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무더운 여름, 솥에서 막 쪄낸 뜨끈뜨끈한 옥수수 맛이 그리워 마트로 향한다. 매대에 가득 놓인 옥수수 가운데 어떤 게 알이 꽉 찼을까. 껍질을 까보지 않고 알 방법은 없을까. 새 책 ‘풀의 월든’ 저자 정주혜는 수염이 많은 옥수수를 고르면 된다고 일러준다. 옥수수수염은 실은 옥수수의 암술대로 수염 한 올이 내부의 씨방 하나와 일대일로 연결된다. 이 씨방이 자라면 우리가 먹는 옥수수 한 알이 된다.
‘풀의 월든’은 이처럼 익숙하지만 잘 몰랐던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풀들의 정교하고 치밀한 생존전략에 놀라게 된다.

이를테면 옥수수는 줄기에 넓은 잎들이 어긋나게 달리고, 잎들 맨 아래쪽에 암꽃이 자리한다. 잎들이 마치 지붕처럼 암꽃을 덮는데, 맨 꼭대기에 있는 자기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에 수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잎 표면에는 잔털이 무성해서 다른 꽃의 꽃가루가 날아왔을 때 잡아둔다. 포집된 꽃가루는 잎의 홈을 따라 미끄러지며 지그재그로 이어진 아래쪽 잎들로 전달된다. 마침내 마지막 잎에 도착한 꽃가루는 바람이 불 때 잎의 바로 아래쪽에 있는 옥수수자루의 수염에 정확히 떨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어느 날 밥을 먹으러 간 식당 밖 텃밭에서 옥수수 줄기의 ‘혹’을 발견한다. 여름 내내 관찰한 결과, 혹이 옥수수 열매가 잘 자라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옥수수의 넓고 긴 잎들은 꽃가루받이에는 도움을 주지만 정작 옥수수 열매가 자랄 때는 햇빛을 가린다. 이때 줄기 마디를 단단히 감싼 잎집 조직이 혹처럼 부풀고, 그 힘에 밀려 옥수수자루도 줄기 밖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이로써 잎의 그늘을 벗어나 햇빛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된다.

정주혜 지음, 이케이북
주변에서 흔히 보는 민들레, 토끼풀의 꾀도 보통이 아니다. 민들레는 꽃을 한 번에 피우지 않고 3일에 걸쳐 순차적으로 피운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을 택했을까. 우리가 보통 ‘한 송이’라고 부르는 민들레는 200~300개의 낱꽃이 모인 집합꽃이다. 노란 꽃잎 한 장에 암술, 수술, 꽃잎, 씨방이 모두 있다. 만약 300개나 되는 꽃을 한 번에 피운다면 곤충은 한자리에서 배불리 먹고 가버릴 것이다. 곤충이 들르지 않은 꽃은 꽃가루받이할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 그래서 민들레는 매일 새로운 꽃을 피워내고, 둘째 날은 첫째 날 핀 꽃보다 더 진한 색의 꽃을 피워올린다.
꽃 한 송이에 낱꽃 50개 정도가 모인 토끼풀도 민들레처럼 시간차 개화 전략을 쓴다. 토끼풀은 척박한 땅에서 번성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비밀은 ‘콩’에 있다. 놀랍게도 토끼풀은 ‘콩과’ 식물이다. 콩과 식물의 땅속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사는데, 이 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암모늄 형태의 비료로 바꿔 공급한다. 식물은 그 대가로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당분을 박테리아와 나눠먹는다. 땅속에 ‘비료 공장’을 가졌기에 토끼풀은 어느 땅에서든 잘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끼풀의 ‘콩’은 어디에 있을까? 꽃가루받이가 끝나고 갈색으로 바짝 마른 꽃 안을 열어보면 작고 귀여운 콩꼬투리가 나온다. 콩꼬투리 하나에 보통 콩 서너 개가 들어 있다. ‘초미니’지만 엄연히 콩이다.

책은 이 밖에도 여러 식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빗방울이 닿을 때의 반동을 이용해 씨앗을 이동시키는 쇠비름, 씨 대신 복제품 ‘주아’를 만들어 번식하는 ‘불임’ 참나리, 꿀보다 훨씬 효율적인 가짜 수술로 곤충을 유인하는 닭의장풀, 수술대 아래 깊숙한 곳에 꿀을 담아 곤충의 수분을 유도하는 호박꽃, 꽃가루받이가 끝난 뒤 꽃잎을 스크류바처럼 빙빙 꼬아 씨방을 지키고 마지막까지 양분을 물려주는 범부채….
‘풀의 월든’을 읽다 보면 자주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저 작은 풀이 얼마나 영리하고 정교하게 진화해왔는지, 무심히 보아 넘긴 들풀 하나에 경외심이 인다. 저자는 식물들이 이동할 수 없기에 동물보다 훨씬 더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젊은 시절 번역가로 활동한 저자는 숲 나들이를 통해 들꽃과 곤충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현재는 남편과 함께 생태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작은 풀꽃 하나도 때를 달리해 오래 지켜보고, 꽃과 잎을 잘라 일일이 단면을 확인하고, 꽃 안의 꿀을 빨아먹다가 ‘매운 맛’에 호되게 당한 일도 있다. 식물을 향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 책에서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