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브랜드가 자신만의 고유함을 드러내기 위해 공간에 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백종환 WGNB 대표는 공간 디자인의 본질이 단순히 보기 좋은 형태를 빚어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서로 다른 요소들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맺는 ‘관계’를 설정하고 브랜드의 ‘관념’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백종환 WGNB 대표는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 열린 ‘브랜드비즈 컨퍼런스 2026’에서 ‘Another Kind of Harmony(또 다른 종류의 조화)’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백 대표는 빈 화면에 점 하나가 찍히면 여백이 생겨나고, 점이 둘이 되면 거리와 긴장감 등 저마다의 관계와 감정이 생겨나는 시각적 현상을 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공간 디자인은 A와 또 다른 A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A와 B가 융합해 완전히 새로운 C를 창출하는 과정”이라며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관계 맺기가 곧 창의성의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와 현대의 중첩…’백제대향로관’과 ‘미인도실’
백 대표는 역사 유물이 현대 공간 속에서 도시의 상징이자 브랜드가 된 프로젝트로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대향로관’과 대구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방, 미인도실’을 소개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 전시 설계 당시, 백 대표는 향로가 발굴된 절터(능산리 사지)와 원래 자리로 추정되는 금당의 기하학적 질서에 주목했다. 그는 “백제 시대에 쓰이던 제기(향로)를 오늘날 현대인이 관람하는 만큼, 과거의 질서와 현대의 건축을 중첩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기하학과 자연의 선 중간에 위치한 ‘초타원’ 개념을 공간에 적용하고, 여러 겹의 사각형 구조로 80평 규모의 공간 중심부에 향로를 감싸는 별도 박스를 구성했다. 관람객이 오래 머물며 감상할 수 있도록 기울어진 벽과 일체형 벤치를 마련했다. 전시실 내부는 은은한 금속 마감재와 반사를 줄인 정밀 프레이밍 조명을 적용해, 고대 백제의 금속성과 현대의 금속성이 시공간을 넘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어 소개된 대구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방, 미인도실’은 좁고 긴 신윤복의 회화 ‘미인도’를 관람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사례다. 백 대표는 학예사들과의 논의 끝에 과거 양반가 사랑방에서 개인이 은밀하게 즐겼을 법한 사적 공간의 장소성에 착안했다. 그는 “벽에 그림을 거는 관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며 방의 안쪽은 순수한 한지로 마감하고, 바깥 벽면은 옻칠을 한 한지를 수작업으로 모아 넘버링해 마감하면서 은유적인 사적 방과 공적 관람 공간의 ‘경계선’ 위에 미인도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구축과 신축을 아우르는 매뉴얼…올리브영의 ‘역차경’과 레이어드
마지막 사례로 백 대표는 상업 리테일 공간인 ‘올리브영’의 매장 공간 기획을 꼽았다. 수많은 뷰티 상품이 빼곡히 들어찬 무채색 매장 안에서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 기둥과 보의 구조를 활용한 명확한 동선 및 사이니지(Signage, 정보 전달용 시각 구조물)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백 대표는 창을 통해 안에서 밖의 풍경을 끌어들이는 전통 조경 개념 ‘차경’을 뒤집은 ‘역차경’의 개념을 공간 디자인에 도입했다고 밝혔다. 애플스토어가 투명한 전면 파사드를 통해 거리의 사람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처럼, 외부 시선에서 매장 내부가 브랜드의 관념으로 인식되도록 파사드를 기획한 것이다.
이를 위해 올리브영 로고의 기울기(13도)를 적용한 창 구조를 만들고, 텍스트 정보 대신 브랜드 고유의 색상만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윈도우 팔레트’를 배치했다. 아울러 벽 없이 유리로 둘러싸인 신축 커튼월 건물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파사드 안쪽에 벽을 한 겹 더 두는 ‘레이어드(Layered)’ 방식을 고안했다. 새로 설치한 벽의 뒷면을 매장 집기 수납공간으로 활용해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과 신축 빌딩 어디에나 유연하게 적용되는 일관된 매뉴얼을 완성했다.

백 대표는 “디자인은 단지 물리적인 형태를 빚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며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으로 빚어낸 새로운 세계관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브랜드의 관념과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상업 및 주거 공간과 관련해 ‘하이엔드(High-end)’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백 대표는 ‘마이너스(덜어내기)’의 철학을 답으로 내놓았다. 그는 “계속 마이너스로 갈수록 더 하이엔드가 된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이다”라며 “이 집에만 쓰는 소재를 활용하는 등 그 공간만을 위한 공예 작업을 하게 된다.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과 ‘고유성’을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하이엔드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