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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제지·깨끗한나라, 백판지 가격 10% 인상 '우연이라기엔…'

일주일 간격으로 인상폭·방식 '판박이'…지방선거 앞두고 생활물가에 영향 예상

[비즈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교과서·도서용 인쇄용지 가격 담합 혐의로 대형 제지사들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한솔제지213500와 깨끗한나라004540가 백판지 가격을 동시에 10% 인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조사 대상과 맞물린 시점에 유사한 가격 조정이 이어지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시기가 지나치게 공교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즈한국 취재에 따르면 한솔제지는 1월 26일 출고분부터, 깨끗한나라는 2월 1일부터 백판지 제품의 기존 할인율을 10% 축소하는 내용의 공문을 거래처에 발송했다. 형식상 ‘운영가격 조정’ 또는 ‘할인율 축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급 단가 인상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

한솔제지와 깨끗한나라가 각각 1월 말과 2월 초 백판지 할인율을 10% 축소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가격 인상에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한솔제지와 깨끗한나라가 각각 1월 말과 2월 초 백판지 할인율을 10% 축소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가격 인상에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형식은 할인율 축소, 사실상 가격 인상

한솔제지는 ‘백판지 제품류 운영가격 조정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에서 국내외 경기 침체, 달러 강세, 원·부자재 및 에너지 비용 상승 등을 이유로 들며 기존 운영 할인율에서 10%를 축소한다고 밝혔다. 적용 시점은 1월 26일 출고분부터다.

깨끗한나라도 유사한 내용을 거래처에 전달했다. ‘백판지류 가격 조정의 건’이라는 공문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에너지·환경·안전·품질 기준 강화를 위한 투자 부담을 언급하며 D/C율 10% 축소를 공지했다. 시행일자는 2월 1일이다.

두 회사 모두 “불가피한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할인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동일한 인상 폭(10%)을 제시했다는 점, 불과 며칠 간격으로 조치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양사의 백판지 가격 인상은 공정위 심사 국면과 맞물린 시점에 주요 업체들이 유사한 방식과 인상 폭으로 가격 조정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공교롭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 사가 거래처에 전달한 공문.
양사의 백판지 가격 인상은 공정위 심사 국면과 맞물린 시점에 주요 업체들이 유사한 방식과 인상 폭으로 가격 조정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공교롭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 사가 거래처에 전달한 공문.

이번 가격 조정은 공정위가 한솔제지, 무림페이퍼009200, 무림SP001810, 무림P&P, 한국제지002300, 홍원제지 등 6개 제지사의 인쇄용지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해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직후 이뤄졌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가격과 인상률을 담합한 혐의를 적용해 제재를 검토 중이다. 이르면 상반기에 전원회의를 열어 제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공정위 조사에서는 가격 인상 시기와 인상 폭을 맞추고, 담합 의심을 피하기 위해 공문 발송 시점을 달리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백판지 시장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연달아 가격을 조정하자, 시장에서는 “과거 인쇄용지 담합 사례가 겹쳐 보인다”는 반응이 나온다.

물론 현재까지 백판지 가격 조정 자체가 공정위 조사 대상이거나 불법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원가 상승을 이유로 각 사가 개별적으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고, 할인 정책 변경 역시 기업의 경영 판단 영역에 속한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교육·출판 관련 종이 시장의 담합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주요 업체들이 거의 같은 시점에 동일한 폭으로 ‘할인율 축소’라는 우회적 방식을 택한 것은 시장 감시 차원에서 충분히 문제 제기가 가능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솔제지 측은 “대내외 경영환경 등을 고려하여 자체적으로 판단했을뿐으로 타사와는 관계가 전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포장재의 종착지’ 백판지, 물가 전반에 구조적 영향

한솔제지와 깨끗한나라는 백판지 시장에서 점유율 47%, 20%(2023년 기준)로 업계 1, 2위를 차지한다. 백판지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되는 품목은 아니지만, 식품·생활용품·의약품·화장품·가전 등 대부분의 소비재 포장에 쓰이는 핵심 중간재다. 이 때문에 백판지 가격 변동은 제조와 유통 전반의 비용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서 백판지를 ‘보이지 않는 물가 전파 경로’로 보는 이유다.

백판지(사진)는 식품·생활용품·의약품 등 대부분의 소비재 포장에 쓰이는 핵심 중간재로, 가격 상승이 제조·유통 비용을 거쳐 생활물가 전반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갖는다. 사진=깨끗한나라 홈페이지
백판지(사진)는 식품·생활용품·의약품 등 대부분의 소비재 포장에 쓰이는 핵심 중간재로, 가격 상승이 제조·유통 비용을 거쳐 생활물가 전반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갖는다. 사진=깨끗한나라 홈페이지

가격 인상 영향은 특히 대량 소비재 분야에서 먼저 나타난다. 과자·라면·즉석식품·세제·위생용품 등은 마진이 낮은 구조인 만큼, 포장재 단가 상승이 누적되면 제조사는 가격 인상, 용량 조정, 판촉 축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포장 원가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비용 상승이 반복되면 결국 소비자가격 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소 제조업체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더 크다. 원자재 가격 협상력이 낮은 데다 포장 단가 상승분을 다른 비용으로 흡수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결국 납품가 인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 유통 채널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제품 선택지 축소와 가격 경직성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소비자물가지수에 즉각 반영되기보다는, 일정 시차를 두고 생활물가 전반에 분산 반영되는 특성이 있다. 단기 체감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용한 물가 상승 압력’으로 누적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이 수요가 커지는 데다 생활물가 민감도까지 높아지는 국면에서 백판지 가격 인상은 정책 당국에도 적지 않은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쇄업계 관계자는 “백판지는 한 번 오르면 잘 내려오지 않는 구조”라며 “인쇄용지에 이어 백판지까지 가격 부담이 누적되면, 소비자는 어느 순간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라간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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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성창 기자

기업이 말하는 성장의 언어와 그 뒤에 놓인 현실의 간극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의 변화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투자와 고용, 기술과 규제, 혁신과 책임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기업의 진짜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 균열을 놓치지 않고, 복잡한 산업 이슈를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맥락으로 풀어내는 일을 해왔습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장의 소음 속에서도 끝까지 물어야 할 질문을 붙들고, 비즈한국 산업팀만의 날카롭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산업의 현재와 다음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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