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0월 6일 오픈AI가 수학 연구 원고를 대거 공개했다. 다양한 문제에 대한 증명을 담은 700편 넘는 원고였다. 이런 발전을 바라보는 수학계는 기대와 불만이 함께 커지고 있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는 한편, 이제 사람이 직접 증명하는 것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며 상실감을 드러낸다.
물론 원고 700편이 서로 완전히 다른 문제를 푼 것도 아니고, 검증을 마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연구자가 오래 시간을 들여 하던 일을 AI가 훨씬 빠르게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천문학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딱 이틀 뒤, 이번엔 앤트로픽이 나섰다. 앤트로픽은 조금 특별한 우주 지도를 공개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앤트로픽 소속 연구원 브리스 메나르는 클로드와 함께 만든 자외선 전천 지도를 공개했다. 기존의 망원경으로 채우지 못한 빈 부분까지 채운 완벽한 지도다. 지도의 일부는 실제 관측 데이터이지만, 나머지는 그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AI가 재구성한 예측 지도다.

이 지도의 출발점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활동한 자외선 우주망원경 갈렉스다. 갈렉스는 원자외선으로 하늘 전체의 64%를 훑어봤다. 근자외선으로는 76%의 하늘을 관측했다. 원자외선 지도에서는 대략 3분의 1이 비어 있었다. 너무 밝은 에너지를 토해내는 별은 자외선에서도 눈부시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보기 까다롭다. 그 너머의 배경 우주를 보기 어렵다. 또 별들이 빽빽한 은하 원반, 은하수 방향도 관측하지 않는다. 망원경 검출기가 손상될 수 있어서 일부러 피했다.
그런데 자외선으로 보면 익숙한 밤하늘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뜨거운 별이 방출한 자외선이 주변 먼지에 산란되면서, 가시광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먼지 구름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구름의 분포와 빛의 산란을 살펴보면, 별과 성간물질의 놀라운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다.
메나르는 클로드에 지금까지 공개된 자외선 관측 자료를 모아 하나의 지도로 통합하도록 했다. 여러 AI 에이전트가 협력해 계산을 수행했다. 우선 갈렉스가 촬영한 약 3만 8000개의 관측 영역을 맞췄다. 촬영 시기와 조건이 달라지면 같은 하늘도 밝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구 상층 대기에서 나오는 빛과 태양계 먼지에 의한 산란된 빛도 보정했다. 여기에 또 다른 자외선 망원경 스위프트, 그리고 한국이 오래전 쏘아올린 우리별 4호, 과학기술위성 1호의 데이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위성 안에 있는 FIMS 장비는 해상도가 조금 투박하지만, 갈렉스가 보지 않았던 은하 원반 쪽 하늘도 훑어봤다. 이렇게 여러 탐사 장비를 통해 수집해도 아직 채우지 못한 빈 틈이 남아 있다. AI는 통계적으로 이 빈틈을 모델링하고 추적했다.

이미 다양한 연구를 통해 별, 먼지 구름, 이온화된 수소가 내는 특정한 빛과 자외선 빛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그래서 자외선으로 보지 못한 영역이더라도 이미 다른 파장에서 관측한 데이터가 있다면 자외선으로 바라본 모습도 추정할 수 있다. 사방의 모든 하늘에 대한 지도를 그리기 위해, 우리 은하 안의 거의 모든 별들을 관측한 가이아 데이터도 활용했다. 자외선 관측 데이터가 없는 영역에서 별의 온도, 색깔, 별빛이 먼지를 통과하면서 약해지는 정도를 바탕으로 자외선 밝기를 추정했다.
계산 결과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미 자외선으로 관측한 하늘의 일부를 가린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AI만으로 그렸을 때 그 결과가 실제 관측된 자외선 지도와 얼마나 비슷한지를 비교했는데, 전반적인 오차는 12% 정도였다. 여전히 오차가 크지만 꽤 훌륭하게 자외선 지도를 그렸다.
완성된 지도를 보면 젊고 뜨거운 별 주변에 먼지 구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대한 별이 폭발하면서 만든 성간 가스 거품을 따라 둥글게 이어지는 고리도 볼 수 있다. 은하 원반에서 멀리 떨어진 희미한 먼지 실타래 같은 구조도 볼 수 있다. 그동안 따로 따로 봤던 모습을 하늘의 전체에 모아놓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연결 짓고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성간 먼지 구름의 분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독특한 영역도 보였다. 고위도 지역에 원자외선에서 밝게 빛나는 구조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기존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에 새로 확인한 구조다.
