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삼성전자 완제품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원들의 반발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으로 향한다. 지난 6월 검은 옷 출근 캠페인에서 시작해 7월 수원사업장, 8월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 집회로 이어진 단체행동이 이번에는 그룹 총수의 자택 인근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는 인공지능(AI) 전환에 따른 인력 효율화에 반대하는 광고까지 내걸었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요구지만 배경에는 DX 부문 직원들 사이에서 커진 불만이 자리한다. 올해 노사 임금협상에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한 특별경영성과급이 신설된 반면, DX 부문 등에는 1인당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가 지급되면서 보상 격차 논란이 불거졌다. DX 직원 중심의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은 직원 1인당 자사주 1000주와 전사 공통 성과재원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동행노조는 9월 18일 발대식을 열고 서울 용산구 이 회장 자택 인근에서 집회와 1인 시위를 시작할 계획이다. 노조는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집회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날에는 1인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도 밝혔다.
노조의 요구사항은 크게 세 가지다. DX 부문 직원 1인당 자사주 1000주 지급, 전사 성과의 일정 비율을 재원으로 한 공통 성과재원 마련·배분, 전사 동일 기본급 인상률 적용이다. 동행노조는 과거 DX 부문의 높은 수익이 반도체 등 다른 사업에 재투자돼 삼성전자 전체 경쟁력을 높였던 만큼 현재 사업부별 실적만으로 보상을 나누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8월 서초사옥 집회에서도 노조는 “단순히 DS만큼 달라는 것이 아니다”며 회사가 객관적인 기여도 평가 기준을 제시하면 검증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1000주 요구 단순 추산하면 13조 원 안팎…실제 받은 주식은 22주
자사주 1000주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상당한 규모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DX 부문과 CSS사업팀 직원 4만 9345명에게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지급했다. 노사가 5월 합의한 1인당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 지급을 위해 회사가 처분한 자기주식은 108만 3434주였다. 직원 한 명당 지급 수량은 22.65주로 정해졌으며 22주는 주식, 소수점 0.65주는 현금으로 지급됐다.
다만 이 4만 9345명을 동행노조의 1000주 요구 대상인 DX 전체 인원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동행노조에 따르면 지난 6월 18일 당시 DX 부문 전체 인원은 5만 1717명이었다. 이 인원에게 1000주씩 지급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필요한 주식은 5171만 7000주다. 삼성전자 9월 4일 종가 25만 5500원을 적용하면 약 13조 2137억 원 규모다. 직원 수가 이후 변동됐을 수 있고 노조가 구체적인 전체 요구액을 제시한 것은 아니어서 어디까지나 단순 추산치다.
실제 회사가 지난 7월 지급한 주식 수와 비교하면 차이는 크다. 직원 1인당 22주가 지급됐고, 소수점 0.65주는 현금으로 정산됐다. 7월 6일 종가 31만 8000원을 기준으로 22주의 평가액은 699만 6000원이었다. 여기에 단수주 대신 지급된 현금 17만 3920원을 합치면 약 717만 원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1000주가 실제 지급된 22주보다 훨씬 많은 이유는 올해 한 해의 DX 실적만을 기준으로 요구액을 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조는 과거 DX 부문이 호황기에 벌어들인 이익이 추가 성과배분보다는 반도체 등 전사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투입됐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대한 과거 기여의 보상 규모를 1000주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회사 안팎에서는 10조 원을 훌쩍 넘는 자사주 지급 요구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5월 정부 중재를 거쳐 올해 임금협상을 이미 타결했다. 이후 동행노조 등이 임금협상 효력을 문제 삼아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합의가 끝난 사안을 다시 요구하는 데 절차적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DS에는 사업성과 10.5% 특별성과급…DX에는 600만 원 자사주
DX 직원들의 불만이 본격적으로 커진 계기는 지난 5월 임금협상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DS 부문에 대해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마련된 보상이다. 사업성과를 어떤 지표로 산정할지는 노사 간 별도 협의를 거쳐 결정하는 구조다.
