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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머니게임
③ “회사 살려달라” 주주에 손 벌리고 최대주주는 ‘반쪽 청약’

M&A 등 중간 회수 통로 막혀 ‘주주배정 유증’ 내몰리는 현실…엘앤씨바이오·HLB제약 등 일반주주에 리스크 전가 논란

편집자 주
신약 개발은 시간과 자본의 싸움이다. 하나의 후보물질이 치료제로 탄생하기까지 10년 넘는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바이오기업에 자본은 단순한 운영자금이 아니라 임상이라는 긴 터널을 완주하게 만드는 핵심 경쟁력이다. 정부의 정책펀드와 금융 지원책이 확대되고 있지만, 긴 개발 기간과 높은 실패 위험을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즈한국은 국내 바이오기업의 자금 조달 현실을 짚고, 기술력 있는 기업이 상업화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새로운 금융 생태계의 대안을 살펴본다.

[비즈한국] 중소·벤처 바이오기업들이 자금난으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신약 개발에는 장기간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필요하지만 성과가 가시화되기 전까지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고, 불확실성이 큰 초기·중기 단계에는 외부 투자마저 좀처럼 유입되지 않는다.

결국 일부 기업은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에 의존하지만, 정작 최대주주가 배정 물량의 절반만 청약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신약 개발의 부담과 위험을 일반 주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KDRA(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혁신정책연구센터 2026년도 바이오헬스 정책포럼에서 바이오 산업의 ‘자본 갭(GAP)’을 지적했다. 손 위원은 “자본의 길이 막혀 있다는 갭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사실 이 구간에 들어올 수 있는 자본의 몸집 자체가 크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정부조차 이 자본 갭 안으로 과감히 들어오지 못하다 보니 연구 성과를 가지고 스타트업을 하려는 주체들이 이 영역을 스스로 커버하기 어렵고, 결국 시장의 VC(벤처캐피털)들도 불확실성이 큰 초기 영역에는 더더욱 진입을 피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자금조달 통로가 막힌 바이오기업들은 상장을 노리거나 상장 이후 주식시장에서 다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하는 수단이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다.

자금줄이 막힌 바이오기업들이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연명하는 가운데, 정작 최대주주는 ‘반쪽 청약’으로 책임을 회피하며 일반 주주에게만 신약 개발의 무거운 짐과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 사진=생성형AI

자금 줄 막힌 바이오기업, 결국 주주에게 손 내밀 수밖에

바이오기업이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약 개발을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신규 투자자를 끌어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든든한 대기업이 모기업도 아니고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 올릭스, 리가켐바이오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가시적인 기술수출 성과를 내 주목받지 않는 이상 R&D를 넘어 생존에 필요한 자금 수혈도 쉽지 않다.

여기에 바이오기업은 자체적으로 매출이나 이익을 내기 어렵다. 후보물질 발굴과 전임상, 임상시험을 거치는 동안 자금은 지속적으로 투입되지만 기술수출이나 신약 출시 전까지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임상에 진입하기 전에는 기술 검증 부족으로 투자를 받기 어렵고, 임상에 들어간 이후에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추가 자금이 필요해지는 상황에 놓인다.

통상 이런 위험은 VC, 전략적 투자자(SI), 제약바이오기업의 M&A(인수합병) 등 여러 투자 주체가 나눠 부담한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기업의 자금 회수 경로가 IPO(기업공개) 외에 뚜렷한 방법이 없다 보니 투자자들의 참여가 저조하다.

조헌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이사는 “정부가 바이오 벤처의 설립만 대대적으로 유도해 놓고 정작 대기업이나 중견 제약사가 이들을 인수할 수 있는 M&A 통로는 규제와 세제 사각지대로 꽉 막아두었다”고 지적했다.

든든한 자본력을 갖춘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해 중간 회수 활로가 막힌 상황에서, 상장 유지와 임상 지속이라는 과제를 떠안은 기업들이 선택할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기존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좁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KDRA(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혁신정책연구센터 2026년도 바이오헬스 정책포럼에서 ‘제약바이오 기술사업화 생태계 구축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회사 살리자”며 손 내밀고 최대주주는 정작 ‘반쪽 청약’

유상증자 자체가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명확한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면 유상증자는 연구개발을 위한 정상적인 자금조달 수단은 물론 성장세를 기대하는 주주들에게도 좋은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의 성과와 자금조달 목적, 최대주주의 책임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유상증자를 반복할 때다.

신약 개발에는 본질적으로 높은 실패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뚜렷한 임상 데이터나 유망한 파이프라인으로 신규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기존 주주에게 자금조달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시장의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 기존 주주들로서는 추가 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고, 그렇다고 청약에 참여하면 또다시 신약 개발 실패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유상증자 참여 여부는 주주들의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회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청약 참여가 향후 사업에 대한 책임 의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주주가 자신의 배정 물량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경영진도 추가 자금 투입의 필요성과 사업 지속 가능성에 책임을 함께 지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최대주주가 배정받은 신주 상당 부분을 청약하지 않거나 실권하는 경우 회사를 가장 잘 아는 내부자조차 성공에 의문을 품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 시그널로 강하게 읽힐 수 있다.

최근 바이오기업이 자금난을 이유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이 배정 물량 일부만 참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달 15~16일 608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앞둔 HLB제약은 최대주주 에이치엘비생명과학과 특수관계인들이 배정 물량의 약 절반만 청약할 예정이다.

HLB제약 공시에 따르면 최대주주 에이치엘비생명과학은 유상증자를 통해 배정받는 173만8577주 가운데 86만9289주, 즉 50%를 청약할 계획이다. 진양곤 HLB그룹 의장과 두 딸, 박재형 HLB제약 대표 등 특수관계인 4명도 배정 물량의 50%를 청약하기로 했다. 특수관계인 임철안 씨는 미청약 예정이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전체 배정 물량 225만 3113주 중 실제 청약 예정 물량은 112만 4917주로, 약 49.9% 수준이다. 회사는 최대주주 측의 참여 규모에 대해 현실적인 자금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10월 1406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앞둔 엘앤씨바이오도 최대주주가 배정 물량의 50% 수준만 청약할 예정이다.

엘앤씨바이오 공시에 따르면 최대주주는 이번 유상증자에서 배정받은 주식 수의 50% 수준으로 청약할 계획이다. 청약자금과 관련 세금 납부, 기존 주식담보대출 일부 상환 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보통주 일부를 블록딜(장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하고, 미청약 신주인수권증서도 매도할 예정이다.

최대주주의 유상증자 일부 참여는 지분율 악화로 이어진다. 유상증자 이후 HLB제약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0.93%에서 18.35%로, 엘앤씨바이오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23.45%에서 19.40%로 낮아질 전망이다.

물론 최대주주가 배정 물량 전부를 청약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자금 여력이나 유상증자의 목적, 회사의 재무 상황 등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적인 자금조달에도 기업가치를 높일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기존 주주들의 부담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문제다. 투자자들이 다시 자금을 넣을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유상증자는 생존을 연장할 뿐, 자금난의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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