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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이 성공 보증수표 아니다”
K-바이오 ‘기술수출 2.0’의 조건

전략 변화 및 개발 지연 등 ‘파트너 리스크’ 현실화…계약 단계부터 권리 방어와 관리 체계 갖춰야

[비즈한국] 최근 글로벌 빅파마 화이자가 디앤디파마텍의 기술이 적용된 경구용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MET-224o’ 개발 중단을 결정한 일이 국내 바이오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후보물질의 기술력과 무관하게 화이자의 내부 개발 전략과 파이프라인 재편에 따라 글로벌 임상이 멈춰서면서, 기술수출 이후 파트너사의 전략 변화가 신약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구조적 한계가 다시 한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기술수출은 국산 신약의 글로벌 성공 가능성을 입증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조 단위 계약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고 기업가치가 급등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갈등 및 개발 차질 사례가 잇따르면서 계약 체결 이후 파트너십 관리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을 넘긴 이후에도 개발과 인허가, 상업화 과정에서 리스크를 관리할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오랫동안 성공의 결과물로 여겨졌던 기술수출이 글로벌 임상 지연이나 권리 반환 등 파트너사 리스크를 겪으며 계약 이후의 상업화 주도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던졌다. 사진=생성형AI

판권 넘긴 뒤 주도권 상실…한올·메디톡스가 남긴 교훈

지난달 22일 공개된 한올바이오파마의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결과는 기술수출 이후 원개발사가 겪을 수 있는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한올바이오파마는 2017년 중국 하버바이오메드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토클리맙(HL161)’의 중화권 독점 권리를 이전했다. 이후 하버바이오메드가 2022년 권리를 중국 석약제약그룹 자회사 NBP Pharma에 재이전하고 중증근무력증(gMG) 외 적응증 개발이 지연되자, 한올바이오파마는 계약상 개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나 ICC 중재판정부는 하버바이오메드의 손을 들어줬다. 한올바이오파마의 계약 해지 통지가 무효이며 기존 라이선스 계약은 유효하다고 판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올바이오파마는 사업권을 직접 회수해 개발 속도를 높이려던 계획을 접게 됐고, 중재 비용 98억 원도 부담하게 됐다.

기술수출 이후 개발 주도권을 되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사례는 메디톡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메디톡스는 2013년 앨러간(현 애브비)에 액상형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기술수출했지만 개발 일정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시장 진출도 지연됐다. 이후 2021년 권리를 반환받았으나, 개발 지연 책임 등을 둘러싸고 국제 중재에 들어가는 등 장기간 분쟁으로 이어졌다.

파트너사 변수에 인허가 흔들…상업화 단계도 예외 아니다

기술수출 이후 최종 상업화 단계에서는 파트너사의 제조 역량이나 규제 대응이 변수로 작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HLB의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은 파트너사인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 제조·품질관리(CMC)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실사 대응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되면서 보완요구서한(CRL)을 받았고 승인 일정도 지연되고 있다.

이번 사례는 글로벌 인허가 과정에서 파트너사의 제조·품질관리와 규제 대응이 허가 일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동시에 원개발사가 이를 통제하기 어려운 기술수출 구조의 한계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대표적인 기술수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레이저티닙)’도 글로벌 임상과 허가, 마케팅 전략은 사실상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 얀센이 주도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대규모 마일스톤과 로열티 수익을 확보했지만, 글로벌 판매망과 브랜드를 직접 구축하고 임상을 끌고 가는 주도적 경험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기술수출 모델의 한계로 거론된다.

‘계약 체결’에서 ‘파트너십 관리’로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기술수출 계약 자체에 집중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계약 이후 리스크를 관리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기술수출 계약 단계부터 파트너사의 개발 지연이나 권리 이전 등에 대비한 계약 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응증별 임상 착수 기한을 명시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개발 마일스톤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권리를 자동 반환하도록 하는 조항, 개발 데이터와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유하도록 하는 장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HLB도 발 빠르게 파트너사 관리 강화에 나섰다. 지난달 항서제약과 최고경영진 및 품질(QA)·규제(RA) 실무진 간 상시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기로 하고, 기존 수시 협의를 정례화하는 등 글로벌 인허가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연구원 대표는 “기술수출과 공동개발을 추진할 때는 계약 성사 자체보다 향후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고려해 책임과 권한, 분쟁 대응 절차 등을 계약 단계에서 명확히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개발 파트너십의 역할과 권한을 사전에 구체화해야 유사 사례의 재발을 막고 글로벌 신약 개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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