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제조업 기반이 되는 중소·중견 제조 현장의 AI 기술 도입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구축 수준이 기초 단계인 데다, 투자 비용 대비 효과의 불확실성과 전문 인력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현장의 기술 수용 역량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단순한 지원 대상 기업 수 확대에서 벗어나, 현장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고도화하고 부처 간 연계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유도하는 정책 체계 개편이 요구되고 있다.

스마트공장도 4곳 중 3곳은 ‘기초 단계’
중소벤처기업부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지난해 4월 발표한 ‘1차 스마트제조혁신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제조 중소·중견기업의 제조AI 도입률은 전체의 0.1%에 그쳤다. 도입 계획이 있는 기업도 1.6%에 불과했다. 공장을 보유한 중소·중견 제조기업 16만 3273개 사 가운데 AI 도입 이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지능형(스마트)공장 도입 비율도 19.5%에 머물렀다.
스마트공장을 이미 도입한 기업으로 범위를 좁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스마트공장 도입 기업 중 제조AI를 도입했거나 도입 계획을 세운 곳은 5.2%에 그친다. 스마트공장의 다음 단계로 여겨지는 AI 전환 앞에서 대다수 기업이 멈춰 서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 중에서도 75.5%가 여전히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어, AI 도입 이전에 넘어야 할 문턱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이러한 도입 정체 현상은 기업 규모와 지역에 따른 편차와도 맞물린다. 국내 기업의 전반적인 AI 활용률은 대기업이 48.8%를 기록한 반면, 중소기업은 28.7% 수준에 머문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업의 활용률이 53.0%인 데 비해 제조업은 23.8%로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지역별로도 수도권(40.4%)과 비수도권(17.9%)의 활용 격차가 2배 이상 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통 제조업 비중이 높은 지방 중소기업일수록 디지털 기술의 실제 접목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7억 5000만 원 투자해도 효과 불확실, 전문 인력도 부족
제조 현장에서 AI 전환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장 주된 요인으로는 데이터 수집과 제어가 가능한 ‘디지털 전환(DX) 기반의 부실’이 꼽힌다. AI 시스템이 공정 데이터를 학습하고 품질 검사나 설비 보전 등을 수행하려면 안정적인 설비 인터페이스와 전산망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중소 제조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률은 19.5%에 그치고 있다.
스마트공장을 구축한 기업들 내부를 살펴보더라도 질적 고도화는 더딘 편이다. 스마트공장 도입 기업 가운데 75.5%가 ‘기초 수준’에 해당하며, 도입된 기술 역시 재고 및 자원 관리를 전산화하는 전사적 자원관리(ERP)가 76.3%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공정 실시간 제어 시스템(MES, 14.4%)이나 제어기(16.9%), 공정 자동화 로봇 및 AI 모델의 적용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상태다.
데이터 관리 방식 또한 체계화되지 못했다. 제조데이터를 수집한다고 밝힌 기업 상당수가 작업자가 생산량이나 불량 내역을 작업 일지에 직접 적어 넣는 수기 입력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단편적 데이터는 시간대별 연속성이나 표준 규격이 결여되어 고도화된 머신러닝 모델에 곧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설비에 부착된 구형 인터페이스를 교체하고 통신망을 구축하는 등 기초 데이터 인프라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AI 기술 적용에 구조적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비용 부담과 투자 대비 효과(ROI)의 불확실성 역시 주요한 도입 장애 요인으로 지적된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기업의 스마트공장 평균 구축 비용은 7억 5000만 원(전체 평균 11억 3000만 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조달 자금의 절반 이상(56.9%)이 자체 자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초기 투자 자체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중소벤처기업부 제조혁신과 관계자 역시 현장 기업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부담으로 “설비 구축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대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효용과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불명확하다는 점”을 꼽았다.
인력 부족은 비용 문제 못지않게 도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발표한 실태조사에서도 중견기업들이 AI 도입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애로는 ‘전문 인력 부족(41.2%)’이었다. 기술·인프라 부족(20.6%), 초기 투자 비용(11.8%)보다도 앞선 응답이다. 중견기업들이 AI 도입·확산을 위해 필요하다고 꼽은 정책 지원 중에도 ‘AI 전문 인력 양성(21.3%)’이 상위 항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중기부 실태조사가 보여주는 현장의 인력 구조도 이를 뒷받침한다. 기업당 평균 종사자 14.7명 가운데 스마트공장 관련 업무를 맡는 인원은 5.4명에 그친다. 전담 부서나 인력을 갖춘 기업은 전체의 19.5%에 불과하고, 관련 교육을 위한 별도 예산을 마련한 곳은 6.6%에 머문다. 인력 확충을 계획하고 있다는 기업도 14.5%뿐인데, 그마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절반 가까운 기업이 비용 부담(47.1%)을 꼽았다.
‘몇 곳에 보급했나’보다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나’ 따져야
전문가들은 전통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특성을 감안할 때, 제조 AX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단계적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 보급 건수 위주의 정량적 목표 관리를 지양하고, 불량률 감소, 납기 단축, 원가 절감 등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 지표(KPI) 중심으로 정책 구조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재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정부가 보급 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성은 맞지만, 이제는 스마트 공장 개수나 자동화 설비 도입률 같은 단순 수치에 매달려선 안 된다”며 “스마트공장화의 핵심은 현장의 체질 개선인 만큼, 공장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는 질적 고도화 지표로 성과를 측정해야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