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배달의민족은 한때 광고를 기대하게 만드는 브랜드였다. 음식을 주문할 일이 없어도 광고는 찾아봤다. 피식 웃게 만드는 문구와 어딘가 삐뚤빼뚤한 글씨, 제법 진지하게 벌이는 엉뚱한 일들에 눈길이 갔다. 서체를 만들어 나눠주고, 음식을 소재로 신춘문예를 열고, 치킨 감별사를 뽑았다. 배달 앱을 알리는 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들을 배민은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비스를 쓰기도 전에 브랜드부터 좋아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그 재미가 조금 덜해졌다. 배민이 브랜딩을 멈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앱을 여는 일에 비해 브랜드를 떠올리며 웃는 일은 뜸해졌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얼마를 할인받을 수 있는지, 배달비는 얼마인지가 더 급했다. 한때 말 한마디까지 눈여겨보던 브랜드가 어느새 익숙한 주문 버튼이 됐다.

그러던 차에 최근 선보인 ‘배민영수증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다. 영상 제목은 ‘요청하신 하루가 배달되었습니다’. 배달 주문서의 요청사항에 적힌 사연들을 꺼내 보여주는 캠페인이다. 오랜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민, 아직 감 안 죽었네.
고객들의 실제 요청사항을 재구성
사실 ‘배달 요청사항’이라는 말에서 따뜻함을 먼저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마주치는 요청사항은 대개 누군가를 화나게 만드는 문장이다.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별점을 빌미로 사장님을 압박하거나, 배달기사에게 엉뚱한 심부름을 시키는 식이다. 업주가 메뉴와 옵션을 교묘하게 구성했다는 불만, 배달기사의 무례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고발하는 영상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 게시물을 연달아 읽고 나면 한 끼를 사고파는 일이 이렇게 험난했나 싶어진다.
그러나 많이 보이는 일이 곧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충격적인 사례는 바로 그 충격 때문에 캡처되고, 공유되고, 다시 기사로 옮겨진다. 그 사례들이 전체 배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게시물의 개수로 가늠할 수는 없다. 맛있게 먹고 용기를 정리한 사람은 대개 자신의 저녁으로 돌아간다. 무사한 한 끼는 그렇게 조용히 지나간다.
배민의 이번 캠페인은 그 조용하지만 따뜻한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영상은 고객들의 실제 요청사항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안내로 시작한다. 주문서에 적힌 메뉴와 가격, 날짜 사이에서 평소라면 흘려 읽었을 몇 줄을 건져 올린다.
이 캠페인을 기획한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서비스를 돌아보다 영수증 속 요청사항에서 고객들이 서로에게 편지를 쓰듯 마음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그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와사비 빼주세요. 아이의 인생 첫 초밥 도전입니다.”
고추냉이를 빼달라는 말은 흔한 조리 요청이다. 그런데 그 뒤에 한 문장이 붙자 초밥 한 접시의 표정이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오늘도 만드는 메뉴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처음 만나는 맛이다. 주문서에는 초밥의 수량과 가격이 찍혀 있지만, 그 집 식탁에는 작은 도전이 배달된다.
“저 이제 이사가요. 10년간 잘 먹고 갑니다.”
밀면 두 그릇에 붙은 인사다. 요청사항 칸인데 정작 요청하는 것은 없다. 마지막 주문을 하면서 그냥 떠나기는 아쉬웠던 모양이다. 바쁜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던 날에도 그 집 음식으로 끼니를 채웠을 것이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에 10년이 담기니, 짧은 문장이 제법 묵직해진다.

이별한 지 40분 됐다며 잊어버릴 수 있게 진짜 맵게 해달라는 떡볶이 주문도 있다. 재수가 확정된 날 마라탕을 시키며 맛있게 부탁한다는 사람도 있다. 입안이 얼얼한 동안만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고, 오늘 하루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어도 저녁 한 끼만큼은 마음에 들었으면 한다.
배달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됐지만, 주문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작은 이벤트일 수 있다. 고된 육아를 마친 뒤 기다리는 혼술 안주는 잠깐이나마 자기 몫의 시간을 기대하는 일이다. 감기에 걸린 아들이 먹고 싶어한다며 국물을 따뜻하게 부탁하는 주문에는 부모의 마음이 실린다. 아빠와 싸워 기분이 좋지 않으니 최대한 맛있게 해달라는 문장에는 속상함과 식욕이 나란히 앉아 있다.
떡볶이를 먹는다고 헤어진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마라탕 한 그릇으로 재수의 막막함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 잠깐 기분이 나아진다. 이 캠페인의 감정은 그 정도의 크기여서 설득력이 있다. 한 끼가 인생을 바꾼다고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한 끼 덕분에 견딜 만했던 저녁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고객의 문장을 캠페인으로 만드는 ‘배민다움’의 회복
브랜딩 관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 이야기들을 찾아낸 장소다. 메뉴와 수량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주문의 이유가 요청사항 칸에 있었다. 조리에 필요한 정보로 읽던 문장을 사람의 사정으로 읽자, 익숙한 배달 과정에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온라인에서 갈등의 증거로 소비되던 형식을 공감의 소재로 바꾼 것이다.
앞서의 배민 관계자는 “AI로 누구나 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된 요즘일수록, 음식의 온기를 전하는 배민은 더 사람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는 이번 캠페인이 차별화를 시도한 지점을 보여준다. 영상 제작의 문턱이 낮아질수록 무엇을 영상으로 만들지 고르는 판단은 더 중요해진다. 배민은 서비스 안에 쌓여 있던 고객의 문장에서 소재를 찾았다. 초기 배민이 재치 있는 카피로 주목받았다면, 이번에는 생활 속 언어를 발견하고 편집하는 감각을 앞세웠다.

이런 접근은 브랜드가 일상에 깊이 들어온 뒤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서비스가 낯설 때는 사용법과 편리함을 설명해야 한다. 충분히 익숙해진 뒤에는 그 서비스가 생활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됐는지 돌아볼 수 있다. 이번 캠페인은 사람들이 배민을 이용하며 보내온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주문 이력이 생활의 기록으로 읽히는 순간, 앱과 이용자의 관계에도 감정이 붙는다.
다만 이러한 공감이 지속적인 브랜드 호감으로 이어지려면 실제 이용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고추냉이를 빼고 초밥을 만드는 손, 국물이 새지 않게 포장하는 손, 음식을 문 앞까지 옮기는 손이 있어야 요청은 한 끼가 된다. 캠페인이 발견한 따뜻함 역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서비스 위에서 오래갈 수 있다.
마지막 문구인 “요청하신 하루가 배달되었기를”은 이러한 접근을 한마디로 압축한다. 주문한 음식에 그날의 기대까지 겹쳐 읽도록 한다. 광고는 그 상상의 연결을 제안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다음 주문에서도 그 의미를 느끼게 하는 일은 이제 서비스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