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를 기반으로 100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만든다고 밝히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이미 반도체발 초과 세수를 바탕으로 800조 원이 넘는 슈퍼 예산을 예고한 상황에서 국회 통제가 느슨한 기금을 추가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래대응기금을 운용할 기획예산처와 별개로 재정경제부는 초과 세수를 투입하는 전략형 국부펀드 신설에 나선 상태다.

이재명 정부가 재정과 세제 균형을 맞춰오던 기획재정부를, 예산을 운용하는 기획예산처와 경제·세제 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로 나누자마자 확장 재정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해 늘렸던 씀씀이를 줄이며 국가부채 관리에 나선 반면 한국만 유일하게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출을 더욱 늘리면서 빚을 키우고 있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크게 늘어날 것이 확실시되는 초과 세수를 기반으로 미래대응기금을 만들어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대응기금 규모는 현재 반도체 호황으로 볼 때 1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예산이 아닌 기금에 초과 세수를 사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다. 실기할 경우 국제적인 대전환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과 세수로 만들어질 거액의 나랏돈을 국회 통제가 덜한 기금 형태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미래대응기금이 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예산이 아닌 기금의 경우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을 20~30% 범위에서 국회에 변경안을 제출하지 않고도 정부가 바꿀 수 있다. 이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 미래 세대에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세계 주요국들은 확장 재정이 불가피했던 코로나19 시기 이후 부채를 줄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OECD에 따르면 38개 회원국 중 재정 통계 비교가 가능한 32개 회원국의 코로나19 확산기(2020년)와 코로나19 이후(2024년) 국가부채 추이를 조사한 결과, 한국 등 7개 회원국만 부채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스의 경우 2020년에 비해 2024년에 국가부채가 무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55.1%포인트 감소해 가장 많이 줄었고, 포르투갈은 같은 기간 39.2%포인트, 일본은 21.7%포인트, 이탈리아는 19.1%포인트 감소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같은 기간 18.4%포인트 줄었고, 스페인은 17.5%포인트, 아일랜드는 15.9%포인트 감소했다.
눈에 띄는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재정 위기에 몰렸던 이른바 ‘PIGS 4개국’인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 모두 부채 감소 국가, 그것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또 복지 국가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15.9%포인트)와 스웨덴(-7.2%포인트), 노르웨이(-3.3%포인트) 등도 코로나19가 끝난 뒤 허리띠를 졸라맨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 국가부채가 2020년에 비해 2024년에 5.0%포인트 늘어나 부채가 증가한 7개국 중 5번째로 증가 폭이 컸다. 칠레가 같은 기간 부채가 9.3%포인트 증가해 가장 많이 늘어났고, 핀란드가 7.1%포인트, 뉴질랜드가 7.0%포인트, 체코가 6.5%포인트 늘어나 한국보다 높았다. 한국 다음으로는 에스토니아가 4.3%포인트, 룩셈부르크가 1.8%포인트 증가했다.
문제는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부채가 늘어난 국가들 중 총지출이 증가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20년 총지출에 비해 2021~2024년 평균 총지출이 GDP 대비 0.4%포인트 늘어난 반면 칠레(-0.5%포인트)와 핀란드(-1.1%포인트), 뉴질랜드(-0.3%포인트), 체코(-2.6%포인트), 에스토니아(-2.4%포인트), 룩셈부르크(-2.1%포인트) 등은 총지출이 감소했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부채 증가는 허리띠를 졸라맸음에도 수입이 적었던 탓이었다. 이는 한국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출을 늘리면서 부채 규모를 키우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