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AI(인공지능)가 제약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면, 의료 분야에서는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것을 넘어 임상적 판단에 필요한 소견을 생성하는 영역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영상에서 이상 부위를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판독 소견서 초안까지 작성하는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AI 의료 2.0’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의료 AI 기업 딥노이드는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생성형 AI 기반 흉부 엑스레이 솔루션 ‘M4CXR’의 품목허가를 받았다. 지난 3일에는 부산대학교병원과 첫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상용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부산대학교병원은 1200여 병상을 운용하는 상급종합병원이자 지역 거점 의료기관이다. 국내 대형병원에서 생성형 AI 기반 영상 판독 솔루션을 실제 임상 현장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향후 다른 의료기관의 도입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지 주목된다.
생성형 AI가 판독 과정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하면서 임상 현장의 업무 생산성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AI가 단순한 진단 보조 도구를 넘어 판독 소견을 생성하고 임상적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시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AI 오류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진단 보조 수준 넘어 소견서 작성까지
루닛과 뷰노 등 기존 1세대 의료 AI는 영상에서 병변이 의심되는 위치를 표시하고 확률값 등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했다. 의료진은 AI가 표시한 병변을 확인한 뒤 자신의 임상 경험과 환자의 상태 등을 종합해 최종 판단을 내린다. AI는 어디까지나 의사의 판단을 돕는 도구에 가까웠다.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M4CXR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LMM(대형다중모달모델)과 CoT(생각의 사슬) 기반 추론 방식을 활용해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하고 자연어 형태의 판독 소견서 초안을 생성한다. 즉 단순히 ‘이상 부위가 있다’고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상에서 발견한 특징을 의료진이 활용할 수 있는 문장 형태의 판독 결과로 정리하는 것이다.
범용 대형언어모델인 챗GPT와 비교해 병변 위치 정확도는 2배 이상 높아졌으면서 환각 비율은 0.2% 이하로 낮아져 의료계에서는 현재 생성되는 결과물을 레지던트 2~3년 차 수준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실제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학습해 고도화될 경우 정확도와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생성형 AI가 영상의학과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현재는 일반 건강검진에서 흉부 엑스레이의 약 95%가 정상 판정을 받는데, AI가 높은 정확도로 정상 영상을 선별하면 의료진이 이상 가능성이 있는 영상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김성현 휴먼영상의학센터 대표원장은 M4CXR에 대해 “생성형 AI가 95%의 정상 케이스를 고정밀로 사전 필터링해 주는 것만으로 의사의 전체 판독 업무 부하가 그만큼 감소한다”며 “소견서 초안까지 대신 작성해주기 때문에 의사는 최종 검토와 승인만 하면 된다. 비로소 돈을 주고 살 만한 AI 솔루션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생성형 AI 의료기기의 경쟁력은 단순히 병변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를 넘어, 의료진의 실제 업무를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느냐에 달린 셈이다.
“노동력은 0인데 책임은 100?” 자율 AI 시대의 역설
AI가 영상에서 병변을 찾아주는 수준이라면 의사는 최종 판단을 내리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AI가 영상을 분석하고 판독 소견까지 생성한다면 의사는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검토하고 승인하는 역할에 집중하게 된다.
미국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에 따른 책임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사협회(AMA)는 의료 AI를 보조·증강·자율 등의 개념으로 구분해 논의하면서, AI가 의료진의 판단을 대체하기보다는 인간의 감독과 책임 아래 활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하지만 AI의 역할이 커질수록 책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AI에 업무를 위임한다고 표현하는 순간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일정한 행위 주체가 되는데, 정작 책임은 여전히 의사에게 묻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 대표는 “청진기나 체온계 같은 단순한 의료기기는 의사가 업무를 위임하는 대상이 아니다”면서 “전공의나 인턴 의사처럼 행위능력이 있는 존재에게만 성립할 수 있는데 AI도 그러하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AI가 의사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AI의 판단 과정과 오류까지 의사가 모두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미국의 의료 AI 제도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수가 체계에서는 AI가 의료행위의 상당 부분을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반면, 법적 책임의 문제에서는 인간 의료인의 역할과 책임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는 자율형 AI를 활용한 망막질환 검출 의료행위에 부여된 ‘CPT 92229’의 수가를 산정하면서 의사가 이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기술, 노력, 임상적 판단 등에 해당하는 의사 업무량을 ‘0’으로 책정했다. 이 행위에서 의사가 직접 수행하는 업무를 별도의 의사 업무량으로 산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는 복잡하다. AI가 의료행위에 깊숙이 개입하더라도 현재 미국 의료법상 의료 책임 체계는 기본적으로 면허를 가진 의료인의 판단과 행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에 따라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의료인과 의료기관, AI 개발사 가운데 누가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결국 미국에서도 AI가 의료행위에 참여하는 영역은 확대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보상과 책임의 기준은 서로 다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AI가 의료행위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면서 의사의 직접적인 노동에 대한 보상은 인정되지 않는데, AI의 오류에 대한 책임까지 의사가 부담해야 한다면 책임과 보상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현 휴먼영상의학센터 대표원장도 “AI가 단독으로 판독하는 업무가 늘어날 텐데, 의료 사고가 났을 때 의사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면 ‘직접 판독하지도 않았는데 왜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라는 반발이 생길 것”이라며 “이에 대한 국가적 시스템이나 사회적 합의가 아직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권민지 법무법인 도아 파트너 변호사는 “AI가 판독 소견을 생성했더라도 의사가 최종 승인해 오진이 발생했다면 현행법상 책임은 보조자가 아닌 최종 판단을 내린 의사가 질 것”이라며 “의료행위 당시 의료수준과 진료환경, 의료행위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승인 행위를 한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로 판단될 것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