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화 ‘얼굴’과 영화 ‘군체’는 같은 감독(연상호)의 각본과 연출이라고 보기에는 세계관이 매우 다르다. 특히 장애인 캐릭터의 설정과 묘사가 그렇다.

일단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두 영화는 장애인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점이 있다. 우선 자기 일을 가진 장애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영화 ‘얼굴’은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이 등장한다. 전각 장인이라는 거창한 명칭이 붙지만 주로 도장을 파는 일을 한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임영규(권해효, 박정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새기는 장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어떻게 보면 천재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장애를 극복하고 말이다. 그런지라 한 방송사에서는 그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런 캐릭터는 매우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도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은 찾을 수 없다. 한 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는데 아름다운 도장을 만든다는 설정은 장애인 캐릭터를 천재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으로 덧씌우는 상업 영화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제는 도장을 잘 사용하지 않는 문화적 흐름에서 봐도 전각 장인 장애인이라는 설정은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하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물론 방송 제작 피디의 태도는 장애인과 일의 관점보다 장애 극복이나 놀라운 기예(技藝)의 관점에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임영규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명성과 미래를 위해 아내를 살해한 인물이다. 아이 엄마를 자신을 위해 살해하는 정신세계는 용납될 수 없다. 아내가 추녀라는 주변의 잡소리에 미혹되어 아내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그에 더해 자신의 앞날을 위해 아내를 살해하는 장애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상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청룡영화제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한 개도 받지 못했다. 아니 장애인계에서는 누구도 영화 ‘얼굴’을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 ‘군체’에도 여성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영화 ‘노팅힐’의 벨라 같은 특징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벨라는 휠체어를 타지만 늘 긍정적이고 솔직하며 밝다. 무엇보다 기지를 발휘해 두 주인공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다. 장애인 편의에 관한 호텔 평가를 작성하겠다는 제안으로 그들의 출입을 막는 호텔 관리인의 저지를 뚫는 장면은 통쾌하다.
영화 ‘군체’에서 최현희(김신록)도 하반신 마비 지체장애인으로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한다. 그는 앉아서도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IT 노동자로 설정된다. 모처럼 휴가를 맞아 고층 빌딩 보안팀 직원인 동생 최현석(지창욱)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가 감염병 사태를 맞게 된다. 이동 장애인이라 좀비 무리를 피하기 위해 동생의 등에 업히지만, 곧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다. 통제실에서 건물구조와 CCTV 등을 분석해 동생을 포함한 사람들의 탈출로를 확보해준다. 이런 점은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설정과 전개라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내려질 만했다. 대개 장애인은 동정과 배려의 대상이 되기 쉽다. 대부분 재난 영화에서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최현희는 탈출하지 못했다. 감염자들에게 희생되었다. 더구나 감염 사태의 주범인 서영철(구교환)은 좀비가 된 최현희로 하여금 자신에게 달려드는 동생 최현석을 물어뜯게 만든다. 애지중지하는 누나에게 당해보라는 악인의 행위에 희생되는 전개다. 결국 최현석도 누나로 인해 좀비가 된다. 다른 이들을 탈출하게 만들고 그 누나를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던 동생도 허망하게 희생된다.

감동의 여운을 더 깊게 하기 위해서나 주제의식 면에서 볼 때 최현희나 최현석을 살게 했어야 한다. 비록 좀비가 된 최현희이지만, 최소한의 인간애와 가족애는 남아 있는 모습으로 설정했어야 한다. 이는 영화 ‘부산행’에서 보여준 진일보에서 퇴행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된 노숙자(최귀화)는 아이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비록 감염돼 좀비가 됐지만 끝까지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문화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포인트다. 현실이 아무리 냉혹하고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인류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는 보여줘야 한다.
영화 ‘좀비딸’이 치료와 재활, 회복, 복귀라는 내용을 가졌기에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장애인 등 소수자들이 어떻게 설정되고 스토리 라인이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 ‘군체’는 영화 ‘부산행’의 후광 효과를 입었지만 그 성과를 확장하지 못해 더 이상 입소문을 얻지 못한 셈이다. 장애인 캐릭터의 설정과 묘사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일반 관객의 입소문이 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영화에 담긴 인간적 가치의 여운이다. 현실에서 외면받는 소수자들이 생존할 수 있어야 인간적 가치의 여운이 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써 자기 돈 내고 극장까지 와서 문화 콘텐츠를 볼 이유가 있을까. ‘오징어게임’ 시즌3에서 성기훈의 죽음은 더 이상 이 작품이 언급되지 않게 만들었다. 장애를 입게 해서라도 그를 살렸어야 한다.
여운이 있는 문화 콘텐츠가 무엇인지, K콘텐츠가 어느 때보다 숙고해야 시점으로 보인다. 영화 ‘군체’에서는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은 액션 활극까지 보여주며 생존자들의 리더로 활약한다. 사실 이 영화는 전지현을 위한 영화로 보인다. 그 역할에 장애인이 캐스팅 되는 날을 기대한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