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제헌절이 18년만에 공휴일로 돌아왔다. 빨간 날의 설렘 속에서 하루를 쉬어가다 헌법이 나의 경제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시민의 경제 활동은 헌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은 단순히 국가의 통치 구조만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과 기업이 시장에서 거래하고, 재산을 축적하며, 노동의 대가를 받는 일련의 경제 활동 역시 헌법적 질서 위에서 작동한다. 경제의 권리와 그 한계 또한 헌법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매년 제헌절이 기념하는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헌법에는 과연 어떤 경제 조항이 담겨있었을까? 당시의 헌법을 들여다보면 현대 사회의 시점으로 봐도 매우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조항들이 대거 등장한다. 해방 직후라는 특수성 속에서 당대 전 세계적으로 거세게 불었던 복지국가 이념과 사회주의 사조의 영향이 건국 정국에 강하게 미쳤기 때문이다.

사회정의를 위한 재산권의 제한
1948년 대한민국 제헌 의원들은 개인의 무제한적인 사유재산 추구가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했다. 경제적 독점과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작성한 헌법 설계도에는 국가의 개입과 조정 권한이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이러한 이념은 기본 원칙에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제15조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 사용 또는 제한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상당한 보상을 지급함으로써 행한다.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기본 원칙 및 재산권의 사회적 제한에 대한 언급인 제84조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조항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두지 않았다. 대신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하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 이라는 한계를 먼저 선언한 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만 보장된다’고 규정했다.
즉, 공동체 전체의 최소한의 생존권과 균등한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사유재산이나 경제적 자유는 헌법적으로 제한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농지개혁의 초석, 제86조의 농지 분배
당시 대한민국 인구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었으나, 지주-소작인 관계 때문에 스스로의 땅을 가지지 못한 채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헌 국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농지개혁의 헌법적 기반이 된 제86조가 탄생하게 된다.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이 조항은 지주제라는 고질적인 소작제(지주-소작인 관계)를 완전히 철폐하고, 땅을 가는 농민이 땅을 직접 소유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국가 최고 규범으로 확립하는 역사적 계기가 됐다.
이 헌법 조항에 따라 1949년 구체적인 실행 법률인 ‘농지개혁법’이 제정됐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소수의 대지주에게 집중되어 있던 농지들은 ‘유상매수, 유상분배’ 방식을 통해 실제 경작자들에게 분배되기 시작했다. 대지주 계급이 역사의 뒤안길로 소멸하는 대신, 소작농들이 자기 땅을 가진 자영농으로 거듭났다.
노동자와 기업의 상생을 꿈꿨던 파격, ‘이익균점권’
제헌헌법에서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가장 급진적이고 놀라운 조항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명시한 제18조 제2항일 것이다.
제18조 ②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이 조항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을 주주나 경영진이 독점하는 것을 막고,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 역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음을 명시한 진보적인 조항이다. 자본과 노동의 극단적 대립을 지양하고 상생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당시 제헌의원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대목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선언적 조항에 그치고 말았다. 정작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집행할 구체적인 하위 법률이 자본가들의 반발, 건국 초기의 사회적 혼란, 그리고 뒤이어 터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끝내 제정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 조항은 사문화의 길을 걸었고, 전후 경제 재건 과정에서 사기업의 자율성과 성장을 우선하는 기조에 밀려 1962년 제5차 개헌 때 완전히 삭제됐다.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국가 통제
제헌국회는 자본가 개인에게만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인프라를 맡길 수 없다고 보았다. 이에 제헌헌법은 주요 자원과 핵심 산업을 철저하게 국가의 소유와 통제 하에 묶어두는 방식을 취했다.
제85조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하거나 또는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제87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까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사영을 특허하거나 또는 그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둔다.
제88조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절한 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통제, 관리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이 3개의 조항은 당시 국가가 수행했던 통제경제 정책의 법적 무기들이었다. 자연 자원뿐만 아니라 교통, 통신, 은행, 보험, 전기, 가스 등 거의 모든 공공 인프라와 기업들이 국공영 원칙 하에 관리되었고, 국외 무역 또한 국가의 독점적 통제 하에 놓였다. 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사기업을 국유화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조항(제88조)도 마련해 두었다.
이러한 전방위적 국유화 정책은 해방 직후 민간 자본이 말라버린 상태에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최소한의 경제 뼈대를 갖추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 기업과 토지들을 미군정으로부터 넘겨받아 국유화하고, 이를 민간에 매각하는 귀속재산 처리 과정에서 오늘날 한국 대기업 재벌 체제의 초기 원형이 형성되기도 했다.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헌법의 가치를 돌아볼 기회도 늘어났다. 오늘날 당연하게 누리는 시장경제와 사유재산 보장, 복지국가의 맥락에는, 건국 초기 빈곤과 대혼란 속에서 ‘모든 국민의 균등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치열하게 대안을 찾고자 했던 선대들의 경제적 고민과 역사적 실험이 자리 잡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