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정부는 물론 국책 연구기관과 한국은행까지 나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3%대로 줄줄이 상향 조정하고 있다. 심지어 외국계 투자은행(IB) 중 성장률을 4%대까지 높여 잡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올라가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 업체들이 호황을 맞은 덕분이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세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내년도 예산규모를 올해보다 무려 12.8%나 늘린 820조 9000억 원으로 잡았고, 내년에 162조 3000억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도 만들기로 했다.

반도체 호황에 성장률 전망치도 오르고 정부의 씀씀이도 커지고 있지만 이러한 경제 호황의 온기가 고용시장에는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들어 직장 휴업이나 폐업, 조기퇴직이나 정리해고, 사업부진 등으로 원치 않게 일자리를 떠난 근로자의 수가 40만 명을 넘어서며 코로나19로 고용시장이 타격을 입었던 2021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3.3%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2.1%에서 2.9%로 높여 잡았다. 앞서 재정경제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3.0%로 올렸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3.2%로 높였다.
시장에서는 올해 한국 경제가 정부나 한은 전망치보다 더 높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와 ING파이낸셜마켓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4.0%로 제시했다. JP모건과 NAB/BNZ는 각각 3.8%, 씨티와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코리안리, 무디스는 각각 3.7%를 예상했다. iM증권은 3.6%, ANZ와 크레디아그리콜, DBS, 데카방크, 도이체방크는 각각 3.5%로 전망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이러한 기대감이 고용시장에는 전혀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을 떠나는 ‘비자발적 실업’이 코로나19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고용 부진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비자발적 퇴직자는 40만 577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만 7318명(6.7%) 증가한 수치다. 또 올해 상반기 퇴직자 수(94만 2052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1%나 됐다. 올해 퇴직자 10명 중 4명 이상이 자신의 뜻과 달리 직장에서 밀려난 것이다.
비자발적 실업은 ‘직장의 휴업이나 폐업’, ‘명예·조기퇴직이나 정리해고’, ‘임시 또는 계절적 일의 완료’, ‘일거리 부재나 사업 부진’ 등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경우를 뜻한다. 육아나 가사, 정년퇴직, 근무시간·보수 불만족 등은 비자발적 실업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자발적 실업은 코로나19 여파가 남아 있던 2021년 상반기에 60만 289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상반기 37만 9744명으로 급락했다. 2023년 상반기에 34만 369명으로 더욱 떨어졌으나 이후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경기가 다소 부진해지면서 2024년 상반기 37만 639명, 2025년 상반기 37만 8460명으로 37만 명대로 다시 올라섰다.
그런데 올해는 반도체 호황에 역대급 경제 성장과 세수 증가 등이 예상됨에도 비자발적 실업자 수는 40만 명을 넘어서며 오히려 악화한 것이다. 이는 반도체 산업이 사람보다는 대규모 설비와 자동화 공정을 요구하는 자본집약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고용 유발 효과가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반도체의 취업유발계수는 생산 10억 원당 2.4명으로 전체 산업 평균(8.2명)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비자발적 실업뿐 아니라 초단시간 근로자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의 질마저 나빠졌다. 올 상반기 일주일에 1~17시간 일한 근로자 수는 전년 동기(255만 8000명)에 비해 5만 5000명 늘어난 261만 3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나온 1980년 이래 최대 규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