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의사와 한의사 간의 해묵은 직역 갈등이 클래시스의 피부 미용 의료기기 ‘슈링크·볼뉴머’ 불법 유통 논란을 계기로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미용 의료기기 전문 기업 클래시스가 한의원과 치과를 대상으로 장비·소모품 판매 금지 및 사후관리(A/S) 불가 공지문을 내면서, 그동안 의료계 전반을 달궈온 첩약 급여화, 국소마취제(리도카인) 사용, 현대 의료기기 판례를 둘러싼 갈등의 역사가 재조명받고 있다.

클래시스 “한의원·치과에 판매 안 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의원에서 유명 피부 미용 의료기기인 ‘슈링크’와 ‘볼뉴머’를 도입했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의료계가 크게 요동쳤다. 이 한의사는 정품 기계랑 소모품을 들여왔다고 밝혔으며 일부 한의원에서는 ‘볼뉴머600샷 1회 55만 원, 볼뉴머 300샷 1회 30만 원’ 프로모션 행사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링크는 고강도 집속 초음파(HIFU), 볼뉴머는 모노폴라 고주파(RF) 에너지를 이용한 대표적 피부 미용 의료기기다.
의사들은 SNS에서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거치지 않은 미용 의료기기 장비와 소모품 조달 과정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동시에, 불법 유통과 비정품 소모품 사용 가능성을 제기하며 환자의 안전성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SNS에서는 “의료행위는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도 의료기기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그 경계가 계속 무너진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일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외에 “특정 회사나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제조사도 소비자가 혼동하지 않도록 정품 인증과 브랜드 관리 정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등의 철저한 사후 관리와 유통망 통제를 촉구하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클래시스는 홈페이지에 공식 방침을 내걸고 한의원 및 치과에 대한 유통·A/S 선긋기에 나섰다. 회사는 “당사는 한의원 및 치과를 대상으로 자사 의료기기(중고·리퍼비시 제품 포함) 및 소모품을 유통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면서 “한의원 및 치과에서 사용되는 당사 의료기기에는 사후관리(A/S)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첩약 급여화부터 리도카인, 현대 의료기기까지…
클래시스의 해명 공지 사태는 그동안 누적된 의사와 한의사의 직역 갈등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행 의료법 제2조 및 제27조에 따르면 의사는 의학, 한의사는 한의학에 근거한 면허 범위에서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의료 도구가 고도화되면서 의사와 한의사는 면허 범위와 법적 해석을 둘러싸고 지속해서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2020년 11월 시작되어 최근 2단계로 확대 시행된 ‘한방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시범사업’을 둘러싼 대립이 대표적이다. 한의원에서 처방하는 첩약(한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정책을 두고 의사들은 안전성과 유효성, 처방 기준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건보 재정 낭비와 환자 위험을 이유로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의사들은 국민의 한방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고 한약 관리 체계를 표준화하기 위한 필수 정책이라고 맞서며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사용 논란도 첨예한 분쟁 지역이다. 의사들은 리도카인이 부작용 발생 시 즉각적인 응급처치가 필수적인 전문의약품이라는 점을 들어 한의사가 통증 완화를 위해 약침 및 시술에 사용하는 것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고 있다.
법원도 지난 2024년 항소심 판결에 이어 2025년 6월 대법원에서 한의사의 리도카인 투여 행위에 벌금 800만 원의 유죄 판결을 최종 확정하며 전문의약품 처방이 한의사 면허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한의사들은 한의대 정규 교육과정에서 관련 약리학을 이수했고 보조적 통증 완화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최근에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 권한을 놓고 법적 판결까지 이어졌다.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와 뇌파계에 대해 한의사의 보조적 진단 수단 활용을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슈링크나 볼뉴머처럼 피부 조직에 강한 에너지를 직접 가해 비가역적 변형을 일으키는 고강도 집속 초음파나 고주파 장비는 보조적 진단기기와 그 본질을 달리한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권민지 법무법인 도아 파트너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한의사에게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가 아니라 진단용 의료기기에 한한 것”이라면서 “슈링크·볼뉴머 같은 침습적인 피부 미용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도 “의료기기는 의학적 판단을 통해 의사들이 사용해야 하는 기구”라면서 “의료법에서 면허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만큼 자격없는 이들이 사용하는 것은 직역 갈등이 아니라 기준을 벗어난 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비판이다”고 강조했다.
환자 안전·정품 유통망 관리가 핵심
이번 ‘슈링크·볼뉴머’ 논란은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피부 미용 및 치료 목적의 시술 장비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K-뷰티 인기에 힘입어 미용 의료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미용 의료기기 주도권을 둘러싼 양 직역 간의 갈등과 대립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국내 미용 의료시장이 연평균 11.7%씩 성장해 2030년 3억 3460만 달러(4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시장의 급격한 팽창으로 야기되는 공식 유통망 이탈과 비정품 소모품 유통은 화상이나 조직 손상 등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권 변호사는 “제조사의 정식 공급을 거치지 않은 장비나 불법 재충전 소모품을 사용해 시술하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무거운 형사책임과 손해배상 의무가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클래시스 관계자는 “당사가 직접 한의원에 제품을 납품한다는 일부 시각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유통에 대해서는 면밀히 모니터링 중에 있다”면서 “앞으로도 엄격한 정품 유통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