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새로운 감염병에 대응할 백신·치료제를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느냐가 국가 감염병 연구개발(R&D)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연구 성과의 신속한 실용화를 추진하는 내용을 담은 제4차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기술개발 추진전략안을 처음 공개했다. 백신 후보와 연구 데이터를 평시에 축적하고, AI 설계와 실험 검증을 연결해 위기 발생 시 개발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구상이다.
10일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제13회 감염병연구포럼에서 처음 소개된 4차 추진전략안은 향후 국가 감염병 R&D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장기(2027~2031년) 계획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전략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우선순위 감염병 백신 개발 현황과 한국형 AI 기반 백신개발엔진 ‘K-AI PPX’ 구축 계획도 공유했다.
정영기 국립감염병연구소장 직무대리는 기존 전략과 가장 큰 차이점을 묻는 비즈한국의 질의에 “신속 실용화를 위해 AI를 활용한 감염병 R&D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AI로 항원 설계하고 실험으로 검증…백신 개발 과정 연결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할 사업으로 한국형 AI 기반 백신개발엔진 ‘K-AI PPX’ 구축이 추진된다. PPX는 ‘Pandemic Preparedness Engine for Disease X’의 약자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감염병에 대비하는 개발 체계를 뜻한다. 기관·국가별로 분산된 데이터와 연구 단계를 연결해 질병 모니터링과 병원체 발견부터 비임상·임상 개발, 규제 승인까지 지원하는 AI 기반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장기 구상이다.
출발점은 AI를 활용한 항원 설계와 실험 검증을 연결하는 것이다. 2027~2029년 추진할 시범사업에서는 바이러스와 표적을 발굴하고 AI로 항원을 설계한 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시험관 내 실험으로 가능성을 평가한다. 검증 결과는 다시 AI 학습과 항원 재설계에 반영한다. 이러한 반복 과정을 통해 후보물질 개발의 정확성과 효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유경 국립보건연구원 백신연구개발과장은 CEPI(전염병대비혁신연합)와 협력해 바이러스 분석·발굴부터 항원 설계, 초기 검증과 재설계로 이어지는 3개년 AI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고도화한 AI 에이전트를 한국형 백신개발엔진과 CEPI의 글로벌 팬데믹 대응 플랫폼에 탑재하는 것이 목표다.
이 과장은 “AI 에이전트가 국내외 플랫폼에 탑재되면 글로벌 팬데믹 대응 플랫폼의 풍부한 자원과 데이터를 상호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신속 대응 역량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축 범위는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초기에는 항원 발굴과 설계·검증 체계에 집중하고, 이후 바이러스 모니터링과 임상시험 예측, 백신 제형 개발 및 규제 연계 등으로 기능을 넓혀간다는 방향이다. 개별 연구에 AI를 적용하는 데서 나아가 백신 개발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가 구축을 총괄하고 내부 태스크포스와 외부 연구 컨소시엄이 협력한다. 이 과장은 서울대와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바이오엑스 등이 참여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 라이브러리와 연구 데이터, 고성능 컴퓨팅 자원 등을 함께 활용해 AI 설계와 실험실 검증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국제협력을 위한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지난 7월 CEPI와 워크숍을 열어 한국형 PPX 구축 전략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오는 12월 CEPI PPX 연계 협력을 위한 추진계획 제안서를 제출하고, 국가전략백신개발지원사업 내 2027년 신규과제로 관련 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다.

기존 AI 연구를 신속 실용화로…기관 간 협력이 관건
AI 활용과 신속개발이라는 방향 자체가 4차 전략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제3차 추진전략의 2025년도 시행계획에도 AI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치료제 개발과 백신·치료제 신속개발을 위한 다부처 협력이 담겨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개별 연구에서 축적한 기술과 데이터를 연결해 실제 개발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기존 성과와 한계도 이 지점에서 맞물린다. 3차 전략 중간점검은 국산 코로나19 백신 허가와 연구 인프라 구축 등을 성과로 제시하면서도, 실용화까지 이어진 성과가 코로나19 백신·치료제·방역물품에 편중된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부처 간 연구 성과를 후속 개발로 연결하고 민간의 상용화까지 지원하는 체계도 보완 과제로 꼽았다.
패널토의 좌장을 맡은 김남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백신 개발은 연구 분야별로 상호 유기적인 연결이 부족하고 단절된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제4차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기술개발 추진전략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상호 유기적인 구조 속에서 잘 모아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교수는 “다만 계획안을 마련한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향후 현장에서 이러한 유기적 연계가 현실적으로 더욱 잘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