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코스에서 하는 말은 모두 말방구다. 오케이, 그러니까 컨시드를 선언하는 말만 빼고 말이다. 골퍼들이 흔히 하는 농담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동반자’라고 부르는 경쟁자에게 끊임없이 말방구를 날린다.(흔히 ‘구찌’라고도 부르는 말방구는 일본어 ‘구치(口·입)’에서 유래해 한국 골프장에서 독자적인 의미로 굳어진 은어다.)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파 4홀에서 세컨드 샷을 했는데 볼이 홀 바로 옆에 붙었다. 50센티미터쯤 되는 거리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곧바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저건 무조건 버디네.”, “눈 감고도 들어가겠다.”
그린에 도착하자 말은 더 풍성해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완전 오케이 거리네.” “그래도 버디는 오케이 없는 거 알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홀에 들어갔다 튀어나온 볼처럼 심장이 몸 안팎을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내 골프 인생에서 가장 손이 떨렸던 퍼트였다. 다행히 볼은 홀 안으로 들어갔다. 만일 그 퍼트를 놓쳤다면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퍼트를 하기 전까지 들었던 말들이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말방구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던 셈이다.
벤 크렌쇼와 톰 카이트, 캐시 위트워스와 미키 라이트 등을 지도한 전설적인 교습가 하비 페닉은 저서 ‘리틀 레드 북’에서 자신이 들은 가장 재치 있는 니들로 이런 말을 소개한다.
“당신은 백스윙할 때 숨을 들이쉬나요, 내쉬나요?”
미국에서는 말로 상대를 콕콕 찔러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을 ‘니들’이라고 부른다. 거칠고 짓궂은 말을 주고받는다는 뜻에서 트래시 토크라고도 한다. 저 질문을 들은 골퍼는 당장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백스윙할 때 숨을 들이쉬나, 내쉬나.’ 평소에는 의식조차 하지 않던 호흡이 백스윙 내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계속 그 소리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지인 한 명이 이 이야기를 들은 뒤 라운드에서 동반자들에게 같은 수작을 부린 적도 있다.
트래시 토크는 다른 스포츠에서도 흔하다. 마이클 조던과 찰스 바클리는 절친한 친구이자 치열한 경쟁자였다. 1993년 NBA 정규시즌 MVP를 받은 바클리가 조던을 자극하자 조던은 이렇게 받아쳤다고 한다.
“찰스, MVP 받고 연봉이랑 광고비가 올랐다며? 그래 봐야 내 시가 값도 안 돼.”
둘은 골프 코스에서도 서로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타이거 우즈 역시 말로 상대를 흔드는 데는 황제급이었다. 그는 저스틴 토머스에게 그린 재킷을 가리키며 이런 식으로 도발했다고 한다.
“너 이거 있니? 난 집에 다섯 벌이나 있는데.”
마스터스 우승자는 공식 그린 재킷을 일정 기간 보관한 뒤 클럽하우스에 돌려놓아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가 아니다. “넌 한 번도 못 했고 나는 다섯 번이나 했다”는 메시지만 전달되면 충분하다.
주말 골퍼들의 라운드에서도 말방구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걱정 유발형’이다.
“오른쪽이 페널티 구역이니까 왼쪽 보고 쳐.” “저 벙커까지 몇 미터예요?” “왼쪽은 아웃오브바운즈니까 차라리 오른쪽 페널티 구역이 낫겠네.”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위험 요소를 큰 소리로 반복해 동반자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평소라면 보이지 않았을 물과 벙커, 아웃오브바운즈 말뚝이 갑자기 티잉 구역 한가운데로 걸어 나오는 효과가 있다.
‘위로 가장형’도 있다.
“1미터만 더 갔으면 그린에 올라갔을 텐데.” “페널티 구역은 넘었는데 맞고 뒤로 들어왔어.” “아, 그게 안 들어가냐.”
과연 위로일까, 약 올리기일까. 말하는 사람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만 듣는 사람의 속은 더 쓰리다.
가장 고단수는 단연 ‘칭찬형’이다. 가장 흔한 소재는 비거리다.
“네가 거리는 많이 나잖아.” “나랑 30미터는 차이 나는데.” “너라면 충분히 넘기지.”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골퍼의 머릿속에는 ‘세게 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스윙에 대한 칭찬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골퍼 중에 네 스윙이 제일 부드러워.”
그 말을 들은 골퍼는 다음 스윙에서 자연스럽게 휘두르는 대신 ‘부드럽게 쳐야지’를 의식하게 된다. 부드러움은 의식하는 순간부터 대개 부드럽지 않아진다.
반대로 대놓고 공격하는 ‘비난형’도 있다.
“넌 못 넘기지.” “쓰리 퍼트 오케이.” “내가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넌 퍼트만 잘하면 싱글인데.” “드라이버는 싱글 골퍼야.”
이런 말은 칭찬과 비난의 경계에 걸쳐 있어 더 신경 쓰인다. 잘한다는 것인지 못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음 샷을 앞둔 사람의 머릿속에는 확실히 남는다. 그러고 보면 코스에서 오가는 모든 말이 정말 말방구일지도 모른다.
친한 친구끼리는 이런 말방구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사람도 있다. 서로 짓궂은 말을 주고받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골프를 치느냐는 주장이다. 그럴 수 있다. 서로의 경계를 알고, 웃고 넘길 수 있는 사이라면 말방구도 라운드의 즐거움이 된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말 한마디를 똑같이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웃어넘기지만, 누군가는 작은 말에도 신경이 쓰이고 상처를 받는다. 더구나 말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언제나 한마디를 더 보태고, 때로는 거리낌 없이 선을 넘는 사람이다.
그런 골퍼를 만났다면 싸우지 말고 피하는 편이 낫다. 그 사람이 카트를 타면 걷고, 그 사람이 걸으면 카트를 타자. 어차피 말로는 이기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골프는 공을 홀에 넣는 게임이지만, 라운드 중에는 수많은 말도 함께 날아다닌다. 그 말에 흔들리지 않는 것도 실력이고, 상대가 흔들릴 만한 말을 삼키는 것도 매너다. 모든 말이 말방구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