그렇다면 AI가 실제 하늘을 보지도 않고 빈틈을 채워서 완성한 이 지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에서 아주 곤란하고 골치 아픈 철학적인 질문이 따라온다. 망원경으로 보지도 않고 계산으로 채운 지도를 실제 우주의 지도라고 볼 수 있는가. 이 지도에는 관측으로 뒷받침되는 예측과 법칙이 반영되어 있다. 과학에서 예측은 아주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어떤 가정에 의존하는지를 먼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물론 저자들도 실제 우주의 지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덧붙여놓았다.
AI가 실제 우주를 보지도 않고 지도를 그릴 수 있다면 이제 새로운 망원경은 필요없는 걸까? 오히려 이 지도는 다음 관측 타깃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AI는 지도를 그리면서 예측 점수를 매긴다. 자신이 틀릴 리 없다고 자신하는 영역부터 예측이 확실치 않은 영역까지 예측의 불확실성을 매길 수 있다. 따라서 예측이 확실치 않은 곳부터 우선적으로 망원경으로 관측하면서 데이터를 더 보강하는 전략을 짤 수 있다.
또 실제 관측을 했을 때, AI가 그린 지도와 많이 다른 영역이 있다면 그곳에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현상, 새로운 물리학의 해답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결국 AI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관계만 활용하지 않고 우주를 설명하는 새로운 원리까지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볼 수도 있다.
이 질문을 실제로 테스트하는 놀라운 아이디어도 있다. 일명 아인슈타인 테스트다. AI가 인간처럼 사고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지를 실험하는 것을 튜링 테스트라고 한다면, 아인슈타인 테스트는 AI가 우주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직접 과학 이론을 생성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특수상대성이론이 발표되기 전까지의 자료만을 학습시켜 당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풀도록 하는 식이다. 실제로 1900년 이전의 책과 신문만을 모아 매개변수가 약 33억 개인 언어모델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AI가 그다음 단계, 상대성이론이라는 놀라운 도약을 직접 해낼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성이론을 재발견하는 수준의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빛이 불연속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거나, 중력과 가속도가 국소적으로 보면 결국 비슷한 개념이라는 취지의 해답이 일부 나왔지만, 일관된 물리 이론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결국 인간이 ‘빛의 속도는 언제나 일정하다’는 식의 중요한 힌트를 주고 나서야 그럴 듯한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관측 데이터 아카이브를 학습시켜 거의 1억 개가 넘는 이미지를 AI가 스스로 분석했다. AI는 이틀 반 만에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은하 후보들을 골라냈고, 그중 실제 특이한 은하들이 1300개 넘게 확인됐다. 게다가 그중 800개는 지금껏 천문학자 누구도 보고한 적 없는 은하였다. 서로 충돌하면서 모양이 이상하게 일그러진 은하도 있었고, 극단적인 중력렌즈를 겪은 은하도 있었다. 실제 우주를 관측한 오래된 데이터에서 AI는 인간들이 놓친 소중한 데이터를 찾아낸 것이다.
물론 앞으로 AI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튜링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 테스트에도 성공하는 AI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 더 놀라운 상상도 해볼 수 있다. 만약 1900년 이전까지의 데이터만을 학습한 AI가 당시 물리학자들을 괴롭히던 난제의 해답을 찾던 중 상대성이론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의 해답을 제시한다면? 실제 역사에서 그 누구도 이야기한 적 없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해답을 제시하고, 그것이 상대성이론보다 우주를 더 잘 설명한다면? 그것이 정말 진리, 실제 우주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AI를 더 현명하게 다뤄야 한다. AI가 제시하는 새로운 이론과 우주의 지도가 실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눈썰미를 길러야 한다. AI를 마냥 맹신하고 기대면서 AI의 답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면, 어느날 AI가 의도치 않게 환각을 내뱉더라도 그조차 모른 채 거대한 착각에 빠져 우주를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은 우리 머리 위, 실제 우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 천문학자로 태어난다’,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UFO’ 등을 번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