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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리포트
추석 연휴 극장가 찾아온 ‘암살자(들)’이 반가운 이유

현대사 소재로 표현의 자유, 알권리라는 ‘보편적 가치’ 부각…K콘텐츠 모델 사례로도 주목

[비즈한국]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됐다. 몇 년 전 ‘밀수’가 이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이 행사에는 관객들이 대거 참여해 영화를 본다. 따라서 예술성은 물론 관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대중적인 작품을 초청한다. 영화 ‘암살자(들)’은 공식 상영을 포함해 영화제 기간 준비된 총 4200여 석의 좌석이 일찍이 팔려나가며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현지 매체 ‘넥스트 매거진(NEXT Magazine)’은 “액션과 반전, 미스터리를 두루 갖춘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추어올렸다. 국제관객상(International People’s Choice Award) 차점자(Runner-Up)에도 이름을 올렸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그린 영화 ‘암살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KMDB

정작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언론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야 입소문이 점점 나고 있다. 애초에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있다. 허진호 감독은 주로 로맨스나 멜로물을 연출한 터라 장르물에서 입지가 크지 않았다. 현대사를 소재로 한 데다 제목도 이전 영화 ‘암살’과 비슷해 기시감을 주었다. 소재로 삼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경우 자칫 정치적으로 낡아 보일 수 있다. 아마도 특정 정치 세력과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 이 부문을 덜 부각한 점도 주목도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중적인 서사 구성과 연출에 이어 본질적인 가치와 시대적 원칙을 그린 점이 부각되어 현재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의 봄’과 ‘남산의 부장들’, 그리고 ‘왕과 사는 남자’ 같은 근래 흥행작들과의 공통점이 보인다.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외화 ‘오디세이’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신화적 상상력을 걷어낸 것이 공감을 일으켰다.

이 영화들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서울의 봄’은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이들에 대한 역사적 공분과 심판을 보여줌으로써 공정과 정의를 다시금 환기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권력 찬탈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물론 의리와 인간애라는 보편적 가치에 주목했다. ‘오디세이’는 자기반성과 성찰, 크세니아(타인의 존중)라는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형사 철구(유해진), 신문사 사회 부장 재환(박해일), 신입기자 영일(이민호)은 영부인 저격을 둘러싼 의구심을 파헤친다. 사진=KMDB

영화 ‘암살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보편적 원칙을 강조한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던 독재정권 시기를 배경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형사와 기자들이 등장한다. 경호 담당 형사 철구(유해진), 신문사 사회 부장 재환(박해일), 신입기자 영일(이민호)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저격을 둘러싼 의구심을 파헤친다. 영화 제목에 ‘(들)’을 넣었듯 암살자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이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억압과 통제 속에서 분투한다.

감독은 거대한 이념과 가치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려는 소신을 소환한다. 특히 기자에 주목한다. 요즘은 ‘기레기’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기자 정신, 즉 저널리즘 정신이 퇴색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끝까지 진실과 실상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각한다. 이러한 연출은 요즘 더욱 의미 있어 보인다. 자극적인 정보나 조작된 콘텐츠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기자 정신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이 코웃음을 치거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대에 그러한 기자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나름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탐사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기자들이 있지만, 그런 기자들이 대다수라면 오히려 이런 영화가 부각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는 언론과 기자들에게 요구한다. 사실을 전달하고,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권력에 질문하고, 판단을 강요하지 않기를. 현실은 그 반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허진호 감독은 거대한 이념과 가치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려는 기자정신을 소환한다. 사진=KMDB

‘암살자(들)’은 K콘텐츠 모델의 사례로도 주목된다. 영화 제작사는 ‘서울의 봄’과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만든 곳이다. 이런 점 역시 대중의 주목을 끄는 요인이다. K콘텐츠 차원에서 보면 또 하나의 현대사 시리즈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추석 연휴에 ‘타짜’ 같은 도박 프랜차이즈 영화 시리즈보다 이런 영화가 더 주목받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디즈니플러스의 ‘메이드 인 코리아’도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하지만 마약 생산으로 정치비자금을 조성하던 정보부 차장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볼 수만은 없다.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관계와 설정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OTT 콘텐츠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암살자(들)’은 ‘가능한 사랑’, ‘오디세이’처럼 보편적인 가치를 다시금 환기하면서 극장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앞으로 현대사 시리즈 영화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교육되지 않은 한국 현대사를 알고자 하는 국민의 지적 욕구가 뜨거운 용암처럼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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