당시 언론에서는 DS 부문 영업이익을 사업성과 지표로 가정해 예상 보수를 계산하기도 했다. 연봉 1억 원인 메모리사업부 직원이 특별경영성과급과 OPI를 합해 최대 약 6억 원, 시스템LSI·파운드리 직원이 약 2억 원 수준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향후 실적과 사업성과 산정방식을 가정한 예상금액으로 실제 지급액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DX 부문에는 같은 특별경영성과급 체계가 적용되지 않았다. 대신 DX와 CSS사업팀 직원에게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상승하면서 7월 6일 종가 기준 22주의 평가액과 단수주 대신 지급된 현금을 합친 1인당 가치는 약 717만 원이었다.
이 차이는 노조 지형까지 바꿨다. 동행노조에 따르면 6월 18일 기준 가입자는 2만 6117명으로 당시 DX 부문 직원 5만 1717명의 절반을 넘어섰다. DX 직원들은 서울 강동과 구미, 수원 등 사업장에서 검은 옷이나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보상 격차에 항의했다.
단체행동의 강도도 점차 높아졌다. 7월 16일 수원사업장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7000명이 참여했다. 당시 노조는 처음으로 1인당 자사주 1000주 수준의 보상안과 공통 성과재원 마련 등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한 달여 뒤인 8월 21일에는 장소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으로 옮겼다. 경찰 추산 2000여 명, 주최 측 추산 4500여 명이 참석했다. 노조는 DX 부문의 수익성 악화가 직원의 책임이 아니라 경영진의 경영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며 경영진과 직접적인 소통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다시 한 단계 나아가 이재용 회장 자택 인근에서 장기 집회를 예고했다. 회사 사업장이나 사옥을 대상으로 했던 단체행동의 대상이 그룹 총수 개인으로 옮겨간 셈이다.
뉴욕 타임스스퀘어까지 간 DX노조…성과급 아닌 ‘인력 효율화’ 문제도 제기
노조의 문제 제기는 보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행노조는 5일 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15초 분량의 광고를 내보냈다. 영상에는 ‘위대한 제품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GREAT PRODUCTS BEGIN WITH PEOPLE)’, ‘우리도 아직 여기 있습니다(WE ARE STILL HERE)’라는 내용이 한국어와 영어로 담겼다. 영상은 이날 0시부터 매시 35분마다 송출됐다.
뉴욕 광고가 직접 문제 삼은 것은 성과급보다는 회사의 인공지능 전환과 인력 운영이다. 동행노조는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전환을 추진하며 업무를 세분화하고 효율성을 측정해 필요한 인력을 산정하고 있다면서, 인공지능 전환이 인력 감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행노조는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에서 불거진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서도 동행노조 조합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따라서 뉴욕 광고를 자사주 1000주 요구를 해외에 알리기 위한 광고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보상 격차로 시작된 노사 갈등이 인력 효율화와 조직 운영, 노조원의 개인정보 문제로까지 넓어진 것으로 보는 편이 가깝다.
삼성전자 DX와 DS의 실적 환경이 크게 달라진 것도 갈등의 배경이다. 삼성전자 1분기 사업보고서에서 DX 부문 영업이익은 2조 9677억 원, DS 부문 영업이익은 53조 6633억 원으로 집계됐다. 각 사업부문 수치에는 내부거래가 포함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올해 회사 이익이 반도체 부문에 집중된 흐름은 뚜렷하다.
회사가 사업부별 성과를 보상에 강하게 반영할수록 DS와 DX 직원이 받아들이는 온도 차도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노사는 올해 총파업을 앞두고 임금협상을 타결했지만, 합의 이후 오히려 사업부 간 보상 형평성 논란이 본격화했다.
동행노조가 내놓은 1000주 요구가 회사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단순 계산으로도 10조 원을 훌쩍 넘는 규모인 데다 올해 임금협상은 이미 타결됐다. 반면 동행노조는 특정 사업부의 한 해 실적만을 기준으로 성과를 배분해서는 안 된다며 전사 공통재원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6월 검은 옷 출근에서 시작된 DX 직원들의 반발은 수원사업장과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거쳐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이재용 회장 자택 인근으로까지 번졌다. 이 회장 자택 앞 장기 집회가 시작될 예정인 18일까지 회사와 노조가 별도의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삼성전자 내부의 보상 갈등은 석 달을 넘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