행사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하나의 질문이었다. 유럽은 앞으로 무엇으로 경쟁할 것인가.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뜻밖에도 ‘또 하나의 미국식 소프트웨어 기업’보다는 유럽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산업 경쟁력에 가까웠다.

창업가와 투자자가 한 테이블에 모여 얘기를 나누는 옥토버페스트&비츠앤프레츨. 사진=bitsandpretzels.com

“유럽에는 더 많은 글로벌 기업이 필요하다”

올해 행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에게서 나왔다. 슈미트는 유럽이 충분히 큰 시장과 고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약, 금융서비스를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유럽만의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기업 가운데 세계적인 규모까지 성장하는 기업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뮌헨의 창업자들에게 던진 구체적인 제안은 AI를 제조업에 적용하라는 것이었다.

올해 비츠앤프레츨에 참여한 에릭 슈미트. 사진=bitsandpretzels 링크드인

아침에 어려운 설계 문제를 정의하고 AI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든다. 이를 3D프린터로 밤새 제작한 뒤 다음 날 실제로 시험한다. 설계부터 제작과 테스트까지 하루 단위로 반복하는 제조업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슈미트가 제시한 조건은 간단했다. “똑똑해야 하고, 빨라야 하고,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AI와 제조업을 결합하면 독일은 여전히 독특한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발언은 올해 비츠앤프레츨의 분위기를 꽤 정확하게 압축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스타트업 시장의 관심이 생성형 AI에 집중되면서 유럽에서도 “유럽판 OpenAI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반복됐다. 하지만 2026년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AI 그 자체보다 AI를 산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독일은 잘 하던 걸 하고, 거기에 AI를 도입하자!

행사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변화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뮌헨을 대표하는 창업 지원기관인 뮌헨공대 창업센터(운터네머툼, UnternehmerTUM)은 올해 비츠앤프레츨에서 프런티어 AI(Frontier AI)와 인더스트리얼 호라이즌스(Industrial Horizons)를 전면에 내세웠다. 최첨단 고성능 AI 기술을 제조·건설·물류 등 전통적인 제조업에 응용하는 것이다.

행사 기간 별도의 프런티어 AI 라운드 테이블과 뮌헨공대 벤처연구소(툼벤처랩스, TUM Venture Labs)의 인더스트리얼 호라이즌스 프로그램도 열렸다. 창업자와 투자자뿐 아니라 대학, 연구기관, 산업계가 같은 자리에서 AI와 산업의 접점을 논의했다.

뮌헨에서는 이것이 그리 낯선 조합이 아니다. 뮌헨에는 BMW와 지멘스(Siemens) 같은 글로벌 제조기업이 있고, 뮌헨공대(TUM)를 중심으로 공학과 자연과학 연구가 활발하며, 운터네머툼과 툼벤처랩스를 통해 연구 결과를 실제 스타트업으로 만드는 체계도 오래전부터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기에 AI와 로보틱스, 우주항공, 양자기술, 기후기술과 방산이 결합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스타트업 컨퍼런스를 지배했던 단어가 SaaS, 핀테크, 플랫폼이었다면 지금은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딥테크, 디펜스 테크, 산업용 AI, 로보틱스, 기후테크가 올해의 키워드였다. 이는 유럽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산업과 연구 역량을 스타트업을 통해 다시 사업화하려는 흐름이다.

연구실에서 기업으로

올해 비츠앤프레츨현장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장면은 ‘익지스트 스타트업 팩토리(EXIST Startup Factories)’였다. EXIST는 독일 연방정부가 오랫동안 운영한 대학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최근 독일 정부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대학과 연구기관 주변에 대형 창업 허브를 만드는 ‘스타트업 팩토리(Startup Factories)’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 팩토리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와 향후 과제가 소개됐다. 사진=EXIST 링크드인

2025년 시작한 스타트업 팩토리는 과학기술 연구, 산업계, 창업자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 연구 결과를 빠르게 고성장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비츠앤프레츨에서는 스타트업 팩토리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와 향후 과제가 소개됐다. 프로그램 측이 강조한 핵심 역시 분명했다. ‘연구에서 사업으로(Science to Business).’

스타트업 팩토리 정책을 통해 좋은 논문이나 특허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창업하고, 산업과 만나고, 기업으로 성장하는 경로를 만드는 것이 독일의 정책적인 목적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같은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수많은 공과대학이 있다. 관건은 그 연구를 얼마나 빠르게 기업으로 만들고, 다시 세계 시장으로 키우느냐다. 독일 정부는 이 정책을 통해 좋은 스타트업 몇 개를 우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반복적으로 나올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만들려는 것이다.

