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비즈한국

거리 40% 줄었는데 운송비는 그대로…
북극항로 막는 ‘숨은 비용’

항해 거리 줄어도 연료·쇄빙 비용 부담…대형선 제약과 정시성·안보 리스크 등 상업화 과제 산적

[비즈한국] 기후위기로 극지방 해빙이 빨라지면서 북극항로가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차세대 해상 교역로로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전통적인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항해 거리를 약 30~40%나 줄일 수 있어 물류 효율성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중동 정세 불안이나 홍해 위기 등으로 주요 무역로의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북극항로는 글로벌 공급망을 지탱할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단순히 거리 단축만으로 상업적 경쟁력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국제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연료비 부담과 높은 쇄빙 비용, 안전 및 안보 리스크가 겹쳐 실제 운항 경제성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 컨테이너선 최초로 8월 22일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9월 11일(현지시각) 영국 펠릭스토우에 입항했다. 사진=팬스타그룹 제공

수에즈 운하 대비 비용 우위 확률 낮아, 여름만 겨우 16% 수준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가로막는 실질적인 변수로 떠오른 것은 선박 연료 문제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극지운항선박안전기준 발효와 함께 2024년 7월부터 북극 해역 내 중유(HFO)의 사용 및 적재가 전면 금지됐다. 북극의 민감한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 공해상에서 주로 쓰이던 값싼 중유 대신 황 함량이 극히 낮은 선박용 가스오일(MGO)이나 초저유황 디젤과 같은 고가의 청정연료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거리 단축으로 얻는 유류비 절감분을 상당 부분 갉아먹는다. 싱가포르 및 로테르담 벙커링 시장 기준으로 선박용 가스오일은 기존 중유보다 톤당 가격이 50% 안팎까지 비싸게 형성된다. 거리가 짧아져 소모하는 연료의 양 자체는 줄어들더라도, 주입하는 연료의 단가가 급등하기 때문에 순수 연료비 지출액에서 유의미한 절감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연료비와 함께 선사들에게 큰 부담을 안기는 요소는 러시아 당국의 쇄빙선 지원 수수료다. 북극해는 해빙기라 하더라도 유빙과 빙산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상선의 안전한 통항을 위한 쇄빙선 안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쇄빙선 이용료는 화물 종류와 선박 톤수, 내빙 등급에 따라 복합적으로 책정되는데, 이 요금이 수에즈 운하 통행료를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목포해양대학교 연구진이 계절 조건, 북극의 지정학적 리스크, 연료 가격, 결빙에 따른 연료 페널티, 쇄빙선 수수료, 보험료 등 핵심 운항비 변수를 모델링한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북극항로의 상업적 경제성은 수에즈 운하에 비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북극항로가 수에즈 운하 항로 대비 비용 우위를 가질 확률은 여름 기준으로 16.6%, 겨울 기준 1.4%에 불과했다. 이 연구는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 대비 실질적인 경제적 비교우위를 가지려면 쇄빙선 지원 수수료가 약 86% 이상 대폭 인하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원양해운(COSCO)의 실제 운항 데이터를 활용한 상하이해사대학교와 상하이교통대학교의 지난해 연구에서도 쇄빙 통행세는 전체 항해 비용의 11~13%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지출 항목으로 지목되었으며, 수수료 인하 없이는 정기선사의 취항 유인이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단 운용 국영기업 아톰플로트의 원자력 쇄빙선이 컨테이너선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아톰플로트 미디어센터

혹한 견딜 내빙선, 일반 상선보다 20% 비싸

선박 자체에 투입되는 비용 역시 진입 장벽이다. 북극해의 혹한과 빙압을 견디기 위해서는 일반 선박 대신 선체 외판을 고장력 특수강으로 두껍게 보강하고 결빙 방지 장치를 장착한 내빙선을 투입해야 한다.

극지 운항 규격을 충족하는 내빙 화물선의 신조 건조 가격은 동일 선형의 일반 원양 상선 대비 약 20% 이상 높게 책정된다. 높은 선가는 선사의 고정비 부담을 가중시킨다. 여기에 선체와 추진 계통이 얼음에 마모되면서 발생하는 유지보수 비용 역시 일반 항로보다 약 50% 더 들어간다.

화물당 운송 단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도 약점이다. 북극항로 주요 병목 구간인 산니코프 해협 등의 평균 수심이 약 13미터에 불과해 현재 아시아-유럽 노선을 오가는 1만 5000~2만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길이 20피트 규격의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통항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4000TEU급 안팎의 중소형선 위주로 선대를 꾸려야 하므로 초대형선을 앞세운 기존 노선과의 원가 경쟁에서 밀릴 우려가 있다.

물류 실무 측면에서 컨테이너선 취항을 가로막는 문제는 떨어지는 정시성이다. 북극 해역에서는 종종 잔류 유빙과 짙은 해무, 돌발 기상 이변으로 인해 평수역에서의 경제속도(18~20노트 안팎)를 유지할 수 없다. 안전을 위해 감속 운항해야 하는 구간이 빈번히 발생한다. 스케줄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노선에는 납기가 중요한 소비재나 공산품 화주들이 짐을 맡기기 어렵다. 현재 북극항로 통항 실적의 대부분이 스케줄에 덜 민감한 LNG, 원유 등 에너지 자원이나 광물 등 부정기 벌크선 화물에 편중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항해 거리를 줄일 수 있지만, 높은 쇄빙 비용과 연료비, 안전 인프라 부족 및 지정학적 위험으로 상업적 경제성에 의문이 제기된다.이미지=생성형AI

비상시 인프라 부족과 지정학적 위기까지

선박의 안전을 담보할 연안 인프라의 부족과 러시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도 북극항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수에즈 운하나 말라카 해협 주변에는 선박 파망 수리와 연료 보급, 승조원 응급 치료가 가능한 대형 항만들이 촘촘히 포진해 있다. 반면 시베리아 연안의 북극 항만들은 수심이 얕고 하역 및 수리 시설이 열악해 선체 파손이나 기관 고장 등 비상 상황 발생 시 즉각적인 피항과 응급 복구가 어렵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도 더해진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분석에 따르면 러·우 전쟁 이후 ‘군사화와 무관한 협력의 공간’을 뜻하던 ‘북극 예외주의’가 종식됐다. 러시아는 북극항로 통제권을 쥔 채 원자력 쇄빙선과 연안 민간 인프라를 군사 전략과 결합하는 ‘이중용도’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극항로는 단순한 물류 통로를 넘어 서방과 러시아 간 안보 대립의 장으로 변모했다.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로 인해 서방 대형 선사와 보험사들의 북극항로 접근이 제한되고 있으며, 실제 과거 추진되던 북국 자원 개발 사업인 야말 LNG 및 아틱 LNG-2 등 북극 프로젝트에서 주요 조선소와 기자재 업체들이 철수하는 등 실질적 피해가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안전 인프라 부재와 안보 리스크는 해상 보험료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해상 보험 시장 통계에 따르면 북극해를 통항할 때는 일반 선체보험 외에도 별도의 극지 항해 추가 보험료가 부과되는데, 이는 통상 기본 보험료 수준의 150% 이상 웃돌며 비용 부담을 가중하는 주요 변수로 확인됐다.

기후위기에 따라 얼음이 얼지 않는 기간이 늘어나고, 극지 운항 기술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인 잠재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북극항로가 실질적인 상업 무역로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운항 비용의 합리적인 개선과 함께, 연안 안전망 구축 및 친환경 연료 보급 인프라 조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민호 기자

중화학공업·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goldmino@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광펜 추가
✕ 형광펜 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