다시 ‘인간’으로

흥미롭게도 올해 비츠앤프레츨의 공식 주제는 AI가 아니었다. Human After All. ‘결국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기업 업무를 자동화하고, 투자자조차 AI를 이용해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시대에 오히려 창업자를 다시 중심에 놓겠다는 것이다.

이 주제를 던짐으로써 비츠앤프레츨은 올해 행사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를 견디고, 불확실한 환경에서 판단하고 조직을 이끄는 창업가의 역할을 다시 강조했다.

조금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행사장을 돌아다녀보면 왜 이런 주제가 나왔는지 이해하게 된다. 주 무대에서는 AI와 거대 시장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창업자들의 고민은 여전히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첫 고객을 어디에서 찾을까. 투자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좋은 직원을 어떻게 채용할까. 독일의 까다로운 규제를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다음 투자를 받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해외에 나가면 누가 처음 문을 열어줄까.... AI가 많은 업무를 대신해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기업을 만드는 과정의 상당 부분은 사람을 설득하고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올해 비츠앤프레츨의 공식 주제는 AI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진=bitsandpretzels.com

그래서 창업가들의 피칭 세션, 투자자들과의 스피드데이팅이 행사 공식앱을 통해 디지털로 성사되는 한편에선 대부분의 행사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등록받고, 매치메이킹 보드에 포스트잇을 붙여 사람 냄새 나는 옛날 방식으로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런 철학을 보여주는 작은 실험도 있었다. 투자자만 스타트업을 심사하는 피칭 형식을 바꾼 것이다. 통상적인 스타트업 행사에서는 창업자가 무대에 올라 투자자 앞에서 몇 분 동안 기업을 설명하고, 심사위원들이 이를 평가한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황금프레츨상(Golden Pretzel Award)에서는 조금 다른 구조를 택했다.

초기 투자자 11명이 자신이 투자했거나 주목하는 스타트업을 직접 선정하고, 창업자와 투자자가 함께 무대에 올라 경쟁하도록 했다. 심사위원 앞에 창업자만 세우는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성공을 창업자 개인의 피칭 능력만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어떤 투자자가 왜 이 팀을 믿었는가’까지 보여주는 방식이다. 창업자와 투자자의 관계 역시 일방적인 심사에서 파트너십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줬다.

매치메이커만 70명, 네트워킹 끝판왕

비츠앤프레츨이 다른 스타트업 행사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 바로 네트워킹, 사람을 만나게 만드는 방식이다. 주최 측은 참가자를 7500명으로 제한한다. 누구나 티켓을 구입하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창업자와 투자자의 비율을 관리하고, 이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매치메이킹만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70~80명 규모로 운영한다. 행사장의 빨간 티셔츠를 입은 매치메이커들은 참가자에게 누구를 만나고자 하는지 적극적으로 묻고, 이 행사에 누가 왔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양쪽을 연결해준다.

이 네트워킹 집착의 끝판왕이 옥토버페스트와의 결합이다. 처음 보면 스타트업 행사를 맥주축제와 결합한 일종의 이벤트 마케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영리한 네트워킹 장치다.

컨퍼런스장에서는 투자자와 창업자, 대기업과 작은 스타트업 사이의 위계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모두가 같이 긴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위계와 거리를 좁힌다.

그래서 비츠앤프레츨은 그간 방문해본 수많은 스타트업 행사 중 가장 ‘사람 중심’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공식 행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애프터 파티와 사이드 이벤트에서 맥주와 와인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비츠앤프레츨 사이드 이벤트로 ‘한국 혁신의 밤(Korea Innovation Night)’도 열렸다. 사진=123Factory 제공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경제를 바라보는 뉴스에는 비관적인 표현이 많았다. 독일 제조업의 위기, 에너지 가격 상승,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경쟁력 하락, 규제 부담, 벤처투자 부족 등등. 이 문제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비츠앤프레츨에서는 적어도 유럽이 어떤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지를 보았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연구자와 창업자를 연결하고,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연결하고,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것은 결국 국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첨단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창업자들이 마지막 날이면 200년 넘은 옥토버페스트의 긴 나무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부딪친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유럽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원래 잘하던 것들을 다시 연결하기 시작했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광펜 추가
✕ 형광펜 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